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 100년] "해킹 불가라는 양자통신, 표준 선점해야"(하)
[편집자주] 1925년 독일 이론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를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한 양자역학의 지평을 열었습니다. 100년이 지난 현재 현대물리학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양자역학은 기술 패권을 좌우하는 과학의 최전선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유엔은 2025년 새해를 '국제 양자과학 기술의 해'로 지정했습니다. 양자컴퓨터, 양자통신, 양자센서 등 국내 전문가들에게 들어본 양자기술의 현주소와 전망을 세차례에 걸쳐 짚어봅니다.
양자역학 원리를 통신 기술에 응용한 '양자통신'은 양자컴퓨터 사이를 연결하고 절대적인 보안성을 확보하는 미래 네트워크 혁신 기술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양자통신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는 원천기술 개발과 함께 국제 표준 선점 노력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상욱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양자정보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양자통신에서는 원천 기술도 중요하지만 응용 분야에서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표준화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7일 밝혔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도 2일 발간한 보고서 '국가별 양자통신 정책 동향 분석 및 시사점'에서 "양자 기술의 국제표준을 선점하는 것은 국내 기술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양자암호기술의 국제 표준화를 위한 협업 네트워크 구축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양자통신은 양자역학에서 어떤 물리적 상태가 정해지지 않고 중첩된 '양자 중첩', 여러 양자 중첩 상태가 서로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연결되는 '양자 얽힘' 등의 특성을 활용해 기존 통신과 암호 기술 한계를 극복하는 기술이다.
사람 사이의 소통에서 공통된 언어가 필요하듯 전자기기 사이에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신 기술에서는 합의된 규격과 표준이 매우 중요하다. 양자통신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은 양자 네트워크 구축과 상용화를 목표로 장기적 연구와 인프라 투자에 나서고 있다. KISTI는 보고서에서 "양자암호통신과 관련된 기술 표준화에 적극 참여해 국제적 기술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탈취·복사 불가능한 양자암호통신…"현존 통신기술 중 가장 안전"
양자통신의 핵심 장점은 '해킹 불가'라는 말로 대표되는 절대적인 보안성이다. 한 책임연구원은 "먼저 양자암호통신은 양자통신에 포함되는 용어로 '해킹 불가' 특성을 얘기할 때는 양자암호통신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용어를 정의했다. 한마디로 기존 통신망에 양자암호를 더해 안전하게 통신하는 기술이다.
기존 통신 해킹은 제3자가 수많은 광자(빛의 입자)의 형태로 전송 중인 데이터 일부를 중간에 빼돌리거나 정보만 복사하고 다시 보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양자암호통신에서 양자 중첩 상태에 있는 광자는 물리적으로 복제가 불가능하며 정보를 확인하는 순간 중첩 상태가 붕괴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이 성질을 활용하면 기존 통신에 송수신자만 확인할 수 있는 양자 암호키 분배(QKD)를 더해 보안을 유지할 수 있고 도청 시도가 있다면 바로 알아챌 수 있다.
다만 양자암호통신의 절대적인 보안성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한 책임연구원은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론상, 통신선로에서 도청으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론상'이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이론을 바탕으로 하드웨어를 구현했을 때 부품·장비의 불완전성으로 해킹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통신을 하는 송신자, 수신자가 있는 물리적 공간에 침입해 해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통신선로에서'라는 조건이 붙었다는 설명이다. 이는 기존 통신 기술에도 적용될 수 있는 조건이다.
한 책임연구원은 "이론상, 통신선로에서라는 한정이 붙지만 양자암호통신이 현존하는 통신 기술 중 가장 안전한 기술이라는 말은 맞다"고 말했다.
양자암호통신 기술 자체는 이미 상용화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분석된다. 안전성이 중요한 군용의 경우 암호통신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정책적인 결정이, 민간에서는 구축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추가 연구개발(R&D)이 필요한 것으로 진단된다.
양자암호통신보다 넓은 의미의 양자통신은 양자 상태를 멀리 떨어진 사용자가 나누어 갖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35km 떨어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속한 보스턴과 케임브리지 사이에서 양자통신을 시연하는 데 성공하고 연구결과를 지난해 5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한 책임연구원은 "하버드대에서 진행한 연구는 멀리 떨어진 양자컴퓨터들의 양자 상태를 양자통신 기술로 연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양자통신 연구자들은 기초 연구를 통해 양자 기기를 연결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전세계가 양자통신 인프라·표준화 경쟁
KISTI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주요국들은 양자 네트워크와 양자인터넷 구축을 장기 목표로 설정하고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미국은 올해까지 양자 상호 연결과 양자 중계기(Quantum Repeater) 기술 개발을 완료하고 2040년까지 국가 차원의 양자 네트워크를 통합하는 것이 목표다. EU는 회원국 사이 협력을 바탕으로 2030년까지 유럽 내 통합 양자 네트워크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독립적인 양자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고 국제 표준화 경쟁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30년까지 양자인터넷, 범용 양자컴퓨터를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양자암호통신 분야에서는 중국이 가장 앞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1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양자통신 드론(2026년), 양자통신 항공기(2030년), 양자통신 위성(2031년) 개발을 통해 양자인터넷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KISTI도 2028년까지 양자암호통신 기반의 실증망을 활성화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한 책임연구원은 "국내 통신사와 관계 중소기업들이 양자암호통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3년 이내에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양자통신도 양자컴퓨터처럼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가 중요하고 그중 일부는 양자컴퓨팅·양자센싱에도 공통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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