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동상’ 지키려 ‘감시 초소’까지 검토하는 대구시

백경열 기자 2025. 1. 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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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호’ 목적 이유 들며 불침번 연장
하루에 공무원 등 4명 투입해 감시
산하기관 직원까지 야간근무 동원도
동대구역 광장에 지난달 23일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이 설치돼 있다. 백경열 기자

대구시가 ‘박정희 동상’의 훼손을 막기 위한 불침번 근무를 연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대구시 산하기관 직원도 투입돼 ‘철통 감시’에 나선다.

7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대구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의 제막식을 개최한 지난달 23일 오후 6시부터 이달 4일 오전 9시까지 동대구역 광장 인근에서 동상 감시를 위해 불침번 근무를 벌였다.

야간 근무는 대구시 행정국 직원 3명이 1개조로 묶여 동상을 지켜볼 수 있는 위치에 세워둔 차량 안에서 대기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이후 대구시는 지난 4일부터 행정국 5급(사무관) 이상 직원 2명씩을 매일 편성하는 식으로 불침번 근무를 연장한 것으로 파악됐다. 근무 방식은 이전과 동일하다.

대구시는 일단 이달 말까지 불침번 근무를 이어간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시 행정국 소속 사무관은 40여명으로, 근무 종료 예정 시기까지 직원 당 1번꼴로 일하게 된다고 대구시는 설명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이전(4일)까지는 직급에 관계없이 모든 직원을 야간 근무에 투입했지만, 이후 책임자급 직원들만 나서게 됐다고 보면 된다”면서 “야간 근무 이후에는 공무원 복무 기준에 따라 식사 지원과 대체휴무 등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대구시 안팎에서는 하급 직원과 노동조합 등의 반발을 의식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대구시 새공무원노동조합은 지난달 24일 성명을 통해 “연말연시 가족과 행복하게 보내야 할 시간에 동상 지키려고 근무 계획을 세운 대구시는 각성하고 계획을 즉시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설치에 반발하는 시민들이 지난달 22일 동상 뒤쪽에 분필로 쓴 문구. 연합뉴스

대구시는 박정희 동상 훼손 방지 등을 위한 별도의 ‘감시 초소’를 동대구역 광장에 세우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추운 날씨 탓에 차량에서 대기하는 현행 근무 방식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이밖에 대구시 산하기관인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 직원들도 동상 감시를 위해 야간 시간대 근무를 벌여왔다는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날 공공시설공단에 따르면, 공단 소속 직원들은 동상 제막식이 있었던 지난달 23일 자정부터 비상근무에 투입된 상태다. 근무는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이뤄진다. 현재 체육시설운영처·주차시설·교통운영팀 등 동대구역 광장 업무와 관련 없는 부서 직원들이 2인 1조로 야간근무에 나서고 있다.

이들 역시 박정희 동상을 지켜볼 수 있는 위치에 세워둔 차량 안에서 대기하는 형태로 일한다. 퇴근 후 야근에 나선 직원들은 다음날 대체휴무를 한다. 즉, 매일 박정희 동상 감시에만 대구시 공무원 등 4명이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당초 야간 근무에 대한 대구시의 설명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구시 측은 공무원 투입 사실을 처음 밝히면서 “공공시설공단에서 공공시설물(동상) 방호 업무를 맡아줘야 하지만, 공단에 전담 인력이 없어 대구시가 직접 나서게 됐다”고 설명한 바 있다.

다만 대구시 공공시설공단 관계자는 “대구시와 사전에 협의한 사항은 아니고 (동상)훼손 우려가 있다는 판단 하에 내부 검토를 거쳐 자발적으로 야간 근무를 편성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대구시와 협의해 담당 인력을 추가 고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동대구역 광장에는 50여개의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다. 대구시는 박정희 동상 설치 당시 동상만을 비추는 CCTV 4대를 추가로 설치한 상태다.

한편 대구지역 시민단체 등이 연대한 ‘박정희 우상화 반대 범시민운동본부’는 동상이 설치된 이후인 지난달 22일 동대구역 광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희 동상은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퇴행”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일부 시민이 동상 뒤쪽 표시석에 새겨진 ‘박정희, 대한민국 제5대∼9대 대통령’이라는 소개 문구 옆으로 “독재자”, “X새끼”, “내란원조 쿠데타 독재로 해먹음” 등의 문구를 분필로 쓰기도 했다.

대구시는 여전히 동상 설치 초기에 훼손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방호’에 나선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세금을 들여서 공공시설물을 세운 만큼 이를 방호하는 것은 행정의 당연한 조치”라고 말했다.

초소 설치 검토 등의 소식이 전해지자 ‘박정희 우상화 반대 범시민운동본부’는 7일 ‘동대구역 박정희동상 감시를 빙자한 시민감시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대구시 움직임을 재차 비판했다.

이 단체는 “동상 주변에 낙서가 되거나 훼손이 되면 그것도 시민의 의사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열린 사회의 행정이 할 일이 아닌가”라면서 “설령 훼손되더라도 법이나 행정 등에 근거해 처리하면 될 일을 연말 연초에 공무원을 불침번 세우고 초소를 만들어 감시를 하겠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떻게 나온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또한 시민단체는 “실제로는 박정희 동상 훼손 감시를 빙자해서 시민을 감시하겠다는 발상”이라면서 “박정희가 털끝만큼도 훼손되어서는 안되는 우상이라도 되는가. 동상이 훼손되는 것이 그렇게 두려우면 차라리 아크릴박스에 넣어 박제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라고 비꼬았다.

앞서 대구시는 지난달 21일 동대구역 광장에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설치한 뒤 하얀 천으로 덮어뒀다. 이후 23일 동상 제막식을 열고 완성본을 공개했다. 동상은 높이 3m로, 예산 약 6억원이 투입됐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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