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는 中 따돌릴 기회… ‘관세 폭탄’ 맞설 카드 적지 않다
국제통상 전문가 최병일 교수가 본 ‘트럼프 어게인’
“트럼프의 귀환? 두렵지만 해볼 만한 싸움이다.”
국제 통상 분야 권위자인 최병일은 ‘실사구시 경제학자’로 불린다. 우루과이라운드, WTO, 한미 FTA 현장을 발로 뛰며 실전 협상학의 토대를 마련했고,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으로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된 2010년대 후반 WTO 다자무역 체제의 종말을 예고하며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도식에서 벗어날 것을 경고했다.
오는 20일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트럼프 어게인’(책들의 정원)을 출간하는 그는 “트럼프 2기는 기회다. 중국이 주춤하는 사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성장률이 0%대 이하로 내려서는 건 시간문제”라고 했다.
◇ 미치광이? 미치광이 전략
-언론의 ‘박빙’ 예측에도 일찌감치 트럼프 승리를 확신했다더라.
“지난해 봄 미국 정치학자들과 내기를 했다(웃음). 바이든에 이어 해리스가 들고나온 이슈가 젠더·낙태권·민주주의여서 이건 안 되겠다 싶더라. 미 국민의 70%가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한 설문조사가 있었다. ‘잘못된 방향’이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일까, 치솟는 물가와 범죄일까? 트럼프는 국민의 얇아진 지갑, 불법 이민으로 들끓는 범죄와 안전 문제를 공략해 낙승을 거뒀다.”
-총알도 피하고 귀환한 트럼프로 세계는 바짝 긴장해 있다.
“미 유학 시절이던 1987년 공항 서점에서 ‘아트 오브 딜’(협상의 기술)이란 책을 봤다. 표지에 빨간 타이를 맨 금발의 백인 남자가 있었는데, 부동산·카지노 사업가 트럼프였다. ‘당신은 해고야’를 외치는 TV 진행자로 변신했던 그가 대통령이 되자 미국은 패닉에 빠졌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우리가 모르는 미국이 있었다’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패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길 줄을 몰랐다’고 한 트럼프는 출발부터 불확실한 존재였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이었으며, 그 모든 게 전략이기도 했다.”
-모든 게 전략이다?
“트럼프는 미치광이가 아니라 미치광이 전략을 쓰는 사업가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상식 밖 언행을 던지면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린다. 뼛속까지 장사꾼인 그에게 ‘대통령다움(presidential)’은 없다.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며 캐나다 트뤼도 총리를 갖고 노는 걸 보라. 불법 이민을 막지 않으면 관세를 25% 때린다고 하자 멕시코 정부가 국경을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국민이 열광할 수밖에 없다.”
-충성파로 채워진 2기 각료 중 누구를 눈여겨보나?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와 무역대표부 제이미슨 그리어. 베센트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예일대를 다녔는데, 펀드 쪽으로 가서 조지 소로스에게 돈 버는 법을 배운 사람이다. 그가 트럼프에게 두 가지 아이디어를 줬다. 관세 협상으로 상대국에서 원하는 걸 끌어낼 것, 동시에 아베의 ‘세 개의 화살’처럼 성장과 혁신을 할 것. 월가가 지지하고, 트럼프 정부에서 중심을 잡는 인물이라 베센트가 지명됐을 때 미 주가가 급등했다.”
-제이미슨 그리어야말로 관세 전쟁의 선봉장이라던데.
“트럼프 1기의 경제 책사였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의 비서실장이었던 그리어는 중국 봉쇄 전략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중국의 PNTR(영구적 정상 무역 관계) 지위를 박탈해 전방위로 포위하는 구상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강경파와 중도파를 적재적소에 보용하는 트럼프의 용인술을 보면, 그는 어떤 경우에도 ‘나는 승리했다’고 주장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일론 머스크와의 밀월은 오래가지 않을 거라고 보는 시선도 있더라.
“생각보다 오래갈 것이다. 트럼프가 ‘1기 때는 세상이 다 나와 싸우려고 하더니 이제는 전부 친구가 되려고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친구들’을 만들어준 게 일론이다. 무엇보다 일론은 전 세계 안보 통신망에 링크를 가지고 있다. 언제든 푸틴한테 우크라이나의 움직임을 알려줄 수 있는 인물이다. 중국에 테슬라 공장이 있는 일론은 ‘트로이의 목마’일 수도 있다. 푸틴, 시진핑과 상대해야 할 트럼프에게 일론의 용도는 차고 넘친다.”
◇ 트럼프가 벌어준 4년을 기회로
-수출로 먹고살아 온 대한민국은 트럼프의 ‘관세 장벽’ 앞에 섰다. 상대국에 10~20%, 중국은 60%까지 관세를 때리겠다 엄포를 놓는데 실행에 옮길까?
“트럼프에게 관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이고 요술방망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 적자를 메우고, 해외 기업 투자를 유도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데다, 불법 이민과 마약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관세를 그대로 확정하진 않을 것이다. 우리가 협상 테이블에서 뭘 주고 뭘 받을 것인지, 치밀한 전략을 짜야 한다.”
-한국엔 기회라고 했더라.
“시진핑의 중국을 질식시키기 위해 트럼프는 관세 60%와 수출 통제를 단행할 것이다. 미국 제조업의 수퍼 파워를 부활시키겠다는 트럼프의 야망은 매우 시대착오적이지만, 우리에겐 중국을 따돌릴 4년이란 시간을 벌어줬다. 반도체, AI 기술 혁신으로 격차를 확 벌려야 한다.”
-중국이 당하고만 있을까?
“중국은 현재 저성장 국면으로 들어섰다. 관세 폭탄엔 관세, 제재엔 제재로 맞대응했던 8년 전 중국이 아니다. 광물의 무기화, 위안화 평가절하, 대만 봉쇄 등 여러 카드를 흔들겠지만 미국은 물론 유럽, 아시아 국가들의 초경계 대상이 된 중국이 과거처럼 위협적으로 행동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는 한국도 대중 수출 통제에 동참하라고 압박하는데 미중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묻는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 대한민국에 미국은 동맹이고, 중국은 경제 파트너다. 신뢰를 손상시킨 파트너에겐 얼굴 붉히고 따질 수 있어야 한다. 제조업 대국인 한국은 그 역량을 이미 갖췄다. 우리가 태업하면 세계 경제를 2~3일 스톱시킬 수도 있다. 트럼프가 조선업 협력을 요청해왔듯, 우리가 가진 패로 협상에 당당히 임해야 한다.”
◇ 中에 韓은 가장 약한 고리?
-중국은 경제 보복을 하려 들 텐데.
“일본은 ‘센가쿠 분쟁’을 겪으며 희토류 수출을 봉쇄한 중국과 결별하기 시작했다. 제조업 생태계를 구축해 소재와 부품을 자급하는 중국은 우리에게 더 이상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중국에 위축돼 있다. 사드 보복을 당하면서도 대안을 마련하지 않았고, 미국이 ‘칩4′ 공조를 제안했을 때도 쭈뼛쭈뼛했다. 그러니 중국이 한국을 가장 약한 고리로 본다. 세게 밀면 밀린다고 생각한다. ‘중국몽과 함께하겠다’는 문재인의 발언은 얼마나 충격적인가. 나는 이명박의 자원 외교가 재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일 FTA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처럼 공급망이 불안하고 제조업 생태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소재와 부품이 강한 일본, 조립과 최종 생산이 강한 한국이 파트너십을 이룬다면 ‘윈윈’ 할 수 있다. 이를 가로막는 정치·역사 논리를 세련되게 극복할 수 있다면 공급망 안정, 일자리 교류 등 한일 경제 공조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청도 우리에겐 큰 숙제다.
“트럼프가 한국을 콕 집어 ‘머니 머신’이라고 했기 때문에 재협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지만, 경제와 안보를 패키지로 묶어 협상하면 된다. 한국은 해외 최대 미군 기지를 유지하면서 미국산 무기를 셋째로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어느 나라보다 많이 미국 내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김정은과는 다시 만날까?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중동 전쟁을 중재해 노벨 평화상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북핵 성과를 얻으려면 너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정은과 만난다면 미국 내 스캔들을 덮기 위한 쇼의 목적일 가능성이 높다.”
◇ 공 하나에 두 번은 없다
-트럼프도 버거운데 우리는 계엄과 탄핵으로 초유의 경제 위기를 맞았다.
“동맹이길 포기하려는 미국, 무역을 무기화하는 중국, 국내 정치까지 삼중고다. 해외 학자들은 ‘코리안 크라이시스(Korean Crisis)’라며 걱정한다.”
-최상목 권한대행 체제가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12월 3일 이후 세계는 한국을 두 가지 관점에서 지켜보고 있다.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한국 정치가 복원될 것인가, 한국의 시장경제가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줄 것인가. 가장 중요한 건 국가 신용도다. 돈이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속도가 비행기보다 빠른 시대에 국가 신용도가 한 등급이라도 내려가면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리는 비용이 커지고, 기업들은 큰 어려움에 빠진다.”
-정쟁과 분열은 계속되고 있다.
“IMF 외환위기 때는 금을 모아서라도 위기를 극복하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은 차기 권력을 향한 극한 싸움만 있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수권 정당이 되려면 한국 경제가 성장의 활력을 찾으면서 분배도 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신냉전 시대에 한·미·일 공조를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답해야 한다. 탄핵소추안에 적힌 ‘북·중·러를 무시해 안보 위협을 받았다’는 국제 정세 인식은 얼마나 심각한가.”
-우리 경제가 살아날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한국이 ‘87년 체제’에서 37년간 시행착오를 겪었으면 최소한 경제에 대해서는 좌우가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성장이냐, 분배냐를 갖고 싸울 것인가. 노동개혁, 연금개혁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고 생존의 문제다. 21 세기 들어 대한민국의 유일한 개혁 조치는 한미 FTA였다. 노무현이 시작하고 이명박이 마무리한 ‘좌우 합작품’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서울대 야구부 선수였더라.
“야구 명문 경북고가 모교다. 유신 정권때 데모도 하고 야구도 한 ‘더블 운동권’이다(웃음). 9회 말 투아웃에서도 홈런 한 방으로 역전할 수 있고, 모든 타자가 공을 칠 기회를 균등하게 얻으며, 전략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김성근 감독을 존경하는데, 그분 인생 신조가 ‘1구2무’다. 공 하나에 두 번은 없다. 공 하나하나를 최선을 다해 던져야 한다는 뜻이다. 인생도, 나라 경제도 그렇다.”
☞최병일
1958년 대구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예일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90년대 한미 통신 협상, 우루과이라운드 서비스 협상, WTO 통신 협상에서 한국 대표로 활약했다. 1997년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임용돼 한국협상학회장, 한국경제연구원장, 한국국제통상학회장, 한국국제경제학회장,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을 지냈다. 스웨덴 왕립공학한림원 국제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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