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용돈 드리고 싶어요” 중증장애인 350여명이 바리스타

김소연 기자 2025. 1. 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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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갓에브리씽’ 8년 만에 103호점 돌파
기상청·관세청·통계청 등이 모여 있는 대전 서구에 위치한 정부대전청사 1층에 있는 ‘아이갓에브리씽’(\'I got everything)이라는 이름의 카페.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지난달 30일 정부대전청사 1층에 있는 카페 ‘아이갓에브리씽’(I got everything). 주문 뒤 얼마 안 돼 커피가 바로 나왔다. 아파트 ‘국민평수’(약 35평) 크기의 정부대전청사점엔 공무원·민원인 등이 삼삼오오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은 매니저 3명을 제외한 바리스타 직원 9명이 모두 중증 장애인(발달장애)인 카페다. 이날 오전엔 매니저 1명과 바리스타 3명이 손님을 맞았다. 커피가 나오는 속도나 손님 응대를 보면, 바리스타가 장애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카페와 별반 다르지 않다. 평일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대략 3교대로 일한다. 매출은 아이갓에브리씽 103개 매장 가운데 최상위권이다. 2017년 11월 장애인 바리스타 6명으로 시작해 현재 9명으로 늘었다.

대전청사점 바리스타인 김다정(28)씨는 7년 넘게 일한 베테랑이다. 장애인 고용의 어려운 현실에 견주면 ‘7년 장기근속’은 이례적이다. 그는 “라떼(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예쁘게 만드는 것을 보고 바리스타가 됐다”며 “커피를 만드는 것도 친구를 사귀는 것도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김씨는 말이 조금 느리긴 하지만, 커피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대전에 사는 김씨는 평일 오전 8시30분부터 낮 1시30분까지 일한다. 중간에 30분은 별도로 마련된 휴게실에서 쉰다. 그는 “손님을 응대할 때 많이 긴장되지만, 바리스타 일을 계속 하고 싶다”며 “돈을 많이 벌어 엄마·아빠에게 용돈을 드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부대전청사 1층에 있는 ‘아이갓에브리씽’(\'I got everything)에서 7년 넘에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지적장애인 김다정씨가 커피를 만들고 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아이갓에브리씽은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중증 장애인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카페 사업이다. 2016년 10월 정부세종청사 1호점을 시작으로 103호점이 문을 열었고, 발달·시각·청각·지체 장애 등 중증 장애인 350여명이 일하고 있다.

중증 장애인이 일하는 만큼, 안전에도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전 매장은 커피 추출을 자동화했고, 손이 닿는 기기 내외부가 뜨겁지 않아 화상 우려가 거의 없다. 바닥도 미끄러지지 않는 재질을 사용했다. 그동안 별다른 사고가 없었던 것은 반복적인 교육도 중요한 몫을 했다. 대전청사점을 위탁 운영 중인 천성보호작업장(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이파란 담당자는 “뜨거운 음료를 옮길 때, 서로 이야기하면서 조심한다”며 “교육하는 과정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반복적으로 알려주면 장애인도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바리스타들은 하루 8시간 근무가 쉽지 않아, 평균 4.7시간을 일하고 있으며 임금은 월평균 112만원으로 최저임금 이상을 받고 있다. 본인이 그만두지 않으면 계속 고용이 가능하다.

2024년 12월16일 아이갓에브리씽 100호점이 서울세관에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지적장애인 바리스타 3명과 매니저. 한국장애인개발원 제공

한 집 건너 카페인 상황에서 아이갓에브리씽의 성공 비법으로 커피 맛과 카페 분위기, 합리적인 가격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이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소비자들이 지속적으로 찾아 수익이 나야 장애인을 계속 채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식문화 트렌드를 이끌었던 장진우 셰프의 자문을 거쳐 경쟁력을 높이려고 애썼다. 원두·레시피를 표준화해 전국 매장의 커피 맛을 균일하게 맞췄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카페의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매장마다 음료 가격은 다르지만, 가장 기본 메뉴인 아메리카노가 2천~3천원대로 가성비도 챙겼다.

공공과 민간의 협력도 힘을 실었다. 중앙부처·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에스케이(SK)텔레콤, 씨지브이(CGV) 등 15곳의 민간기업이 무상으로 카페 공간을 임대해주고 있다. 장애인직업재활기관 등은 카페를 위탁받아 운영하면서 장애인 바리스타 채용과 교육 등을 맡는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은 카페 인테리어 시공비와 커피머신 제공, 신메뉴 개발, 레시피 보급 등 다각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개발원은 아이갓에브리씽의 성공을 발판 삼아 최근 편의점(씨유)으로 중증 장애인 일자리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경혜 한국장애인개발원 원장은 “외부활동에 제약이 많은 중증 장애인의 경우 일을 하면서 사회에 참여하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등 자립이 가능하다”며 “앞으로 더 많은 공공·민간의 참여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아 살아가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전/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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