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보러 오는 사람조차 없어요"…은퇴 앞둔 직장인 '한숨'
강북 집값 하락에 거래도 '뚝'
"정치적 불확실성에 시장 경직…해소 이후엔 양극화 심화"
# 은퇴를 앞둔 직장인 최모씨(59)는 부동산에 내놓은 아파트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지금 사는 집을 처분해 빚을 정리하고 다른 지역에 집을 매수하려고 하는데 집을 보러 오는 수요자조차 없는 상황이어서다. 최씨는 "일단 매물을 내놓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집값이 가파르게 치솟은 후 조정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대출 규제가 강화하자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탄핵 정국'이 계속되면서 시장 분위기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시장 관망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다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지역에 따른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8일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다섯째 주(30일) 기준 서울 집값은 전주(0.01%)보다 하락하면서 보합을 기록했다. 강남권(11개구)은 0.01% 상승해 아직 상승세를 유지했지만 강북권(14개구)은 0.01% 내려 상반된 모습을 나타냈다.
강남권에선 송파구(0.06%)가 신천동과 방이동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올랐고, 서초구(0.03%)는 잠원동 주요 단지를 중심으로, 강남구(0.02%)는 개포동과 압구정동에서, 강서구(0.02%)는 등촌동과 마곡동을 중심으로 집값이 올랐다.
강북권에선 노원구(-0.03%)가 하락했는데, 상계동 비역세권 단지를 중심으로 내렸다. 은평구(-0.02%)는 불광동과 응암동을 중심으로 내렸고 도봉구(-0.02%), 강북구(-0.02%) 등 외곽지역을 중심으로 가격이 내렸다.
거래도 급감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7월 9216건으로 올해 최다 수준을 기록한 서울 아파트 매매는 9월 들어 3148건으로 줄어들었고, 10월과 11월에도 각각 3782건, 3296건에 그쳤다. 전세 역시 7월 1만2035건에서 9월 8944건으로 줄더니 10월과 11월엔 1만703건, 8697건 등으로 부진한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최씨와 같은 사례는 서울 외곽에서 더 많이 포착된다. 서민층이 많이 거주하는 거울 외곽 지역은 서울 핵심지 집값이 오를 때 뒤늦게 반응하고 하락할 때는 가장 먼저 움직인다. 또 대출 의존도가 높아 정부가 '돈줄'을 옥죄면 거래가 멈춰버리기까지 한다.
강북구 미아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미아동에서만 20년 넘게 부동산 공인 중개 업소를 운영 중인데 요즘처럼 거래가 없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집값이 주춤할 때 실수요자들이 찾아와 '급매 수준의 매물이 나온 것이 있느냐'고 많이들 묻고 갔지만 최근엔 이마저도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집주인과 실수요자 사이의 가격 눈높이가 맞질 않으니 거래가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라고 부연했다.
도봉구 창동에 있는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노원, 도봉, 강북은 대출 의존도가 높아 대출 규제 이후 집을 보러 오는 실수요자들이 정말 많이 줄어들었는데 '탄핵 정국' 이후엔 거래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주변엔 문을 늦게 열거나 아예 열지 않는 중개사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올해 상반기까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주택 시장 관망세는 연말에 제기된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장기화할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새해 상반기 금융 관련 규제가 완화하고 금리 인하의 가능성도 있지만 거시 경제와 정치적 불안은 주택 시장에 진입하기엔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정치적 향방이 정해졌을 때 유의미한 거래와 가격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일정 부분 해소된 이후엔 양극화 장세가 나타날 것이란 의견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적어도 올해 1분기 이후부터는 시장이 회복하기 시작할 것"이라면서 "서울을 기준으로 설명하면 강남, 서초, 송파구 등 강남 3구와 이른바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을 중심으로 집값이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지역별 양극화뿐만 아니라 상품별 양극화도 나타날 것"이라면서 "지난해 실수요자들이 새 아파트에 주목해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아파트)이란 말이 나왔던 것처럼 신축 아파트에 대한 수요와 재건축, 재개발 등 개발 호재가 있는 매물들에도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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