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파워인터뷰]크리스티안 뤼크 스웨덴 카롤린스카대 교수 겸 정신과 의사 | “삶의 부침 수용이 도움… 물살이 잦아들도록 둬야”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 (Minds Connector) 2025. 1. 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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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고모 리즈가 42세의 일기로 취리히 욕조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로 시작한다.

"당시 나는 고작 열한 살이었다. 그렇지만 그 적막함은 기억한다. 공기가 묵직했다. 가족끼리는 무척 수치스러운 일로 생각했다. 그리고 퍼즐을 풀어야 했다. 그러니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고 무얼 놓쳤는지를 살폈다. 직업적으로 하는 일도 그 퍼즐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정신과 의사가 된 이후로 환자 중 누가 자살을 기도할 것인지 예측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당신이 보기에 자살은 선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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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뤼크 스웨덴 카롤린스카대 교수 겸 정신과 의사-미국 자살예방재단 학술 고문,스웨덴 일간지 다겐스 뉘헤테르 전문 기고가 /사진 미케 산드스트륌

#돌아오는 표는 없다

“치명적인 독극물을 삼켰는데요. 이젠 죽고 싶지 않아져서 빨리 좀 도와주세요.”

“도와드릴게요. 어디에 계시죠?”

“집이요. 인터넷으로 약물을 주문했어요. 확실히 죽는대서.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어요.”

“세르코딘을 삼켰다고요?”

“네. 3분 전에 삼켰고, 당장 해독제를 먹으면 살 수 있대요. (흐느끼며) 벌써 몸에 약효가 도는 게 느껴져요.”

“구급차를 보낼게요.”

“전 겨우 스물세 살이에요.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 않아요.”

“저와 계속 통화하시죠. 이름이 뭔가요?”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발신자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 크리스티안 뤼크 ‘자살의 언어’ 중에서

목숨을 끊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죽음에 이르게 자기 자신을 다치게 하기 위해서는 살고자 하는 본능을 꺾어야 한다. 몸은 펄떡 인다. 우리의 모든 조직은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스웨덴 정신과 의사 크리스티안 뤼크(Christian Rück)가 쓴 책 ‘자살의 언어’를 읽었다. 책에는 자살과 안락사, 조력사라는 실제 상황에 직면한 수많은 사람, 사건, 장면, 관련자, ‘외로운 죽음’을 둘러싼 논쟁적인 입장이 숨 가쁘게 등장한다.

갈피마다 자살 생존자,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 죽음을 돕는 의사,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20대 소녀, 삶과 죽음의 경계지에서 서성였던 수많은 사람의 ‘확신’과 ‘주저’ 의 시간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자살의 모국어는 수치심이며, 부국어가 있다면 그건 침묵일 거라는 정신과 의사의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11월 23일은 세계 자살 유가족의 날이다. 전 세계에 매년 80만 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지금, 가장 사적이되, 가장 사회적인 사건으로 ‘자살의 언어’가 해금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해결되려면 말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력을 다해 생명의 사실을 전하는 스웨덴 정신과 의사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Minds Connector)-전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위대한 대화’ 저자

책은 “고모 리즈가 42세의 일기로 취리히 욕조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로 시작한다.

“당시 나는 고작 열한 살이었다. 그렇지만 그 적막함은 기억한다. 공기가 묵직했다. 가족끼리는 무척 수치스러운 일로 생각했다. 그리고 퍼즐을 풀어야 했다. 그러니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고 무얼 놓쳤는지를 살폈다. 직업적으로 하는 일도 그 퍼즐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정신과 의사가 된 이후로 환자 중 누가 자살을 기도할 것인지 예측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당신이 보기에 자살은 선택인가.

“나는 자살을 선택이라고 부르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대체로 최후의 선택이기도 하고, 많은 경우 정신 질환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고통이 견딜 수 없는 수준이고 터널 끝에 빛이 없는 듯할 때, 자살은 유일하게 남은 선택지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자살을 예측해 막는 건 불가능한가.

“정확한 예측은 어렵다. 영국에서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85%는 의사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자살 위험이 낮다는 진단을 받는다. 자살 위험이 높은 사람 중 다행히 대다수가 죽지 않기도 한다. 생존자 인터뷰에 따르면, 3분의 1의 사람이 대체로 시도 한 시간 전에 목숨을 끊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자살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생각에 붙들리고, 너무 빠른 시간에 시도가 이뤄져서 다른 사람이 알 겨를이 없다. 가족과 친구에게 답을 들을 수 없는 무수한 질문을 남긴 채로.”

양극성 장애를 앓던 케빈 하인즈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배회하고 있을 때 바랐던 것은.

“케빈 하인즈는 어린 시절 여러 위탁 가정을 전전했다. 입양 후 운명의 방향은 바뀌었지만, 언제부턴가 자신에게 죽으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시달렸다. 그는 뛰어내리기 전, 누군가가 자신을 봐주길, 자신에게 말을 걸어 주길, 어쩌면 자신을 멈춰주길 바랐다. 그러나 누구도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파악하지못했다. 그리고 그는 뛰어내렸고, 물에 닿기 전에 후회했다고 했다. 그는 살아남았다. 금문교에서 뛰어내린 뒤 산 극소수 사람 중 하나다.”

필립 니츠케가 만든조력사 캡슐 ‘사르코’. /사진 AFP연합

#추억의 순간

다큐멘터리 ‘더 브리지’는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을 촬영했다. 2024년 금문교 아래로 떨어져 익사한 사람은 24명이다. 가볍게 조깅하던 중년 남성은 멈춰 서 전화 통화를 하며 웃다가 갑자기 난간을 넘어 죽음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한 젊은 남자는 89분 동안 다리를 서성이다 풀장에서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다이빙을 하듯 몸을 날렸다.

‘더 브리지’를 본 소감은.

“누군가 다리를 따라 조깅하다가 갑자기 펜스를 오르더니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떨어졌다. 영상은 내내 먼 거리에서 관음증적인 시선으로 촬영됐다. 굉장히 마음을 동요하게 하는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은 금문교에 자살 방지 철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마침내 다리에 안전망이 설치됐다.”

죽으려는 의지를 약간의 장애물로 꺾을 수 있을까.

“워싱턴 D.C.에는 인접한 두 개의 다리가 있다. 한 다리는 ‘자살 다리’로 유명했는데, 울타리가 설치되자 자살이 사실상 완전히 사라졌다. 놀라운 건 사람들이 울타리 없는 가까운 다른 다리로 찾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목숨을 끊으려고 다리를 찾아갔지만, 마음은 확실히 정하지 못한 탓이다. 자살 경향이 있는 사람도 실제로 죽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만 너무 큰 고통을 받아서 살아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가 힘든 거다. 정신적으로 양가적인 상태인 셈이다.”

자살 시도자가 자신이 죽을 거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인가.

“금문교에서 뛰어내린 후 생존한 1~2% 사람 중 절반이 뛰어내릴 때 자신이 생존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답했다. 자살하는 사람 중에서 정말로 죽고자 하는 사람은 일부일 것으로 본다. 일시 정지 버튼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많은 사람이 눌렀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1~2분 정도만이라도 멈춰 세울 수 있다면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죽음왕복편

29세의 나탈리가 안락사를 신청했을 때 그녀는 남편과 브뤼셀에 살고 있었다. 나탈리는 의사 앞에서 왜 죽고 싶은지를 설명했고, 의사는 판단력이 온전한지 살핀 후 신청을 승인했다. 시행일은 반년 뒤로 잡혔다. 나탈리는 부모에게 연락을 끊고, 직장을 그만두고, 유해한 인간관계도 끊었다. 근면하게 살겠다는 생각도, 잘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어졌다. 남편과 가까운 친구 몇몇만 나탈리의 결정을 알았다.

6개월 후, 나탈리는 안락사 신청을 취소하고 삶을 택했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다. 나탈리는 죽음에 대한 희망을 품으면서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했다.

안락사를 신청했다 살게 된 29세 나탈리와의 만남은 어땠나.

“나탈리는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았고,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벨기에에서 안락사를 신청해 승인을 받았지만, 죽음 예정일을 기다리는 동안 삶에 변화를 일으켰다. 직장을 그만두고, 더 나은 인간관계를 모색하고, 나쁜 관계는 끊어냈다. 더 충만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조만간 죽을 테니까. 왜 안락사를 취소했느냐고 물었더니, 완벽하게 살진 못해도 그럭저럭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기분이 더 나아질 만큼 나이를 먹을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고 했다. 클리셰(예측 가능한 상황)처럼 들릴 수 있지만, 자연스레 나이를 먹는 게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 이 경우에 시간은 진정한 우리 편인 듯하다.”

필립 니츠케가 만든 자살 기계(조력사)를 사용하면 의사가 동석할 필요도 없다고.

“니츠케는 조력사에 있어 경계를 확장한 사람이다. 그는 보건 의료 시스템의 개입이 전혀 없는 조력사를 가능하게 하려고 한다. 최근 첫 사용자가 나왔다. 58세 미국 여성은 불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걸 사용했다. 그녀의 죽음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니츠케는 조력사를 찬성하는 많은 사람으로부터도 선동적이며, 극단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나 또한 이것을 위험한 개발이라고 본다. 자살 경향이 있는 개인에게 새로운 죽는 법을 제공할 위험이 있어서다.”

자살은 반대하면서도 조력사에는 찬성할 수 있나.

“어떤 사람은 그렇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윤리적 충돌이 발생한다. 자살을 예방하고 싶지만 동시에 조력사를 허용한다면, 상충하는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어쨌든 네덜란드나 캐나다 같은 곳에서 조력사는 보편화되고 있고, 죽음의 6%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자살 보도가 더 많은 자살로 이어지는 베르테르 효과는 사실인가.

“사실이다. 매체에서 자살 사건 보도를 제한해야 한다는 걸 증명하는 자료는 많다. 특히 유명 인사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상세한 내용이 언급돼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자살에 대해 개방적인 논의도 필요하다. 금기를 깨고 자살에 대해 더 자주 터놓고 얘기해야 한다.”

스위스는 1977년에 안락사에 관한 국민투표를 처음 진행했고, 정부, 교회, 의료협회 모두 조력사에 반대했지만, 대중의 과반수는 조력사에 찬성하는 표를 던져 충격을 안겼다. 스위스는 외국인이 클리닉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유일한 국가다. 대표적인 조력 자살 기관 스위스 EXIT의 도움으로 2022년에만 1125명이 죽음을 맞았다.

반면 스웨덴은 2008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자살을 없애겠다고 공표했다. 뤼크는 정신 보건 정책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만, 자살 예방은 그 철학적 복잡성에 비하면 비교적 간단하다고 한다.

이미지 셔터스톡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난 사람 대부분 나중에 자살로 죽지 않는다는 건 무얼 의미하나.

“자살 시도에서 생존한 많은 사람이 계속 살아간다는 건 희소식이다. 이는 자살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도 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단지 사는 게 너무 고될 따름이라는 것이다. 고통을 겪고 있다면, 희망이 있다는 얘기를 해 주고 싶다. 자살 위기는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 살아있는 게 유일한 할 일이다. 도움을 청하고 기다리면 삶은 다시 밝아질 수 있다.”

뤼크는 자신이 자살 유가족이자 자살로 환자를 잃은 정신과 의사이기에, 죽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환자 앞에서 삶의 편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고 했다.

‘내 삶은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까.

“내 경우엔 삶에 부침이 있음을 수용하는 게 큰 도움이 됐다. 모든 고통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어떤 사건은 해일처럼 일어나고 그건 통제 밖의 일이다. 시간이 흐르고, 물살이 잦아들도록 둬야 한다.”

‘자살의 언어’ 막바지에 뤼크는 자전거를 타다 스톡홀름의 한 유명한 자살 다리에서 경찰차와 구조사가 자살하려던 여자를 구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곳은 몇 년 전 사람이 뛰어내리는 것을 어렵게 하는 보호 펜스를 설치했고, 그게 이날 한 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책에서 만난 노장 의사 루네손의 말이 보호 펜스처럼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80년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타인에게 선하게 대하면 많은 것을 돌려받을 수 있어요. 따스함을 경험할 수 있지요. 80년을 넉넉히 쓰고, 있는 것을 모두 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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