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맘카페보다 못하다" 국가교육위, 2년 반 동안 국민 의견 수렴 한 번도 안 했다
손 놓은 사이 AI 교과서 등 현장 혼란은 가중
"10만 동의받아야 의견 수렴" 너무 높은 벽
2022년 9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갈등이 심한 교육 정책을 혼란 없이 추진하겠다는 목표로 출범한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 그러나 의대 증원 문제부터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 논란까지, 수많은 교육 현안을 두고 현장 갈등이 증폭되는 동안 교육위는 법이 규정한 국민 의견 수렴을 한번도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교위가 만든 의견수렴 플랫폼은 "맘카페보다 못하다"고 할 정도로 방치돼 있다. 공적 기관으로서 국민 의견을 듣고 정책을 조정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에 엄연히 국민의견 수렴 규정 있는데…
5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의원이 국교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 기관은 2022년 9월 27일 공식 출범 이후, 지금껏 법이 규정한 '국민의견 수렴·조정' 절차를 진행한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운영법에 따르면 국교위는 △국회, 대통령 또는 중앙행정기관장의 요청 △일정 수 이상의 국민 요청 △국교위의 자체 심의·의결이 있을 때 특정 교육정책을 두고 국민 의견을 모을 수 있다.
의견 수렴은 대규모 설문조사나 토론회, 공청회 등의 방식으로 한다. 그러나 국교위는 교육 재정 문제 등 자신들이 정한 의제를 두고 토론회를 연 적은 있지만 국민적 관심이 뜨거운 교육 현안을 두고는 대대적인 의견 수렴을 하지 않았다. 국교위는 국민 의견을 듣고 조정하는 게 핵심 역할인데도 그동안 이를 등한시한 셈이다.
국교위가 손을 놓은 사이 AI 교과서 등 논쟁적 정책을 둘러싼 현장 혼란은 가중됐다. 애초 교육부는 오는 1학기부터 전국 초중고교에서 AI 교과서를 쓰도록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야당이 "현장에서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며 '교과서'가 아닌 '참고서'(교육 자료)로 지위를 격하시키는 법안을 지난달 말 통과시켜 각 학교의 채택률은 크게 떨어질 전망이다.
교육부와 교사단체의 각각 설문조사에서 AI 교과서 찬반 여론이 정반대로 나오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국교위의 의견 수렴 및 조정 기능은 없었다.
국교위 "국회, 정부가 국민의견 수렴 요청 안했다"
국교위 측은 국민 의견 수렴에 미온적이라는 지적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기관 관계자는 "정부 부처나 국회 등이 특정 교육 정책에 대한 국민의견을 수렴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고, 일정 수 이상의 국민 요청이 들어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AI 교과서 등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밀어붙이면서도 국민 의견을 모아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체 판단으로 국민 의견 수렴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데도 이마저도 하지 않았다.
학부모 등은 "애초 국교위가 시민들의 견해를 듣고 조율하는 데 큰 관심이 없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특히 국교위가 국민들의 생각을 듣겠다며 만든 '국민 의견 플랫폼'을 두고는 "지역 맘카페보다도 여론 수렴 기능이 떨어진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이 플랫폼에는 국민 누구나 교육 정책에 대한 글을 올릴 수 있는데 특정 게시글이90일 안에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국교위 전체회의 심의를 거쳐 대규모 여론조사 등 국민 의견을 수렴하게 된다.
국교위의 국민참여위원을 했던 김숙영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국회 청원은 5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 소관 상임위에 회부되고, 서울시교육청 청원은 50명 이상만 동의하면 담당 부처가 답변할지 검토하게 되는데 국교위는 동의 기준이 10만 명이나 된다"며 "문턱이 높으니 의견을 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이 게시판에 1년간 올라온 국민의견 수렴·조정 요청 글은 8개가 전부다. 이 가운데 동의 기준을 넘긴 글은 한 건도 없다.
국교위 측도 국민 의견 플랫폼이 현재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은 인정했다. 이 기관 관계자는 "올해 초에 향후 10년간 추진될 교육 정책을 담은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이 계획 등을 두고 국민 의견 플랫폼에 글이 많이 올라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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