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 장애인 예술 중·고교, 아직 품지 못한 사회

권혁범 기자 2025. 1. 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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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부산장애인부모회 등이 ‘부산대 부설 예술 중·고등 특수학교’ 설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국제신문 DB


우리 사회가 좀 더 포용력이 컸다면, 협상력이 뛰어났다면, 제때 대안을 만들었다면…. 예술에 재능을 지닌 최소 138명의 장애 학생이 지금 맞춤형 교육을 받고 있거나, 이미 전공을 살려 대학에 진학했을 겁니다.

아직 전국에 단 하나도 없는 예술 중·고등 특수학교. 사실 이 학교는 2021년 3월 부산대학교 부설로 개교했어야 합니다. 2018년 국정과제로 추진됐고, 교육부와 부산대는 설계비도 빠르게 확보했습니다.

“국내에 예술중학교 9곳, 예술고등학교 29곳이 있지만 모두 비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합니다. 특수학급조차 설치되지 않아 장애 학생은 예술 교육에서 소외돼 있죠. 부산대 사범대학·예술대학과 부설 특수학교가 연계해 교육한다면, 장애 학생의 예술 진로 개척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사업 초기 부산대 측은 특수학교 설립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숲속학교’를 콘셉트로 건물을 올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전국의 장애 학생과 학부모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었죠. 중·고교에 장애 학생을 위한 예술 교육 과정이 전혀 없는,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을 크게 개선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2021년 입학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당시 장애 고등학생은 예술 교육을 받을 기회와 권리를 잃었습니다. 어쩌면 전문 예술인을 꿈꾸다가 뜻을 접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의 보호 없이 홀로 험한 길을 돌고 돌아서 어렵게 꿈을 이어가고 있겠죠.

이 학교는 아직 착공도 못 했습니다. 지역사회의 숱한 갈등에 개교 일정이 2021년에서 2022년, 2024년, 2026년으로 계속 밀리다가 또다시 2028년으로 연기됐습니다. 애초 계획보다 7년이나 늦어진 겁니다.

우선 건립 예정지인 부산대 대운동장 뒤쪽이 금정산 일부라 자연 훼손을 우려하는 환경단체 반발에 부딪혔죠. 그래도 부산대와 환경단체는 어렵사리 합의점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부산시의회가 부지 용도 변경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수십 년째 답보 상태인 금샘로가 완전히 개통되도록, 부산대가 도로의 캠퍼스 관통에 협조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한 거죠. 결국 용도 변경 권한을 가진 부산시가 “특수학교와 금샘로는 별개”라고 주장한 부산대 측 손을 들어주면서 드디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다시 2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부산대는 최근 특수학교 시공을 맡을 1순위 업체를 선정해 조달청 적격심사를 진행 중인데요. 착공하려면 담당 지자체인 금정구가 도시계획시설 실시계획을 인가해야 합니다. 금정구는 오랜 기간 인가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장애 학생과 학부모는 또 마음을 졸입니다.

다행히 지난해 10월 보궐선거로 당선된 윤일현 금정구청장은 “특수학교 인가와 금샘로 문제를 연결하는 건 맞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부디 하루빨리 인가가 진행돼 장애 학생의 예술 교육 꿈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부산대 부설 예술 중·고등 특수학교’ 조감도.


‘부산대 부설 예술 중·고등 특수학교’는 장애 학생에게 체계적 예술 교육을 제공하는 전국 단위 시설입니다. 국비 504억 원을 들여 부산대 장전캠퍼스 대운동장 인근에 지을 예정입니다. 지하 1층~지상 4층(전체 면적 1만4616㎡) 규모. 교사동 체육관 기숙사 지하주차장 등이 들어섭니다. 중학교 9개(54명), 고등학교 12개(84명) 등 모두 21개 학급(138명)으로 운영합니다.

우리는 장애를 극복하고 훌륭한 피아니스트나 화가로 성장한 이들을 보면서 찬사를 쏟아내곤 합니다. 그런데 이들을 교육하고 보듬어줄 시설에는 대부분 관심이 없습니다. 사회는 장애 학생에게 공평하게 교육받을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기회를 빼앗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은 말이겠네요. 특수학교가 아니라 영재학교나 자사고라도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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