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처럼 닫혀 있던 아이…세상에 안착하다
[남난희의 느린 산]
남난희는 1984년 여성 최초로 태백산맥을 겨울에 단독 일시종주했으며, 1986년 여성 세계 최초로 네팔 강가푸르나(7,455m)를 등정했다. 1989년 여성 최초로 백두대간을 종주했으며, 74일간의 태백산맥 단독 일시 종주기를 담은 <하얀 능선에 서면(1990년)>을 펴내 등산인들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4년부터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아 살고 있다. 2022년 백두대간을 선구적으로 알린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스위스 알베르 마운틴 상을 수상했다.
8년 전, 모처에서 연락이 왔다. 길을 잘못 들어선 청소년과 걷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함께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단박에 거절했다.
왜냐하면 당시 내 문제만으로도 벅찬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더군다나 청소년이라니. 나는 그 또래 아이들을 우연이라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여러 차례 권유와 거절이 오갔다.
그 프로젝트는 "출발을 잘못해서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가두고 통제하는 대신, 자연에서 스스로 해결해 걸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내면의 힘을 키움으로써 재범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키워 주자"는 취지였다.
<나는 걷는다>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정년퇴임과 아내의 사별로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다가 걷기를 시작했다.
그는 걸으면서 정신과 육신이 치유되는 것을 경험했다. 그 길에서 우연히 만난 벨기에 청소년 두 명과 어른 한 명을 만난다. 그들은 벨기에의 '오이코텐'이라는 팀이었다. 비행청소년과 함께 걷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였다.
올리비에는 자연스럽게 걷는 게 자신처럼 절망에 빠진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사회에서 추방된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앞으로도 걷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며, 길에서 만나 오이코텐과 같은 일을 하는 데 온 힘과 수단을 모으겠다고.
그는 2000년 '쇠이유'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쇠이유는 '문턱'이라는 뜻이다. 걷기를 통해 소외된 청소년들이 사회의 문턱을 넘도록 돕겠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도 그 단체를 모티프로 짧게라도 시도해 본다는 것이었다.
21일 동안 함께 걷다
취지는 좋은데 나는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뜸을 들이다가 어느 순간 '내가 뭐 그리 잘 났나' 싶은 마음과 어쩌면 '오히려 그들과의 걷기로 인해 내가 치유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승낙을 했다.
그리고 한 아이와 만나 21일 동안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천왕봉을 오르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예상은 했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아이는 사회와 어른을 불신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고 거의 무관심이나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물론 산행이 처음이었을 아이는 무거운 짐까지 메고 산길을 걷는 것이 불만이었다. 더구나 아이는 고소공포증이 심해서 조금의 경사나 길옆에 낭떠러지라도 나타나면 지나가기를 거부하거나 괴성을 질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묻기를 반복하며 각자 지쳐갔다.
아이의 몸과 마음은 도대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날짜가 지나며 조금씩 변하는 모습이 보여서 희망을 가지다가도, 어느 순간 도로아미타불이 되기를 거듭했다.
아무 성과도 없이 정신과 육신 그리고 시간만 소모하는 것 같아서 그만 두기로 작정을 했다. 이 일은 나 같은 사람이 아닌 좀 더 따뜻하고,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할 일 같았다. 나로서는 역부족이라는 결론에 다다르며 나 자신을 자책했다.
어쨌든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걷기를 끝냈고, 헤어졌다. 그 이후 한 번의 만남과 몇 번의 전화통화 후 연락이 끊겼다. 나는 가끔 그 아이가 궁금했고 세월은 흘렀다.
하늘재에서 놀랍고 반가운 전화를 받다
또 한 번 비슷한 아이들과 걸을 일이 생겼다. 제안을 받았을 때 대략 난감했지만 그래도 어른인 나의 한 걸음 한마디가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함께하기로 했다.
청소년 보호법에 문외한인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며, 이 세계는 내가 전혀 모르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의 비행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번에 함께 걷게 될 아이들은 '소년보호처분 6호'에 해당된다고 했다.
이번에는 백두대간을 일부 걷는다고 했다. 일대일로 걷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여러 명의 아이와 그만큼의 어른이 함께하는 걸음이라 다소 부산했지만, 지난번처럼 아이들이 벽처럼 굳어 보이지 않았다. 보통의 또래 아이들 같아 보였다.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고, 여러 날이 흘렀다. 아이들은 체력이 좋아져서 어느 때부터는 따라잡기 벅찰 정도가 되었다.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던 중, 아마 백두대간 하늘재였을 것이다. 그날 산행을 끝낼 무렵 전화기가 울렸다. 발신자를 알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전화를 받게 되었다. 세상에나!
"저 동행(가명)이에요."
나는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너무 놀라고 반가워서, 이게 꿈인가 싶기도 했고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이 아이가 뭘 알고 지금 전화를 하나 하는 이상한 생각마저 들었다. 지리산을 함께 걸었던 아이는 8년 동안 한 번도 전화한 적이 없었다.
17세에서 25세가 된 아이
그런데 지금 비슷한 아이들과 걷고 있는 와중에 전화를 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그냥 생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꼭 누군가가 조정했거나 혹시 불가에서 말하는 연기법인가? 어쨌든 몹시 반갑고 고마웠다.
17세 때 만난 아이는 이제 25세가 되었다며, 어른스럽게 내 안부를 물었다. 지난번 자기가 몹시 잘못해서 송구하다고도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지리산에 가서 나와 다시 걷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몹시 감동했다.
내가 "지금 6호 처분 받은 아이들과 걷고 있다"고 하니,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자기에게 얘기하라고 했다. 자기가 와서 혼 내준다고. 하하!
그렇게 8년 만에 아이가 연락을 해왔고 나는 알 수 없는 마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가 "지리산에 오고 싶다"고 했지만 일을 하고 있는 젊은이가 먼 길을 오기는 쉽지 않겠기에 내가 그를 만나러 나섰다.
그는 지금 의정부에 살고 있으면서 '투잡(두 가지 직업)'을 한다고 했다. 그래도 내가 가겠다고 하니 시간을 내주었고, 우리는 조금 걷고 맛있는 것을 먹자고 약속했다. 그는 우리가 함께 걸을 길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스스로 길을 알아보겠다는 말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만큼 길을 안다는 말이고 길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않은가?
그를 만나러 가는 마음은 설레기까지 했다. 도대체 얼마나 변했을까? 얼마나 자랐을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우리는 멀리서도 단박에 서로를 알아봤고, 약간 어색하지만 감동의 포옹을 했다. 키는 많이 자라지 않은 것 같고, 체격은 좋아진 것 같았다.
어떤 세월을 보냈기에 이렇게 변한 걸까?
그는 예전처럼 벽이 아니었다. 몸도 마음도 성숙하고 열려 있는 것이 느껴졌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곧바로 그가 이끄는 산으로 접어들었다. 의정부 시청에서 사패산으로 가는 들머리인 것 같았다. 그는 가끔 산행을 한다고 했다. 덕분에 고소공포증도 해소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여러 이야기 중 책을 읽는다고 해서 엄지 척을 해주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배낭을 그가 메고 갔다. 심한 경사는 없었지만 산의 오르내림이 어색해 보이지도 않았다. 날씨는 화창했고 포근해서 걷기도 좋고 쉬기도 좋았다.
간식 보따리를 펼치고 이야기보따리도 펼쳤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 지금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가족 이야기,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 예전에 내게 상처가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속 썩인 것이 몹시 미안하다는 이야기. 그 모든 이야기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 세월 동안 아이는 어떤 세월을 보냈기에 이렇게 변한 것일까? 결코 만만한 세상이 아니었을 텐데 잘 살았다는 느낌이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보고 들으며 짠하고 대견했다.
그는 이제 겨우 25세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혈혈단신인 그가 애처롭고 먹먹했다.
짧게 걷고 우리는 의정부의 유명한 부대찌개를 먹기로 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굳이 본인이 나를 대접을 해야 한다고 우겨서 그의 주머니를 가볍게 했다. 나는 한동안 기분이 좋았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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