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역사적 가치를 함께 품은 구석기 시대의 루브르 [배기동의 고고학 기행]

강주형 2025. 1. 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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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리 역사를 바꾸고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한 발견들을 유적여행과 시간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음미한다. 고고학 유적과 유물에 담겨진 흥분과 아쉬움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을 함께 즐겨보자.
<50> 프랑스 라스코 벽화 동굴
프랑스 라스코 동굴 황소의 방에 그려진 천장 벽화.

인류는 언제부터 아름다움을 추구했을까?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를 보면, ‘까마득히 먼 이전부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양한 동물들을 다양한 기법으로 그려낸 것이 현대 미술작가들조차 감탄하는 수준이다. 구석기시대 인류의 삶과 꿈이 생생하고 스펙터클하게 그려진 공간이니,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이 됐다. 너무 많은 방문객으로 유적을 폐쇄할 정도가 됐으니 말이다.

실제로 동굴 속에서 그림들을 마주하노라면 1,000세대 이상 앞서 살았던 구석기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뀐다. 자연과 동물, 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이 생동감 있게 표현된 장엄한 공간 속에서 자연의 외경과 삶의 열정이 배어 있는 원초적인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라스코 동굴 위치 및 평면도.

라스코 동굴 가는 길

2년 전 프랑스 보르도 몽테뉴 대학에서 한국 구석기시대 강의를 마치고, 이곳의 고고학 교수를 앞장세워 라스코 동굴로 향했다. 이미 오래전 방문한 적이 있지만, 이번엔 2017년 동굴 구조를 총체적으로 재현해 개관한 정밀 모사 동굴 ‘라스코4’(Lascaux Ⅳ)와 박물관이 목표다.

동굴이 있는 지역은 도르도뉴(Dordogne) 지방인데, 레제지에(Les Eyzies)라고 부르는 이 일대에는 여러 곳에 벽화 동굴이 있다. 또 크로마뇽 유적을 비롯한 인류 화석이나 무스티에(Moustier) 등 유명한 구석기 유적이 골짜기를 따라서 이어진다. 과거에는 ‘구석기 연구의 메카’라고도 불렸다. 우리에게 전곡리 주먹도끼의 아슐리안 논쟁으로 알려진 모비우스(H. Movius) 전 하버드대 교수도 이곳 아브리 파토(Abri Pataud) 동굴 유적을 연구했다.

골짜기 한쪽에는 마을이 있고 그 반대편 산 아래 세련되고 깔끔한 모습의 박물관이 보이는데 바로 옆에 정밀 모사 동굴이 있다. 유적 일대는 아직도 선사시대의 동물들이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한 경관이 남아 있다.

최초 발견자인 소년 라비다(왼쪽 두 번째)와 고고학자 앙리 브뢰이(맨 오른쪽)가 1940년 프랑스 라스코 동굴 입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라스코 박물관 아카이브

개가 먼저 본 동굴벽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1940년 가을, 몽티냑(Montignac)마을의 10대 소년 라비다(M. Ravidat)는 좁은 동굴에 빠진 로봇(Robot)이라는 이름의 개를 구하기 위해서 친구들과 함께 15m 깊이의 동굴 입구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끝없이 그려진 수많은 동물들을 발견했다. 처음에 라비다는 인근 라스코 저택으로 연결된 비밀 통로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당시 저명한 고고학자였던 앙리 브뢰이(H. Breuil)가 구석기시대의 동굴 벽화로 확인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1983년 라스코 동굴의 첫 복제동굴인 라스코2 개막일 모습. 이후 라스코 2에는 매년 30만 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라스코 박물관 아카이브

라스코 동굴에서 가장 유명한 ‘황소의 방’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넓은 공간이 눈앞에 전개되는데, 이곳에 생동감 넘치는 긴 뿔의 황소가 검정과 누런색으로 그려져 있다. 벽뿐 아니라 천장에도 많은 동물이 그려져 있어 마치 중세의 종교 건축물에 서 있는 듯한 느낌에 휩싸인다.

이곳에서 동굴의 속으로 더 깊이 이동하면 구석구석 어둠 속에서 배어 나오듯이 나타나는 그림들에 감탄하게 된다.

소년 라비다, 고고학자 브뢰이가 희미한 등불에 의지해 어두운 동굴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동굴 벽화가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으리라.

라스코4의 소와 말 등 다양한 그림.

어떤 그림이 있을까?

라스코 동굴의 평면도는 ‘K’ 자형인데, 1,500여 점의 음각선화를 포함해 6,000점의 그림이 확인됐다. 또 동물 그림 900여 점 중에 정확하게 확인된 것이 605점이다.

그림들이 고스란히 보존된 것은 바로 동굴이 밀폐돼 있었고 건조한 환경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림 중 절반 이상이 말(馬)이며 수사슴도 거의 100개에 달하지만, 소나 들소 등은 각각 5% 미만으로 나타난다. 이 외에도 7마리의 고양이와 새·곰·코뿔소 각 1마리씩 확인됐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이 많이 사냥했던 순록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다소 특이하다.

라스코 벽화의 한 부분.

형체를 알 수 있는 동물 중에서 가장 큰 것이 황소의 방에 있는 소인데, 길이가 5m가 넘는다. 크기 차이, 정지 형태, 동적 표현 그리고 무리 그림 등등 표현이 다른 것은 분명 대상에 대한 인지가 달랐음을 보여주지만 그 이유는 짐작할 따름이다. 다산의 기원 또는 사냥 동물의 영혼을 위한 것 등등의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동물의 조합상이나 그려진 위치를 가지고 정신 세계를 구조주의적으로 표현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렇듯 수만 년 전에 이뤄진 예술 행위가 오늘날 사람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한다는 점이 라스코 동굴의 최고 인기 비결 아닐까?

검정과 갈색으로 그려진 말 그림.

눈여겨볼 그림 기법

검정, 노랑, 그리고 붉은색 등의 광물성 물감으로 그렸는데, 물감은 동물성 기름이나 칼슘 성분이 많은 동굴의 지하수에 개서 만들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것으로 만들어진 ‘봉’을 사용해 그리거나 찍거나 했는데, ‘붓’의 형태는 아니다. 속이 빈 새 뼈를 이용해 입으로 불어서 채색한 것들도 있다.

그림은 선으로 윤곽을 그린 것도 있지만 내부를 동양화 염(染)법같이 채색한 것들도 많다. 열을 지어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표현한 것들도 있고, ‘원근’의 표현이라고 생각되는 다른 크기의 동물이 중첩돼 나타나는 것도 있다. 원근법은 한참 후대에 나타나는데, 이를 두고 파블로 피카소는 “1만2,000년의 예술사 공백”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얼굴을 정면으로 하고 몸통을 측면으로 그린 기법은 바로 피카소적 표현의 원조 아닐까?

일렬로 배열된 사슴 머리 그림.

어두운 동굴 속 높은 천장에 그림을 그릴 때 지지대와 등불이 필요했을 것이다. 실제로 등잔이나 석기 유물들이 발견됐다. 또 물감을 개어서 준비하는 과정 등 협업도 필요하다. 여기에 기법의 능숙함까지 고려하면 소위 '작가들'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1만 년 전까지 1만 년 이상의 시간에 걸쳐 여러 집단이 그렸을 것이다. 그래서 ‘각기 다른 집단이 자신들의 토템 신앙 동물을 그린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구석기시대 예술사 교과서인 셈이다. 실제로 동굴 중 앱세(Apse)라고 불리는 지점에는 음각으로 그린 암각화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다른 집단의 작품일 수 있다.

라스코 동굴에서 유일한 사람 모습의 그림. 다만, 새 머리를 하고 있다. 옆에는 다친 들소가 내장을 드러내고 있다.

희귀한 코뿔소와 내장이 드러난 들소, 그리고 새 머리의 사람이 그려진 경우는 사냥 에피소드를 서사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완전히 다른 개념의 그림일 수 있다. 사실 사냥 모습을 묘사한 그림은 술라웨시(인도네시아)에서 4만여 년 전에 시작됐지만, 다양한 기법으로 그려진 라스코 동굴벽화가 최고의 선사 예술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들소 그림.

생존을 위한 퍼포먼스?

라스코 동굴은 프랑스의 남부에, 유명한 알타미라 동굴은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처럼 벽화 동굴은 라스코가 있는 도르도뉴 지방이나 지중해 서부 지역에 밀집돼 있다. 4만 년 전~1만 년 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분석에 따르면, 라스코 동굴은 2만3,000년 전부터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는 구석기시대 중에서 가장 추웠던 기후(2만5,000년 전 빙하극성기)에 해당한다.

약 4만 년 전부터 해수면이 빠른 속도로 하강해 2만5,000년 전에는 북대서양이 육지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따뜻한 멕시코 난류가 더 이상 유럽 지역으로 올 수 없었으니 유럽에는 대단한 추위가 엄습했다. 그래서 동굴 벽화는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정신력을 더욱 강하게 하고 집단의 단합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생존을 위한 특별한 샤먼적 의례이자 퍼포먼스였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동남아시아 열대지역에서도 보인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그들은 왜 그림을 그렸을까? 이 또한 고고학의 중요한 수수께끼 중 하나다.

황소의 방 천장 그림을 복제해 라스코4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는 모습.

라스코 4, 진짜 같은 가짜

전쟁이 끝난 후에 늘어난 방문객이 내뿜는 탄산가스와 미생물에 의해 벽화가 손상됐다. 복제 동굴을 만들어 관람토록 하고 진짜 동굴 유적은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게 됐다.

라스코 1은 1940년 발견된 진짜 동굴로, 1963년부터 입장이 불가능하다. 라스코 2는 1983년에 정교하게 만들어진 첫 복제 동굴이고, 라스코 4 팩시밀리(Facimili)는 세 번째 복제 동굴이다.

이 라스코 4는 지난 2017년 유적에서 400m 떨어진 지점에 새 박물관과 함께 개관했는데, 이전 복제 동굴보다 훨씬 완성도가 높다. 재료나 그림 기법 등을 연구해 원형에 거의 가까운 벽화 동굴을 만들어낸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6,400만 달러(약 940억 원)라는 거액을 투입해 현대 디지털 기술로 더욱 정밀하게 모사된 동굴을 만들었다. 무려 34명의 작가가 3년 동안 파이버글라스로 형태를 떠서 작업했다. 심지어 원래 동굴의 내부 온도나 숲 바람 소리까지 똑같도록 만들었다. “진짜보다도 더 진짜 같은 가짜”라는 이곳 학예사의 말에 끄덕일 수밖에 없다.

라스코 동굴의 일부를 복원해 전시하는 모습.

지속 가능한 미래, 문화 전승에 있다

구석기 예술 최고의 컬렉션, 라스코 동굴, 시스틴(Sistine) 대성당에 비견되기도 한다. 동굴이 열린 순간부터 퇴행적 변화는 시작됐다. 유적은 세월이 흐르면 변화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적에 담긴 선사시대 인류의 위대한 기억들이 천 세대를 넘어 완전히 다른 차원의 현대미술로 진화했다. 이런 점에서 문화유산 보존과 전승은 인류 미래 지속가능성의 출발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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