선진국은 재정의 지속가능성 우려하는데 우리는…
[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미디어오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많은 언론이 사설에서 추경 편성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추경보다 내수 부양 법안 처리가 더 급하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경제신문도 “추경이 필요하지만, 추경은 시기와 내용 면에서 효율성을 최우선 고려해야 한다”며 추경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내수 부양 법안'이 먼저라는 우선순위 문제일 뿐이다.
한국경제신문이 주장하는 내수 부양 법안이란 소득공제 확대, 개별소비세 감면 등 감세법안을 의미한다. 그러나 서민을 위한 감세는 없다. 근로소득자의 1/3은 어차피 세금을 못 낸다. 세금을 납부하기엔 급여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결국, 세금 감면을 통해 이득을 보는 계층은 중산층 이상만 해당한다.
특히, 세금 감면의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상류층은 세금감면에 따른 경기 활성화 효과도 별로 없다. 어차피 돈이 없어서 소비를 못 하는 것이 아니다. 세금을 좀 깎아 준다고 해도 소비 지출이 많이 증가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소비 지출을 늘려 내수를 부양하고자 한다면 세금을 제대로 걷어서 재정여력을 마련하고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그럼에도 추경을 주저하는 이유는 재정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추경이 재정 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는 긴축 재정이 오히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는 민중의소리 사설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미래의 재정여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가치다. 그래서 돈을 많이 쓰고 싶어도 미래의 재정여력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지출 규모를 무한정 늘릴 수 없다. 그런데 미래의 재정여력을 재정건전성(fiscal soundness)으로 평가할 수도 있지만 재정의 지속가능성(fiscal sustainability)을 통해 평가할 수도 있다.
국제적 트랜드를 보면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재정건전성보다 재정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을 훨씬 더 많이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언론이 재정건전성을 언급한다. 재정건전성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변화된 국제적 담론을 쫓아가지 못하는 헛된 노력일 수 있다.
재정건전성은 지출과 수입 간의 단기적 균형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즉, 단기적으로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 부채가 늘어나면 재정건전성은 하락한다. 반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보다 중장기적 관점으로 재정 여력을 판단한다. 이를 기업 경영 전략으로 비유해 보자. 국가 부채는 가정살림보다는 기업 경영과 비교하는 것이 좋다. 가정살림은 빚이 아예 없으면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 경영에서는 부채가 적을수록 좋은 것도 아니고, 많을수록 좋은 것도 아니다. 적절할수록 좋다.
적절한 부채 규모는 경제적,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투자를 해야 할 때는 과감하게 투자 해야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높아진다. 투자시기를 놓치고 복지부동의 관습에 빠진 기업은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세상에 부채가 없는 기업은 없다. 투자를 늘리면 단기적으로는 부채도 같이 늘어날 확률이 크다. 그러나 만일 이자 비용보다 더 많은 이익이 나오면 기업은 투자하는 것이 옳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만약 3% 이자로 국채를 발행해서 3% 이상의 명목성장률을 달성하면 우리나라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오히려 더 좋아질 수도 있다. 그런데 2024년, 2025년 명목성장률은 각각 5.9%, 3.8%다. 국고채 이자보다 더 높다. 특히, 2025년 내수 성장이 둔화되어 실질 성장률 예측치가 1%대로 내려 앉았다. 내수는 민간소비+정부지출이다. 정부지출이 마중물 역할을 하지 않으면 내수가 살아나지 못하고, 내수가 살아나지 못하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
즉,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자 한다면 부채가 많을 수록 좋은 것도 아니지만 부채가 적을 수록 좋은 것도 아니다. 경제적 상황에 맞춰 적절한 부채 양과 적절한 국가지출 규모를 동태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가장 좋다.
야당과 대부분 언론은 추경의 불가피성을 말하지만, 여당 홀로 반대하는 형국이다. 일부 언론이 추경을 주저하는 이유는 재정건전성 훼손을 우려하기 때문이지만 여당이 추경을 주저하는 이유는 '이재명 업적 만들기'를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진국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일부 언론과 여당은 재정건전성과 이재명 업적 만들기를 우려하는 현 상황이 무척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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