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석 감독 “이중정체성 고민 영화로 풀어… ‘평화적 공존’ 韓사회 중요 화두” [2025 신년특집-광복 80년 한국인의 디아스포라]

정지혜 2025. 1. 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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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디아스포라’를 말하다
‘재외 한인 삶 영화화’ 전후석 감독
美변호사서 독립영화 감독 전향
‘헤로니모’ ‘초선’ 이어 차기작 준비
코리아드림 외국인 유입 급증세
한국 다원성 고민 선택 아닌 필수
소수 이방인 ‘디아스포라적 사유’
혁신 필요한 세계시민의 소양

한반도를 떠나서 사는 한국인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는 전후석 감독은 “디아스포라적 사유를 하는 사람이 곧 세계시민”이라고 말한다. 본국에 살건 타국에 있건 한 사회의 소수 이방인처럼 사유할 줄 아는 힘이 세계시민으로서 필요한 소양이라는 의미다. 지배적인 그룹이자 다수는 세계의 한 단면을 본다면, 소수자·이방인은 다차원적으로 사회와 인생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후석 감독이 지난 2024년 12월 16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인의 정체성과 디아스포라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지난달 16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전 감독을 만났다. 재미한인인 전 감독은 대학 시절 영화학을 배우고 뉴욕에서 변호사를 하던 중 2015년 우연히 알게 된 쿠바 한인 헤로니모 임(임은조)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서 감독이 됐다. 2019년 개봉한 첫 작품 ‘헤로니모’ 이후엔 2020년 미국 연방하원선거에 도전하는 재미한인 5인의 선거기를 다룬 ‘초선’을 2022년 개봉했다. 한동안은 차기작 촬영 등의 이유로 한국에 머물 계획이다.

그가 귀띔한 세 번째 작품은 북한에서 10여년간 장애아동 치료를 했던 재미한인 박사의 이야기다. 전 감독은 “안타깝게도 북한의 문이 가까운 시일 내에 열릴 상황이 아니어서 한국에서 가능한 한 촬영을 먼저 하려고 왔다”고 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첫 집권 때 소수자 배척 담론이 형성돼 힘들었는데, 그런 사람이 다시 대통령이 된다는 사실이 암담하기도 했다”면서 트럼프 2기 출범이 한국행에 영향을 줬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미국 변호사에서 독립영화 감독으로의 진로 변경은 흔하게 있는 일은 아니다. 첫 작품 때만 해도 예상치 못했다. 20∼30분짜리 유튜브 영상 하나 만들 생각으로 쿠바에 갔다가 ‘그 정도 규모는 아니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렇게 뛰어들어 3년 반 정도를 영화 제작에 투자했다. ‘헤로니모’를 완료한 후에는 법조계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졌고, 때마침 읽은 존 볼턴 미국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자서전에서 두 번째 작품의 영감을 얻어 ‘초선’ 제작에 들어갔다.

전 감독은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라다가 18살에 다시 미국에 간 사람으로서 이중 정체성 고민이 항상 있었다”며 “그 와중에 쿠바에서 한인들을 만난 과정이 아주 극적이었고, 헤로니모라는 캐릭터를 통해 평생의 고민이었던 정체성 문제에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영화 제작은 변호사로서의 성공보다 정체성 문제가 우선순위였기에 하게 된 선택이었다.

광복 80주년을 맞는 소감에 대해서는 “우리가 식민지로부터 해방이 됐지만 온전한 복원이 아닌 아직도 분단 상태라는 것에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며 “현 정권이 그 책임을 이념에 돌린 구시대적 회귀가 너무나 참담하다”고 전 감독은 말했다.

한국에서 지금 디아스포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전 감독은 “‘공존’이라는 화두에 한국 사회가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접근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난 10년간 경제·문화적으로 폭발 성장한 한국에 ‘코리안 드림’을 갖고 유입될 해외 인구는 늘어날 것이고,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정학적 특수성도 고려하면 “평화적 공존, 다원성, 다양성에 대한 고민은 정말 선택이 아닌 필수적 지향점”이라고 전 감독은 말했다. 하지만 ‘과연 한국이 그런 교육이나 문화적 노출을 하는 사회였느냐’는 물음에는 그렇다고 답하기 힘들다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를 통해 화제가 된 셰프 에드워드 리를 자주 인용하고 있다. 한인과 미국인의 정체성 사이에서 늘 치열하게 고민하지만 동시에 ‘맛’ 하나에 집중하는 초월성을 말한 대목에서 ‘헤로니모’에 나온 유대인 성직자가 언급한 “고통에서 시작하지만, 혁신으로 이어진다”는 디아스포라의 속성을 느꼈다고 한다. 이는 현재의 한국에 절실한 메시지로도 읽힌다.

“다수에 속해서 편하게 산다는 개념에서 나아가 생각해 볼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그런 도덕·철학적 기제가 없을 때 우리는 디아스포라들의 존재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평화적 공존’과 혁신을 화두에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본국이 아닌 곳에서 손님, 소수 민족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이 능력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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