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살이 집단 ‘디아스포라’ 韓선 구한말 본격화 [2025 신년특집-광복 80년 한국인의 디아스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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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Diaspora)는 고대 그리스어로 파종을 의미하지만,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타국에서 살아가는 집단이나 공동체를 일컫는 말이 됐다.
우리 민족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 상당한 규모의 해외 이주를 경험하게 된다.
1860년대 대규모 흉년과 혼란을 피해 조선인들이 간도와 연해주 등지로 이주를 시작한 것이 근대 한국 디아스포라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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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농장 이민·강제동원 일본행
재외동포 현재 193개국 700만여명
디아스포라(Diaspora)는 고대 그리스어로 파종을 의미하지만,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타국에서 살아가는 집단이나 공동체를 일컫는 말이 됐다. 우리 민족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 상당한 규모의 해외 이주를 경험하게 된다.
한민족의 해외이주가 본격화한 것은 1910년대 대한제국 시기에서부터다. 1860년대 대규모 흉년과 혼란을 피해 조선인들이 간도와 연해주 등지로 이주를 시작한 것이 근대 한국 디아스포라의 시작이다. 1910년 일본에 의해 나라를 잃은 후 경제적, 또는 정치적 이유로 조선을 떠나는 한국인이 많았다. 1937년 연해주 지역 한인 18만명은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당하는 아픈 역사를 경험했다. 현재 재외동포는 193개국에 700만명 이상이 살고 있다.
1905년 9월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관부연락선을 시작으로 제주∼오사카, 여수∼시모노세키, 부산∼하카타 등 항로가 개설되면서 일본으로 건너가는 조선인 숫자는 급격히 늘어났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 자료에 따르면 연락선을 이용해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에 걸쳐 매년 8만∼15만명이 일본으로 도항했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은 “일본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건너가는 사람들이 급증했다”고 전했다. 1930년대 후반 전쟁 격화에 따라 탄광, 광산, 토목공사 등에 강제 동원된 사람의 수도 급격히 늘었다.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뿌리는 19세기 중후반 간도로 이주한 조선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1910년 경술국치 후 많은 조선인이 생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는 독립운동을 위해서 만주로 넘어갔다. 해방 즈음에는 중국 동북 지역 조선인 수가 200만명을 넘기도 했다. 중국공산당은 조선족을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인정했고, 앞서 생긴 조선족자치구가 1955년 연변조선족자치주로 확정되면서 중국인으로서의 ‘조선족’이 명확해졌다.
정지혜 기자, 워싱턴·도쿄·베이징=홍주형·강구열·이우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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