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종’ 유럽꽃게 피해 줄이는 방법? 해달 보호에 있었다

김지숙 기자 2025. 1. 7. 13: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애니멀피플] 댕기자의 애피랩
남방해달이 미국 동·서부 해안에 침입한 외래종인 ‘유럽녹색꽃게’를 대량 포식하면서 개체 수 조절 효과를 내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엘크혼 습지 지역에서 유럽녹색꽃게를 잡아먹고 있는 남방해달의 모습. 마이클 양/엘크혼 습지 국립하구연구센터 제공

자연과 동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한겨레 동물전문매체 애니멀피플의 댕기자가 신기한 동물 세계에 대한 ‘깨알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 의견과 참고 자료를 종합해 전해드립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동물 버전 ‘댕기자의 애피랩’은 격주 화요일 오후 2시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Q. 몇 년 전 이탈리아에서 외래종인 ‘푸른꽃게’가 늘어나서 골치를 앓고 있다는 소식이 있었잖아요. 선박의 이동이 늘어나고 양식·수산업 영향으로 게가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생태계 유입이 늘어났다고 하던데요, 꽃게의 피해를 줄일 방법은 없는 건가요?

A. 이탈리아에 나타난 미국 푸른꽃게, 독일·영국의 댐과 수로를 파괴하는 중국털게, 우리가 ‘킹크랩’으로 소비하고 있는 붉은왕게 그리고 미국 동·서부 해안에서 침입한 유럽녹색꽃게 등이 현재 세계 여러 곳에서 토종 생물들을 잡아먹으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죠.

특히 유럽녹색꽃게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정한 세계 100대 침입종 가운데 하나로 우리나라도 ‘유입주의생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꽃게는 대서양이 원서식지인데요, 선박 평형수 등에 실려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면서 현재는 북미·호주·남아프리카·동해 등에 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게가 낯선 환경에서도 중간 포식자로 잘 적응해 토종 조개나 굴, 성게 등을 먹어치우면서 어획량을 감소시키고, 다른 생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해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에요.

유럽녹색꽃게는 토종 조개와 굴 등이 큰 피해를 일으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정한 세계 100대 침입종 가운데 하나로 우리나라도 ‘유입주의생물’로 지정하고 있다. 애드윈 그로숄츠,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캠퍼스 제공

미국에서는 이 꽃게가 유입된 뒤 메인, 매사추세츠 등 뉴잉글랜드 지역 조개 산업에 끼친 피해액에 연간 2200만달러(약 320억원)에 달하고, 갯벌·해초 복원 및 꽃게 개체 수 조절 사업 등에 투입된 비용까지 합치면 피해액이 연간 10억달러(약 1조4550억원)에 이른다고 추산하고 있어요.

평균 몸무게 60~100g의 작은 꽃게가 일으킨 피해가 어마어마하죠. 그 때문에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과 몬터레이 카운티 지역 환경연구기관 등에서는 유럽녹색꽃게의 개체 수, 생태계 영향 등을 장기간 연구해 오고 있는데요, 최근 그토록 통제하기 어려웠던 꽃게의 개체 수를 멸종위기종인 해달이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습니다.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대 산타크루즈 캠퍼스와 ‘엘크혼 습지 국립하구연구센터’ 연구진은 “엘크혼 습지 지역에 서식하는 남방해달은 최상위 포식자로서 침입종인 유럽녹색꽃게를 대량으로 포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지난 10년간의 추세를 살펴봤을 때, 멸종위기에 처했던 해달이 복원되면서 꽃게의 개체 수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은 지난달 10일(현지시각) 학술지 ‘침입생물학’에 공개됐습니다.

연구 결과를 소개한 미국 워싱턴포스트 보도를 보면, 연구진은 이 꽃게가 1980년대 후반 무역선을 타고 샌프란시스코만에 처음 도착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들의 연구지인 엘크혼 습지에서는 1993년 처음 관찰됐습니다. 엘크혼 습지는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만에 인접한 조간대 습지로, 남부해달을 비롯한 다양한 해양 생물의 서식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방해달은 과거 수십만 마리가 홋카이도·알래스카·북아메리카 등에 서식했지만, 18~19세기 대대적인 모피 사냥으로 개체 수가 급격하게 줄어 멸종위기에 몰렸다. 그러던 것을 미국 정부가 1980~1990년대 복원에 나서며 현재 캘리포니아 지역에 3000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코먼스

논문의 주저자인 리케 예페센 엘크혼 습지 국립하구연구센터 연구원은 2000년대 초반 대학원 시절 처음으로 이곳에서 생멸치나 정어리를 미끼로 한 어구에서 유럽녹색꽃게를 포획했는데, 당시에는 꽃게가 한 번에 최대 100마리까지 잡혔다고 합니다. 그러나 점차 포획되는 꽃게의 개체 수는 줄었고, 다른 곳과 달리 왜 엘크혼 습지에서 더 이상 꽃게가 번성하지 않는지 궁금증을 갖게 됐습니다.

예페센 연구원과 연구진은 그 시기 가장 큰 변화였던 ‘해달의 복원’과 연관이 있다고 보고 이를 알아보기 위해 이번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현재 캘리포니아 중남부에 서식하는 남방해달은 과거 수십만 마리가 홋카이도·알래스카·북아메리카 바닷가에 널리 서식했지만, 18~19세기 대대적인 모피 사냥으로 개체 수가 급격하게 줄어 멸종위기에 몰렸습니다.

그러던 것을 미국 정부가 1977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1980~1990년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복원 사업을 벌이며 2000년대 초반 해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캘리포니아 지역에는 약 3000여마리가, 엘크혼 습지에는 약 120여마리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논문을 보면, 연구진은 해달의 먹이 활동을 관찰·기록하면서 해달의 ‘꽃게 소비율’을 추정했습니다. 연구진이 지난 20년 동안 습지에서 기록한 2만6000여회의 사냥장면을 분석했고, 그 결과 해달 한 마리가 하루 평균 328마리, 연간 12만마리의 꽃게를 잡아먹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보수적으로 계산하더라도 매년 최소 5만2000~6만7000마리의 꽃게가 해달의 먹이가 되고 있는 셈”이라며 “논문 저자 중 한 명은 2014년 해달 한 마리가 한 시간 동안 약 30마리의 꽃게를 잡아먹는 것을 현장에서 관찰한 적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해달은 피부의 점액질로 체온을 유지하는 고래나 물개와 달리, 매일 체중의 25%가량의 먹이를 섭취해 체온을 유지합니다.

해달이 있는 엘크혼 습지(붉은 선)와 해달이 없는 하구에서 시간 경과에 따른 녹색 게 개체 수. 리케 예페센/침입생물학 제공

연구진의 가설처럼, 해달의 개체 수가 늘어난 시기와 꽃게가 줄어든 시기는 맞물렸습니다. 꽃게가 처음 습지에 들어온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꽃게의 개체 수는 급격히 증가했지만, 해달의 개체 수가 증가한 2004년부터는 꽃게의 개체 수도 꾸준히 줄어들었습니다. 이는 해달이 서식하는 엘크혼 습지와는 달리 샌프란시스코만, 토말스만, 드레이크스만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해달과 같은 최상위 포식자가 어떻게 침입종을 막고, 생태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평가했습니다. 예페션 연구원은 “외래종으로부터 생태계를 보호하고, 멸종위기 토종 생물을 보호하는 것은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는 ‘윈윈 전략’”이라면서 “이제 연구자들이 엘크혼 습지에 어구를 설치하면 잡히는 꽃게는 10마리 미만”이라고 말했습니다.

인용 논문: Biological Invasions, DOI:10.1007/s10530-024-03467-3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