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못 나간다'‥대통령실 사유서 살펴보니
지난해 12월 3일, 이른바 '계엄의 밤'을 국민이 뜬눈으로 지새운 지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동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계엄군 수뇌부들은 줄줄이 재판에 넘겨졌지만, '비상대권'에 골몰하며 계엄령을 선포한 당사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관저에서 칩거하며 지지층 결집에 나선 모양새입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내란죄' 혐의 사실을 들여다볼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에도 응하지 않은 데에 이어, 법원이 내준 체포영장의 집행도 대통령경호처를 동원해 방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주목됐던 건, 윤 대통령을 보좌했던 대통령실 참모진들의 '입'이었습니다. '대통령의 기습적인 비상계엄의 징후를 미리 알고 있었는지',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 이후 2차 계엄 선포가 논의된 적이 있는지', 평소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필했던 참모들인 만큼 반드시 확인해 봐야 할 내용들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회 운영위원회가 지난해 12월 19일 회의를 열었던 이유도 그래서였습니다. 국회 운영위원장으로서 당일 회의를 진행한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 선포 및 내란 행위와 관련해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 대통령경호처를 대상으로 현안 질의를 통해 진실을 확인하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출석을 요구했던 주요 공직자 그 누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국회 운영위는 지난해 12월 30일에 재차 회의를 소집해 현안 질의에 나설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실 참모진과 경호처 고위 간부들은 이미 사나흘 전쯤부터 '출석하기 어렵다'며 불출석 사유서를 냈습니다. (다만 해당 회의는 전날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인해 취소됐습니다.) 국회 운영위는 재차 회의 일정을 잡아 오늘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현안 질의를 열기로 했습니다.
MBC가 국회 운영위를 통해 입수한 대통령실 참모들의 불출석 사유서를 살펴봤습니다.
"여야 합의 없는 국회 일정 (박춘섭 경제수석·장상윤 사회수석 등)" , "현재 계엄 사태에 대한 수사기관의 수사가 진행 중 (성태윤 정책실장·이도운 홍보수석 등)"이라는 점이 주로 언급됐습니다.
특히 '12월 회의'에 제출한 사유서와 '1월 회의'에 제출한 사유서 내용이 동일한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대통령비서실의 경우, 성태윤 정책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김주현 민정수석, 정혜전 대변인, 강의구 제1부속실장, 장순칠 제2부속실장 등이 '12월 회의'와 '1월 회의'를 앞두고 각각 제출한 두 불출석 사유서의 내용이 동일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들은 "신속하게 관리해야 할 정책 현안 및 보고 사항을 직접 챙겨야 하는 위치에 있다 (성태윤 정책실장)", "비상계엄 관련 내용은 수사 중인 사안 (홍철호 정무수석)", 전국의 민생 안전 및 국정 현안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 업무적 특성이 있다 (김주현 민정수석)", "국정 현안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 업무 특성이 있다 (정혜전 대변인)", "대통령을 상시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강의구 제1부속실장)" 등의 이유를 들었습니다. 일주일 가량 시차를 둔 두 사유서의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가로막았던 대통령경호처도 '12월 회의'와 '1월 회의'를 앞두고 각각 냈던 두 사유서 내용이 동일했습니다. "24시간 긴급 대응 임무로 인해 전체 회의에 출석하지 못한다 (박종준 경호처장)" , "대통령경호처의 행정사무를 총괄하고 있다 (김성훈 경호처 차장)"는 등의 이유를 들며 국회에 나오지 못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국가안보실의 경우, 신원식 국가안보실장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인성환 국가안보실 2차장, 왕윤종 국가안보실 3차장, 최병옥 국방비서관 등 5명이 '1월 회의'를 앞두고 낸 불출석 사유서의 내용이 모두 같았습니다. "12.3 계엄 사태 관련 안보실 증인 대상으로 한 수사기관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주요 안보 직위 궐위 사태로 국가 안보 및 외교의 공백이 우려된다"는 내용이 '복사-붙여넣기'한 것으로 보일 만큼 동일했던 겁니다.
국회에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 내용에서 드러나듯, 대통령실 참모진 대부분은 대통령이 직무 정지된 상황에서 각자 맡은 바 임무가 긴급하고, 국정 현안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며, 안보 공백이 우려된다는 이유를 들어 국회에 나갈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정진석 비서실장을 비롯한 실장들과 수석비서관 전원은 새해 첫날부터 대통령 권한대행인 최상목 경제부총리에게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며 돌연 사의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전날 최 부총리가 국무회의에서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한 '항의성 사표'라는 해석이 뒤따랐습니다. 최 부총리는 "지금은 민생과 국정 안정에 모두 힘을 모아 매진해야 한다"며 대통령실의 일괄 사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야당 소속 국회 운영위원들은 지난 6일 현안 질의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힌 대통령실을 규탄했습니다. 이들은 "아무리 용산 대통령실 안에 숨어있어도 언젠가는 국회에 반드시 불려 나올 것"이라며 "버틴다고 버텨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운영위 회의에서 정진석 실장을 비롯한 불출석 증인 전원을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야당 의원들은 또 "명확한 이유 없이 불출석하는 행위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원칙대로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국민은 대통령실 소속 증인 22명이 이번 윤석열 내란 사건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묻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홍의표 기자(euypyo@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5/politics/article/6674728_367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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