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째 박스권’···무너진 원칙에 벗어난 ‘밸류업 화살’[경제밥도둑]
2018년 코스피는 2474.86으로 첫 거래를 시작했다. 7년이 지난 올해 코스피는 이보다 73.99포인트(2.98%) 떨어진 2400.87에 문을 열었다. 한국 경제는 꾸준히 성장했지만 기업의 성장세를 반영하는 주가지수는 7년 넘게 박스권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지난해 정부가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을 추진했음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오히려 심화됐고 국내외 투자자들은 돈을 들고 떠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국내 증시의 부진을 두고 ‘자본시장 정책 실패의 청구서’라고 평가한다.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 무엇이 잘못됐나
2018년 이후 지난해까지 대만 가권지수는 115.1% 상승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69.7% 올랐다. 반면 코스피는 3.2%, 코스닥은 15% 하락했다. 주변국 증시와 달리 국내 증시에선 7년 넘게 투자해도 수익은 커녕 원금도 보전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증시 부진은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과 대외 여건의 영향이 크지만, ‘오를 땐 덜 오르고, 빠질 땐 더 빠지는’ 증시가 된 것은 선진 증시에 견줘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와 금융 관행으로 투자자 신뢰를 잃은 여파다. 지난해 정부는 대대적인 자본시장선진화 정책을 내놓았지만 오히려 증시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매도 금지다.
지난해 하반기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약 20조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특히 코스피가 2400선 안팎에서 움직였던 지난 11월 이후엔 거래대금이 급감하며 변동성을 키웠다. 전문가는 이같은 거래 위축이 공매도 금지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공매도는 가격 하락을 예상해 주식을 빌려 매도하는 것으로, 금융당국은 외국인·기관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이 반복된다는 이유로 2023년 11월부터 공매도를 금지해 왔다.
한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는 “외국인 대부분은 공매도를 일상적인 거래 기법으로 활용하는 기관투자가 그룹인데, 공매도가 막혀 있으니 한국 시장에 대한 매력도를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라며 “공매도가 갖고 있는 유동성 공급 기능과 외국인 투자자의 전략 활용이 막히면서 오히려 시장의 전반적인 유동성이 줄어들고 거래가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공매도 금지 전 자본시장연구원이 발표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공매도 전면금지가 변동성을 확대하고 시장거래를 위축하는 악영향이 있다는 실증분석 결과가 제시돼 있다. 위기상황이 아닌 환경에서 공매도를 전면금지할 경우 규제적 불확실성이 거래유인을 저하할 수 있다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이 추진돼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개인투자자의 피해를 이유로 공매도 금지를 단행했고, 이는 1년 뒤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친시장적인 ‘밸류업’ 정책과 시장에 역행하는 ‘공매도 금지’가 동시에 단행되는 정책적 모순은 당국에 대한 신뢰성을 훼손하는 한편 언제든 정책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불신을 남겼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는 “공매도 금지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이후 주가는 더 떨어져 금투세와 공매도가 주가를 짓누르는 요소가 아니었다는 점이 결국 확인됐다”며 “공매도 금지와 금투세 폐지는 정치적 이슈가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시킨 사례”고 밝혔다.
공매도는 오는 3월부터 재개될 예정인데,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증시의 하방 압력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시장이 안 좋은 상황에서 공매도가 재개되면 상승에 베팅하는 것보단 하락에 베팅하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업가치 제고에 역행하는 밸류업지수
원칙이 무너진 것은 지배구조 개선책과 밸류업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약속했던 정부는 뚜렷한 근거 없이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선회했다. 지난해 고려아연, 이수페타시스 등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기업 유상증자가 잇따랐지만, 당정이 추진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으론 이들을 제재할 수 없다.
주주가치 제고에 적극적인 기업 중심으로 구성하겠다고 했던 밸류업 지수에는 후진적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들이 포함되는가 하면 주주환원이 우수한 기업도 제외됐다.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삼성전자도 밸류업공시를 회피하는 등 참여도 미진하다. 당국은 장기적 시계로 밸류업을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기업가치 제고라는 대원칙이 무너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50년 이상 누적된 (국내 증시의) 문제들이 몇 가지 세제혜택과 규제완화로 해결될 리 만무하다”며 “자생적 시장환경은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적 동력만으론 결과를 내기 어렵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주가수익비율(PER) 상위 50% 등으로 기계적으로 나눠 선발하니 금융업종이 밸류업지수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상한 문제가 생겼다”며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상장제도 개선안에서도 업종별 퇴출 기준이 아닌 단기적이고 기계적인 기준으로 (기업들을) 솎아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옅어지는 존재감···MSCI 신흥국 지수 비중 ‘한 자릿수’
금융시장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투자자는 이탈하고, 세계 증시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옅어지고 있다. 대만·인도 등 경쟁국 증시는 성장을 거듭했지만, 국내 증시는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지수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9.1%(지난달 10일 기준)로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다. 2020년 12월 국내 증시의 비중은 13.5%로 대만(12.7%)과 인도(9.3%)보다 높았지만, 지난달엔 대만이 19.2%, 인도가 19.8%로 역전해 국내 증시와의 격차가 10%포인트 넘게 벌어졌다.
정부는 MSCI 선진지수 편입을 기대하지만 이미 신흥시장에서도 존재감을 잃어가는 만큼 선진국과의 경쟁에선 더욱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전 세계 투자자들이 주가가 계속 빠져 존재감이 사라지는 한국을 진지하게 분석하고 투자할 필요성을 못 느낄 것”이라며 “선진지수로 편입되면 존재감이 완전히 없어져 오히려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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