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당신이 무심코 밟던 사계해변길, 몇 안 남은 귀중한 제주 해안사구
“숱한 관광객들이 사계 해안을 지나가지만 그 가치를 알고 걷는 이가 드물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자신들이 걸으면서 해안사구를 훼손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는 것도 안타깝고요.”
지난달 17일 오전 살펴본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의 해안은 전형적인 사구의 모습이 곳곳에 남아있는 동시에 해안사구의 가치를 몰랐던 시기 이뤄진 훼손의 양상을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다. 기나긴 모래사장과 모래언덕, 염생식물 군락과 거센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 그 너머의 논밭과 마을 등은 사계해안사구의 규모가 과거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 가능케 했다.
하지만 사구와 방풍림을 단절시킨 차도와 인도, 체육시설 등 각종 시설물, 올레길 등은 삼중사중으로 해안사구를 훼손시키고 있었다. 모래 유실을 막기 위해 모래사장에 설치된 모래수집장치는 해안사구가 지금 이 순간도 망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늠자처럼 보였다.
양수남 제주자연의벗 사무처장과 함께 돌아본 사계 해안사구는 제주의 해안사구 중에서도 규모와 보존가치면에서 손에 꼽히는 곳이다. 해안사구는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강풍과 거센 파도로부터 육지의 주거지와 농경지를 막아주는 완충구역 역할을 하는 동시에 다양한 염생식물과 곤충, 조류 등의 서식지 역할을 한다. 천연의 제방이자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셈이다. 해안사구의 식물들은 생태계가 저장하고 있는 이산화탄소를 말하는 ‘블루카본’으로서도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해안사구인 충남 태안 신두리 사구는 길이 3.4㎞에 폭이 최대 1.3㎞로,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돼 있다.
사계 해안사구는 볼거리가 풍부한 제주에서도 절경으로 꼽히는 산방산이 보이고, 용머리해안과도 매우 가까운 곳이다.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은 모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돼 있다.
불과 2㎞ 정도 떨어진 용머리해안이 보호받고 있는 것과 달리 사계리 해안사구는 차도, 보도, 올레길 등으로 인해 계속 훼손되고 있다. 특히 사계 해안사구의 경우 그나마 남아있는 모래언덕도 매일 올레길을 오가는 올레꾼들의 답압으로 인해 원형을 잃어가고 있다. 양 처장은 “올레길 코스를 살짝 조정만 해도 해안사구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주 해안사구의 훼손은 사계 해안만의 문제는 아니다. 환경부 국립생태원은 전국의 해안사구를 돌아가면서 조사해 실태 보고서를 펴내고 있는데 8년 전인 2017년 보고서에서 제주에 해안사구가가 14곳 존재하며, 이 가운데 82.4% 훼손되었다고 평가했다. 해안사구의 훼손은 사구 배후에 자리잡은 농경지와 마을 등에도 피해를 줄 수 있다. 염분 농도가 높은 물이 지하수에 침투할 우려도 있다.
생태원이 조사, 평가한 해안사구는 제주 전역에 존재하는 해안사구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제주 환경단체와 전문가 등은 제주에 보존 가치가 높은 해안사구가 적어도 20곳 이상 존재하며 중소규모 사구들까지 포함하면 훼손 실태는 더욱 심각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는 해안사구 10곳을 신규 발굴해 발표했다.
아직까지 해안사구 조사에 제주만의 독특한 인문적 요소가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것도 문제로 꼽힌다. 예를 들어 구좌읍 평대리 해안사구의 경우 사구 내에 마을이 형성되어 주민 전체가 사구와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매우 독특한 사례인데, 이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다행히 늦게나마 제주도청에서도 해안사구 보존을 위한 정책을 준비하고 있고, 제주도의회에도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김종수 제주도청 해양산업과장은 “한꺼번에 모든 해안사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겠지만 우선 할 수 있는 일들부터 시행하려 한다”면서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해안사구 복원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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