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창 너머 곰을 구하고, 농약 피해 날아든 제비를 지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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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세밑과는 도통 견줄 수 없었던 2024년 마지막 토요일(12월28일). 경북 영주시 이산면 운문리 '내성천제비연구소'(제1528호 '이번엔 10만 제비떼 돌아왔지만, 다음은 없다' 참조)에 오전부터 여남은 명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야생에서 살아야 할 곰은 녹슨 철창에 갇혀 도살될 날을 기다리고, 제비는 전국의 들에 뿌려지는 농약을 피해 내성천 산골 마을 댐 수몰지에 떼 지어 나타났다. 곰과 제비를 마주하면 둘 다 막강하고 폭력적인 개발주의가 게걸스럽게 뜯어먹고 남은 찌꺼기를 부여잡고 있는 느낌이 든다. 완전히 회복할 수 없을지라도, 이 폐허 위에서 누구에게 어떤 존재가 될지 고민하고 자취를 남기는 것이 '살아남은 이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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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세밑과는 도통 견줄 수 없었던 2024년 마지막 토요일(12월28일). 경북 영주시 이산면 운문리 ‘내성천제비연구소’(제1528호 ‘이번엔 10만 제비떼 돌아왔지만, 다음은 없다’ 참조)에 오전부터 여남은 명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조붓한 들 한 귀퉁이 세 평짜리 컨테이너가 연구소의 유일한 실내 공간이다. 번듯함 따위에 초연한 이들이지만, 새해 본격적인 활동을 벌이기에 턱없이 부족한 공간 문제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다. 이날 총회 겸 송년 모임은 추가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한나절 고된 울력으로 채워졌다. 최태규 대표는 독감을 무릅쓰고 낫질을 감당했다. 수의사이자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이기도 한 그와 늦은 귀경길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눴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가 하는 일은 뭔가?
“웅담 채취용 사육곰 산업을 종식하기 위한 활동이자 단체 이름이다.(그는 창립 멤버이자 첫 대표를 지냈다.) 직접 농장에서 산 곰 13마리를 강원도 화천의 임시보호시설(생크추어리)에서 돌보고 있다. 2023년 말 야생생물법 개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국내에 남은 사육곰 300여 마리를 해결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내성천제비연구소 첫 대표이기도 하다.
“군 대체복무 때문에 경북 예천군에 살게 된 뒤 내처 동물병원까지 운영했다. 그렇게 10여 년을 내성천 곁에서 살면서 지율 스님이 이끄는 ‘내성천의 친구들’과 연이 닿아 함께 활동했다. 예천을 떠난 뒤로 내성천 유역이 제비 숙영지가 되면서 제비연구소까지 연이 이어졌다. 회원 중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 대표를 맡자는, 무척 ‘시대 불화적인’ 제안으로 40대인 내가 무거운 감투까지 썼다.(웃음)”
―제비연구소는 어떤 곳인가?
“내성천은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모래강이었다. 4대강 사업과 영주댐 건설로 풍경과 생태가 다 변했다. 원주민이 쫓겨나고 농사가 중단되자 농약에 쫓기던 전국의 제비들이 2018년부터 찾아왔다. 10만 마리 넘는 제비가 한군데 모여 잠을 자는 ‘제비 숙영지’는 한반도에서 전례를 찾기도 어렵다. 내성천제비연구소는 희망처럼 나타난 제비를 기록하고 그들을 어떻게 대할지 고민하기 위해 만들었다. 최근 비영리 민간단체(naeseong.org) 등록을 마쳤다.”
―대형 포유류(곰)와 소형 조류(제비)는 거리감이 없지 않은데….
“야생에서 살아야 할 곰은 녹슨 철창에 갇혀 도살될 날을 기다리고, 제비는 전국의 들에 뿌려지는 농약을 피해 내성천 산골 마을 댐 수몰지에 떼 지어 나타났다. 곰과 제비를 마주하면 둘 다 막강하고 폭력적인 개발주의가 게걸스럽게 뜯어먹고 남은 찌꺼기를 부여잡고 있는 느낌이 든다. 완전히 회복할 수 없을지라도, 이 폐허 위에서 누구에게 어떤 존재가 될지 고민하고 자취를 남기는 것이 ‘살아남은 이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곰과 제비는 사람, 사람 사는 세상과도 연결돼 있을 것 같다.
“그 연결점을 찾는 일은 나에게 아직 난망하다. 다만 인류가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 인류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천 년 전 인류도 같은 고민을 했겠지만, 그때보다 훨씬 촘촘하고 파괴적인 지금은 대안적 사회 모델이 절실하다. 동물이 거기에 중요한 연결점을 제시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제비연구소의 활동 계획은.
“당장 2025년에도 제비가 내성천에 찾아올지 잘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제비가 돌아온다면 그들이 돌아오게 한 조건을 체계적으로 살피고 보존하는 활동을 하려고 한다. 제비의 존재를 더욱 적극적으로 널리 알려야 한다. 지역사회가 제비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드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이 제비를 반기면 그만큼 제비가 지역사회에 많은 것을 돌려줄 거라는 공감을 확산해야 한다.”(이날 제비연구소는 삼짇날 제비맞이 행사, 제비탐사학교 운영, 숙영지 보호를 위한 활동 등을 논의했다.)
―끝으로 한겨레21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없다, 정말로. 개인적인 팬심을 밝히자면, ‘노순택의 풍경동물’이 무척 좋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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