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건사고, ‘집단 트라우마’ 우려

문세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2025. 1. 6.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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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으로 시작됐던 지난해 12월은 전남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마무리됐다.

정치 갈등을 지켜보고 여객기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겪으며 생긴 개인 및 집단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서로 공감하고 지지해주는 사회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전문가들은 집단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서는 세상이 더 나아지고 안전해질 것이라는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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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여객기 참사 등
정신적 고통 커… 공감-지지 중요
일상에 집중하며… 건강하게 애도를
12·3 비상계엄으로 시작됐던 지난해 12월은 전남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마무리됐다. 정치 갈등을 지켜보고 여객기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겪으며 생긴 개인 및 집단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서로 공감하고 지지해주는 사회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은 2023년 우울증 인구 100만 명 시대를 맞았다.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4년 상반기(1∼6월) 자살률은 전년 동기 대비 10% 늘었다. 이처럼 정신질환에 취약해진 한국인에게 2024년 12월은 정신질환 위험 부담을 더욱 높였다.

트라우마는 과거에 경험한 사건으로 정신적 고통, 불안, 공포감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정부가 국가애도기간을 지정할 만큼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집단 트라우마’가 생긴다. 직접적인 피해자와 유가족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이 큰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태원 참사 등이 최근 수년간 한국을 강타한 대표적인 집단 트라우마 유발 사건으로 꼽힌다. 앞선 사건들과 관련된 연구에 따르면 재난 당사자 및 유가족의 감정적 고통은 특히 크고 복잡하다.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발표한 장기 코호트 조사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은 사고 발생 6년이 지난 후에도 정신건강이 여전히 악화한 것으로 분석됐다. 재난 생존자나 유가족 등은 회복 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집단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서는 세상이 더 나아지고 안전해질 것이라는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을 만든 분은 학교폭력으로 아들을 잃었고,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세운 분도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로 쌍둥이를 잃었다”며 “세상이 더 안전해야 한다거나 더 나아져야 한다는 등의 의미가 부여되면 유족과 국민들이 버틸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주변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도 중요하다. 마음이 산산조각 난 느낌, 내 몸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느낌이 드는 상실의 고통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크지만 마음을 공감해주는 관계를 통해 삶의 희망을 이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몇 해 전 한 환자가 자살로 사망한 적이 있다”며 “사망자의 어머니는 자신의 점퍼를 벗어 시신을 가리고 다른 가족이 올 때까지 손을 잡아준 경찰관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하겠다고 했다”고 사례를 소개했다. 일상생활로 복귀해 일상을 빨리 회복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트라우마는 많은 사람이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므로 혼자 끙끙 앓지 말고 함께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챙기는 시간도 도움이 된다”며 “사건에 과몰입하지 말고 각자의 생활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항공기 참사의 경우 희생자를 함께 떠나보내는 이른바 ‘사회적 장례’도 필요하다. 백 교수는 “대형 참사의 고통은 개인적 접근만으로 해결하기 힘들다”며 “사회적 재난은 사회적 장례를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4년 네덜란드발 여객기 추락 사고를 언급했다. 친러 반군 미사일에 격추돼 298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가 발생한 뒤 네덜란드는 유해를 실은 차량 행렬을 진행했다. 네덜란드 시민들은 행렬을 위한 교통 통제에 불평하지 않았고, 연도에 꽃을 던지며 성숙한 방식으로 애도를 표하며 집단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문세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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