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공수처 검사로서 지금의 공수처에 유감을 표한다 [김숙정의 권리장전]
(시사저널=김숙정 변호사)
필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초대 검사를 지냈다. 유능한 수사관들의 헌신 덕분에 공수처 1호 표창을 수상했고, 1호 우수검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수처에 킥스(KICS·형사사법포털)는커녕 정해진 문서 서식조차 없던 2021년 어느 봄날, 수사관들과 직접 영장을 청구하러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공수처에서 영장을 청구하러 왔다며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법원 직원들, 떨리는 마음으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던 모든 순간들이 기억난다.
조심스럽게 신생아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으로 그러한 시간을 쌓아온 필자로서는, 논평은커녕 공수처를 응원하는 한마디조차 정치적으로 이용돼 오히려 수사에 방해가 될까 하는 걱정에 지금껏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한편으론 필자가 다룬 사건에 대해 발언한 것이 일부라도 와전되거나 악용되지 않을까 하는 자기검열 또한 컸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 대한 가벼운 안부 인사조차 오해를 부를까 걱정돼 자제했다.
그러나 지금은 온 국민의 평온한 일상이 산산이 부서진 상태이다. 검찰청 검사로 법조 생활을 시작해 수사 업무만 쭉 해온 사람으로서, 더욱이 공수처 설립 초기 3년 가까운 시간을 자식만큼 아끼며 온갖 논란과 우려에도 뚜벅뚜벅 공수처의 프로세스를 만들고 당당한 국가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기만을 바랐던 사람으로서, 대통령의 12·3 계엄선포 이후 공수처의 행보에 물음표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첩요청권은 '전가의 보도'인가
수사를 하려면 그에 부합하는 인력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마른 수건은 아무리 쥐어짜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공수처가 선별(選別)입건을 폐지하고 전건(全件)입건을 도입한 2022년 이후 각종 진정·고소·고발로 사건수가 폭증했고, 이 외에도 언론을 떠들썩하게 장식한 사건들이 많았다. 처리하지 못한 사건만으로도 공수처의 수사인력은 풀가동 상태였을 것이다. 무슨 여력으로 이첩을 요청해 수사한단 말인가.
내란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국가를 뒤흔드는 중대범죄가 발생했으니 당연히 공수처가 나서야 하는 것이었을까. 그동안 처리하지도 못한 사건, 기소권이 없어 검찰로 공소제기 요구를 해야 할 사건, 증거가 불충분하다면 신속하게 불기소 처분해야 할 사건들이 산적해 있다. 공수처가 이런 사건들을 끌어안고 있는 동안 피의자 신분으로 불안정한 지위에서 몇 년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피의자도 아니고 참고인인데 언제까지 출국을 못 하나"라며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한다. 수사가 지체될수록 그 어디에서도 실체적 진실을 발견할 수 없고 정의 실현 또한 요원하다.
공수처는 직권남용을 고위공직자범죄로 보고, 내란죄는 관련 범죄이니 수사 권한이 있다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해당 논리를 고집해 산적해 있는 사건을 뒤로 미루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내란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 마땅한가. 공정성 논란을 불식시키고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대의명분 아래 경찰과 검찰에 이첩요구권을 행사한 게 2024년 12월 8일이다. 이때 공수처에는 처장과 차장을 제외하면 부장검사 2명, 검사 9명이 전부였다. 공수처가 수사하는 게 무엇을 근거로 '적절'하다고 판단했을까.
법적으로 내란 사건의 수사 주체는 경찰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여야 한다고 절대 다수의 법률가들이 지적하면서 검찰의 내란 사건 수사를 비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검찰과 마찬가지로 '관련 범죄' 논리를 억지로 들이밀었던 공수처였다. 더군다나 법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기소는 할 수 없어서 수사 후에 검찰에 공소제기 요구할 수밖에 없는 공수처였다.
체포영장 집행은 왜 지체됐나
다시 강조하지만 공수처는 대통령을 구속해도 기소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검찰 또는 특검만이 기소할 수 있다. 공정성 논란 등에 비추어 공수처가 수사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해 이첩요청을 하였다면 신병 확보 시기, 공소제기 시점까지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 게다가 인신을 구속해 수사할 수 있는 기간은 한정돼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병을 확보하려 했다면 그 판단은 더욱 신중했어야 한다.
공수처는 대통령을 체포했을 때, 48시간 이내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 구속영장 발부 후 20일 동안 수사 절차, 검찰에 대한 공소제기 요구, 검찰청 검사가 기소할 때 등 모든 진행 상황에 대한 타임테이블을 뽑아 뒀어야 한다.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한 고려와 검증은 필수다.
공소제기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기소를 하려면 모든 수사 기록을 완결적으로 정리해 증거로 제출할 기록을 추리고, 증거목록을 만들고, 수십 번의 검토를 거쳐 가며 공소장을 작성하고, 공소유지의 계획과 전략을 담은 공판 카드와 증거설명서까지 준비해야 한다. '공수처와 검찰이 10일씩 나눠 수사한다'고 합의했다는 것만으로 이 모든 과정이 해결되는가. 아니면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특검이 그 사이에 진영을 갖춰 짧은 구속기간 안에 기소해줄 것을 막연히 기대했단 말인가.
설령 위 모든 과정을 검찰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했다고 가정하더라도 문제는 남아있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이후의 행보다. 언론을 보면 공수처가 체포영장을 청구한 건 12월30일 월요일 자정이다. 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한 건 12월31일 화요일 새벽이다. 공수처가 집행을 개시한 건 1월3일 금요일 오전이다. 체포영장 청구 때부터 이미 집행을 금요일로 계획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 사이 사흘이라는 시간 동안 공수처는 뭘 했을까.
체포영장을 청구해서 발부받았다면 총력을 기울여 은밀하고 신속하게 집행하는 게 마땅하다. 체포영장 청구를 준비하는 동시에 집행 계획안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단순히 조를 짜서 수사 인력을 어디에 몇 명 배치한다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체포영장이 발부됐을 때 언제 어디에서 집결해 이동하고 집행을 시작할지, 혹시라도 청구에 일부 기각이 있을 경우를 예상해 법원이 발부한 그대로 진행할지, 아니면 다시 청구를 해서라도 수사의 완결성을 높일지 등을 계획해 둬야 한다. 수사 보안이 깨지지 않도록 영장 발부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법원 근처에서 대기하는 수사관도 많다.
필자가 공수처에서 근무하던 시절, 자정 무렵 영장이 발부됐다는 연락을 받고 과천에서 서초동까지 수사관들과 함께 달려가 영장과 기록을 찾아와 집행계획을 점검한 적도 있었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수사 과정의 밀행성(密行性)이 유지돼야 한다. 영장 발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기 전에 집행을 개시할 수 있도록 애썼어야 한다.
체포영장 청구 사실을 언론에 공개한 게 어떤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인지 모르겠지만, 체포영장 발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순간 저항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집행 가능성은 요원해진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실망과 피로감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 진정한 바람은 누구든지 예외 없이 엄정한 절차에 따라 체포영장이 집행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공수처가 국수본을 통제하고 지휘할 수 있나
공조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사람이 함께' 도와주거나 '서로' 도와주는 것이다. 법적 근거는 차치하더라도 공조수사를 할 때 수사기관은 대등한 주체로서 서로를 도와야 한다. 수직적 위계 서열이 있는 관계가 '공조'를 할 수는 없다. 누가 누구를 지휘하고 통제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말이다.
공조수사본부를 꾸린 뒤 경찰이 공수처에 영장을 신청하고 공수처가 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지 논란이 있었다. 공수처에서도 해묵은 담론이다.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을 개정하면서 공수처가 수사·기소권을 가지고 있는 사건에 대한 경찰의 체포영장 신청 부분이 아예 삭제됐다. 하물며 대통령에 대해서는 공수처에 기소권조차 없다.
공수처법과 사건사무규칙 어디에도 기소권이 없는 사건에 대해 영장을 접수할 근거는 없다. 결국 공수처에 수사권만 있는 사건은 경찰이 공수처에 '이첩'을 하고, 공수처 검사가 영장을 직접 청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수본은 내란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하고, 공수처 검사가 청구한 체포영장이 발부되면서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 1월3일 체포영장 집행 현장에는 공수처 검사와 국수본이 대등한 지위에서 증거 확보를 위한 수사를 하고 있었다. 행정응원(대등한 행정관청 간에 협력 요구 시 이에 응하는 것)을 위한 경찰 인력까지 이들을 돕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국수본이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경호처장 등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려 했으나 공수처 검사의 불허로 무산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대등한 수사 주체가 수사하던 중 한 기관이 현행범을 발견하고 체포하려 했다면, 다른 기관이 이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일까. 공수처가 국수본을 통제하고 불허할 권한이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경호처장 지시에 따라 경호처 직원들이 정당한 체포영장 집행에 불법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 누구보다 상급자인 경호처장을 먼저 체포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공수처법과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등 다른 법률과의 관계를 볼 때 공수처 검사가 경찰에 대한 절차적 통제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볼 수도 없다. 공수처는 사법경찰을 지휘할 수 없다. 하물며 사전에 공수처와 국수본 간에 '경호처장이 공무집행을 방해할 경우 체포한다'고 합의돼 있었다면, 현장에서 이를 '불허'하는 것이 무엇에 근거한 의사결정인지 심히 의문이다.
공수처법 자체의 문제점은 하루 종일 떠들어도 부족하다. 수사대상자가 지극히 제한적이고, 고위공직자범죄 역시 한정적이다. 그에 맞추어 조직을 설계하다 보니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수사를 하다 보면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고, 사건이 확대되기도 한다. 공수처의 인력과 시스템은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에 매우 부족하다.
현실이 열악하다고 잘못이 합리화되는 건 아니다
법원이나 검찰과 같이 임관 후 1년 가까이 교육을 하며 기다려 줄 여유도 없다. 도제식 교육으로 사람을 키워낼 수도 없는 구조다. 공수처의 수사 과정에는 검사의 판단이 필요하다. 수사 결과가 기소든 불기소든, 공소제기 요구든 이첩이든, 그 결정에는 검사의 책임이 따른다. 공수처는 막 임관한 검사에게 이러한 교육을 체화시킬 시간도, 시스템도 없다.
이처럼 지금의 공수처가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제기능을 하도록 하기 위해선 많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공수처의 잘못된 의사결정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 공수처의 열악한 현실을 인정하고 조직의 리더는 그에 합당한 선택과 판단을 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호통치고 압박한다는 이유로, 국민들이 비난한다는 이유로 무리하다보면 악순환의 고리는 끊을 수 없다.
수사권 조정으로 여러 수사기관의 경쟁적 수사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들 한다. 불가피하다고 넘어갈 일인가. 남의 일이 아니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검·경이 사건을 폭탄 돌리기 하듯 던지고, 공수처까지 가세해 '이첩'이라는 형식으로 사건들이 수사기관을 넘나드는 사이, 국민들이 지불해야 하는 사법비용은 커져만 간다. 수사권 조정으로 인한 경쟁적 수사의 이면에는 방치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중대한 국가적 이슈에 순번이 한참 뒤로 밀린 국민들의 한숨도 커져만 간다.
난데없는 계엄 선포 이후부터 연휴, 연말연시, 주말을 반납한 채 밤낮없이 일하는 공수처 구성원들에게는 이런 글을 쓰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리더는 현행법에 기초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명확한 현실 인식은 조직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지만, 사상 초유의 중대 사건의 수사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는 점을 새기기 바란다.
■ 김숙정 변호사 약력
김숙정 변호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1호 검사 출신이다. 2012년 제1회 변호사시험 합격 후 인천지검, 수원지검 안산지청 등 검사로 근무했다. 이후 형사전문변호사로 활동하다 국회 보좌관을 거쳐 2021년 공수처 출범과 함께 검복을 다시 입었다. 2022년 공수처장 1호 표창을 수상했고 2023년 공수처 1호 우수검사로 선정됐다. 2023년 말 공수처를 떠나 현재 법무법인(유) 동인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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