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6년 전 놓친 '동물보호 개헌', 다른 나라는 얼마나 바뀌었나

2025. 1.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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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의 '동물복지 이야기'

지난 12월 2일, 멕시코는 헌법에 국가의 동물보호 의무를 명시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된 헌법 제4조는 동물 학대를 금지하고 각 주정부가 동물의 보호, 적절한 대우, 보전, 그리고 돌봄을 보장하도록 규정했다. 그리고 제73조 ‘의회의 권한’에 동물보호와 복지를 위한 입법을 명시했다. 또한 교육체계를 다루고 있는 제3조를 개정해 공립학교 교과 과정에 동물복지를 포함할 것을 규정하였다.

이번 멕시코의 개헌 내용은 국가의 동물보호의 의무를 선언적으로 명시한 국가들에 비해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선진적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2021년부터 멕시코 헌법 개정을 위해 현지에서 노력해 온 동물보호단체 ‘애니멀 이퀄리티’(Animal Equality)는 각 주 및 지방자치단체 별로 동물보호법을 운용하기 때문에 동물복지 기준이 통일되지 않고 이행과 적용에도 차이가 발생한다는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특히 축산 강국인 멕시코에서 축산동물에 적용되는 연방법상의 최소한의 복지기준이 부재해 문제들이 발생해왔는데, 단체는 이번 개헌을 계기로 연방 동물보호법을 제정하면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개정으로 멕시코는 북미에서 최초로 헌법에 동물보호 의무를 명시한 국가가 되었다.

멕시코는 '축산 강국'으로 알려진 만큼, 동물보호 의무를 명시한 헌법의 의미가 더욱 크다.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동물보호를 위해 헌법 개정을 단행한 국가는 멕시코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2일 벨기에 연방 의회는 헌법에 동물복지를 포함시키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왕국의 일반 정책에 대해 다루는 제7a조에 “연방 정부, 공동체 및 지방자치단체는 각자의 권한을 행사할 때 ‘감응력 있는 존재’(Sentient being)으로서의 동물의 보호와 안녕(Well-being)을 보장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벨기에는 이번 개헌으로 유럽연합 중에서는 여섯 번째로 동물의 헌법적 보호를 천명한 국가가 되었다. 독일은 2002년 헌법에 ‘국가는 미래세대의 관점에서 생명의 자연적 기반과 동물을 보호할 의무를 갖는다’(20a.)고 규정했다. 오스트리아는 2004년 연방헌법을 개정해 동물보호를 연방의 소관 사항으로 명시했다. 스위스 헌법은 ‘연방정부는 동물, 식물 및 기타 유기체의 생식 및 유전 물질 사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이 경우 ‘생명체의 존엄성’과 인간, 동물 및 환경의 안전을 고려해야 하며, 동식물 종의 유전적 다양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 외에 인도, 브라질, 이집트, 슬로베니아 등의 국가들도 헌법에 동물보호 의무를 담고 있다.

지난 2018년, 동물보호단체들은 헌법에 동물보호 의무를 명시한 개헌안 통과를 촉구하는 국민 서명부를 국회에 전달했다. 동그람이 정진욱

수많은 정치적 이슈가 쏟아진 까닭에 잠시 잊혔을지 모르겠지만, 한국에도 기회가 있었다. 지난 2018년 정부가 발의한 개헌안에 “국가는 동물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된 것이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등 8개 동물단체는 2017년부터 ‘개헌을 위한 동물권 행동’을 출범하고 헌법에 동물권을 명시할 것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던 만큼 새로운 헌법이 탄생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는 2018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안 국민투표가 무산되며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한국의 동물보호법은 여러 번 개정을 거듭해왔지만 아직도 동물학대 행위자가 동물을 기르는 것조차 ‘기본권 침해’라는 이유로 막지 못하고 있다. 동물학대 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그 유형은 갈수록 다양해지지만, 아직도 실제로 선고되는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다. 최근 동물학대범죄 양형기준이 마련되고 있지만 형량 범위가 미흡하거나 양형인자에 가해자에게 유리한 요소들이 포함되는 등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함태성 교수는 2019년 학술지 ‘법과사회’에 발표한 논문 ‘우리나라 동물법의 현황 및 진단, 그리고 향후 과제’에서 헌법에 동물보호 관련 조항이 신설된다면 정책적으로나 법적으로 매우 큰 의의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국가의 최고 규범인 만큼 국가는 동물보호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하는 책무를 지게 되고, 하위 법령들은 헌법이 요구하는 바를 충실히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대학 최희수 교수도 2022년 학술지 ‘환경법과 정책’에 발표한 논문 ‘동물의 법적 지위 변화와 헌법상 동물보호국가로의 전환 모색’을 통해 대부분의 동물 보호에 개인의 재산권 등 기본권 제한이 발생하는 것을 감안하면 국가목표규정으로 동물보호조항을 도입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동물 문제가 여러 부처와 법률에 분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물복지에 대한 원칙이 없어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가가 동물보호라는 목표를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정부 조직이나 예산을 확보할 의무를 진다는 점도 기대할 수 있는 변화이다. 우리 시민들의 동물에 대한 인식과 생각은 큰 폭으로 변화했다. 시국이 안정된 뒤에는 개헌에 대한 여러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것이다. 그때, 우리 사회에서 진화하고 있는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를 제도에 반영할 수 있도록 헌법에 동물보호 의무를 담는 숙제를 떠올려야 한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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