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반복되면 그건 사건이다” [새로 나온 책]
지불되지 않는 사회
김관욱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사고가 반복되면 그건 사고가 아닌 사건이다.”
문화인류학자이자 의사인 저자가 한국 노동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썼다. 만성적 피로와 저임금, 정리해고, 과로사 등 노동의 처참한 단면들을 다룬다. 노동자의 죽음이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산업재해라는 인식은 2000년대 초반에야 생겨났다. 극단으로 내몰린 노동자에게 사회의 반응은 차갑다. 직원의 자살이 ‘업무와 무관하다’는 게 2000년대 기업의 대응이었다면, 2010년대부터는 ‘직원 개인의 우울증’을 언급하는 기업이 늘었다. 노동 현장의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사례들을 적었다.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하청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에게 “파렴치하다”라고 비난받고, 교권침해 탓에 우울증을 앓은 교사들은 자녀를 돌보지 못하는 자격 미달 교원이라고 내몰린다. 서문에서, 이 책 내용은 ‘설명’이 아닌 냉혹한 노동 현실에 대한 뜨거운 ‘질문’이라고 썼다.
국가론
밥 제솝 지음, 지주형 옮김, 여문책 펴냄
“국가는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대다수는 윤석열의 12·3 쿠데타를 ‘내란’이라고 부른다. ‘국가에 대한 반란’이란 의미다. 윤석열 측은 그날 밤의 계엄령을 종북 반(反)국가 세력을 척결하기 위한 거사였다고 포장한다.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 ‘국가’에 대한 양측의 정의(定意)가 엄청나게 다르다. 사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는 무척 어렵다. 〈국가론〉은 국가 이론 분야의 대가인 밥 제솝 영국 랭커스터 대학 명예교수가 지난 40여 년 동안 자신이 해온 연구를 집약한 책이다.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국가는 권력을 소유하지 않으며 권력 행사의 주체도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개별적인 국가기관들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과 집단들”이라고 답한다. 밥 제솝의 제자인 지주형 경남대 교수가 오랜 세월 꼼꼼히 번역하고 긴 각주를 달았다. 번역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새드 투게더
손수현·신연경 지음, 마음산책 펴냄
“내게 없는 언어, 속을 부유하는 언어를 먼저 잡아챈 사람들의 말을 빌려 내 시끄러운 고통을 직시했다.”
배우 손수현과 출판 마케터 신연경은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천장과 바닥을 공유하는 사이다. 이웃이고 친구인 두 저자에게는 공통점이 여럿 있다. 여성, 창작자, 비건 지향, 페미니스트. “얽히고, 부서지고, 넘어졌다가 다시 손잡고 일어나는 이야기”야말로 ‘우정’에 대한 탁월한 정의다. 나의 시끄러운 슬픔과 고통을 골똘히 들여다본 적이 있었기에 기꺼이 “다른 사람의 상처로 이주”할 수 있게 된 사람의 이야기야말로 우정의 정수다. 그렇게 우정은 두 사람의 것에서 더 많은 존재를 위한 마음으로 번져 복수(複數)가 된다. 자신을 돌본 힘으로 타인을 돌보는 구체적인 순간들을 꾹꾹 눌러 썼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북하우스 펴냄
“진화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끝없는 수정, 이유도 목적도 없는 변화다.”
1960년대부터 땅과 인간의 관계를 주제로 픽션과 논픽션을 발표해온 저자가 남긴 마지막 책으로 일흔 개 나라를 여행하고 탐사하며 보낸 지난 세월을 돌아본다. 북태평양 동부, 캐나다 북극권, 갈라파고스 제도, 오스트레일리아, 남극 등 다양한 장소를 밟으며 인류의 기원과 땅의 역사, 식민주의와 기후변화를 고찰한다. 지구라는 장소와 시간이 선사해주는 경이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동시에 작가가 천착했던 여행의 경험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된다. 저자에게 여행은 지혜를 모으는 활동이자 자신을 바꾸는 행동이다. 엄청난 두께에 한 번 놀라고 그 두꺼운 책이 수월하게 넘어가는 데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정정하는 힘
아즈마 히로키 지음, 안천 옮김, 메디치 펴냄
“정정한다는 것은 일관성을 가지면서 변해가는 것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1971년생 일본 사상가이다. 대중문화 연구가이자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는 정체되고 침체된 일본 사회에 필요한 것은 화끈한 리셋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현장에서 조금씩 바꾸어가는 꾸준한 노력, 즉 ‘정정하는 힘’이라고 진단한다. 한 나라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콘텐츠의 주인공은 모두 젊은이이지만, 우리는 모두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된다. 그는 나이 듦의 지혜 역시 ‘정정해가는 것’에서 찾아가야 한다고 설파한다. 역사 수정주의와는 선을 긋는다. 2024년 일본 ‘신서’ 대상 2위에 선정되었다.
이러려고 겨울을 견뎠나 봐
몽실 지음, 호밀밭 펴냄
“우리는 우리의 잘못이 아닌 것을 잘 안다.”
부제는 ‘봄을 맞이한 자립준비청년 8명의 이야기’다. 부산의 한 보육 시설에서 생활하던 이 책의 저자들은 18세가 되자 시설에서 나와 자립해야 했다. 한 청년은 돈을 모아 주차장 안 원룸에 둥지를 틀었고 또 다른 청년은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게 됐다. 또 한 명은 이른 나이에 가장이 되었다. 혹독한 사회를 체감하던 8명이 명절마다 모였고 그렇게 ‘몽실’이라는 봉사 단체가 설립되었다. 또 다른 자립준비청년을 돕기 시작했다. 이들이 스스로의 성장기를 담담히 털어놓는다. 잘 읽히지만 쉽게 쓰이지 않았으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어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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