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발달장애, 나이 듦에 관하여
[더 보다 41회 II] 발달장애, 나이 듦에 관하여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는 건, 한 살 더 나이 들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홍인기 / 52세
50대 초반이 됐잖아요. 그러니까 좀 더 건강했으면 좋겠고 이제 100세 시대니까 더 어떤 일을 더 해야 할지. 그런데 할 일은 너무 많잖아요. 그래서 더 기대되는 또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인터뷰> 황류아 / 26세
서른도 가까워지고 하니까 좀 나이 듦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좀 더 성숙해져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같은 속도로 나이 드는 건 아닙니다.
<인터뷰> 김경미 /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요즘에 이제 노화에 대한 얘기들 엄청 많잖아요. 느리게 나이 들기, 식단 이런 거 엄청 유명하잖아요. 그거를 발달장애인한테 적용하다 보면 발달장애인은 거기에 해당이 안 되는 이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문제라고 볼 수 있죠.
건강하게 천천히 나이 들어가는 삶,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요?
월요일 아침. 45살 유준성 씨가 출근길 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40분 넘게 달린 버스. 꼬박 10분을 더 걸어 일터에 도착했습니다.
<인터뷰> 원순철 / ‘우리마을’ 원장 · 신부
‘우리마을’은 발달장애인 50명이 매일 출퇴근하는 직업재활 전문 시설입니다. 콩나물 작업장에는 20명의 발달장애인들이 일을 하고 계세요.
지적 장애를 가진 준성 씨는 이곳에서 9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유준성 / 45세
앞치마를 입고 장갑을 끼고 락스를 뿌려서 청소를 해요. 통 닦는 그걸 월요일마다. 월요일마다 하고.
주 5일, 하루 5시간을 업무에 열중하는 준성 씨. 그런데 최근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인터뷰> 유준성 / 45세 · ‘우리마을’ 직원
투입을 계속하다 보니까 갑자기 끝나고 올라오니까 막 손이 막 갑자기 떨림이 막 이 손가락이 이렇게 부들부들...
몸의 변화는 객관적 지표로도 나타납니다. 최근 체중이 10kg 가까이 늘어 복부 비만 진단을 받았고, 혈압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터뷰> 김복희 / ‘우리마을’ 사회재활 교사(사회복지사)
혈압이 높다고 간호사 선생님이 깜짝 놀라서 이제 전화를 하신 거예요.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이번에는 160에 95가 나왔다고...
아직 40대 중반의 나이, 준성 씨에게 노화의 신호가 오기 시작한 겁니다.
<인터뷰> 노승현 / 루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발달장애인의 경우 비장애인에 비해서 노화의 속도가 빠르다'라고 하는 지적들이 있는데요. 3~40대 정도에 노화 관련된 변화를 경험하는 인구가 확률적으로 높다. 특히 다운증후군 장애인 혹은 조금 심한 지적 장애인 영역에서 (관찰된다는 연구가 많습니다).
발달장애인에게서 관찰된다는 빠른 노화.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인터뷰> 노승현 / 루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발달 과정에서 장애가 발생하기 때문에 신체 심리 사회적 발달이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점인 25세 노화가 시작되는 시점에 출발선에서 건강의 격차가 있을 수 있고, 그런 격차가 이제 변화를 더 빠르게 느껴지게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고요.
의료진과의 소통이 어려운 데다 생활 습관 관리도 잘 안되는 등 이른바 ‘건강 장벽’도 빠른 노화의 원인으로 꼽힙니다.
<인터뷰> 김경미 /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노화가 늦게 오려면 음식, 신체적인 건강, 심리적인 건강, 사회적인 건강이 다 받쳐줘야 하는데 그런 거에 대한 관심이 아직은 발달장애인 쪽은 없기 때문에 노화의 속도가 더 빠르다는 거죠.
노화의 속도가 빠르다는 건, 남들보다 이른 시기에 노년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주말엔 가족과 함께, 주중엔 사회복지사와 함께 생활하는 준성 씨도, 벌써부터 노후가 고민입니다.
<인터뷰> 유준성 / 45세 · ‘우리마을’ 직원
60이 되면 또 은퇴를 해야 하니까요. 은퇴하면 또 갈 데가 없으니까... 만약 나간다면 원룸 산다 그러면 방세 또 내야 하고 요리를 또 혼자서 해 먹어야 하고...
발달장애인과 부모가 함께 나이 들면서, 가족 내 돌봄이 어려워진단 점도 문제입니다.
<인터뷰> 원순철 신부 / ‘우리마을’ 원장 · 신부
재작년에 은퇴한 한 분은 80세가 된 자기 형수님이 있는 집으로 갔어요. 형님이 돌아가시고. 너무 힘든 상황이잖아요.
보건복지부 실태조사 결과, 50세 이상 발달장애인의 42%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혼자 보낸다고 답했습니다.
돌봄과 교류가 더 필요해지는 노년기에 오히려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인터뷰> 김경미 /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서비스를 이용 안 하면 사회복지사와 관계망도 끊어지는 거고, 부모님도 노화되니까 관계망이 끊어지는 거고. 혼자 고립돼 있을 확률이 점점 높아지는 거죠.
일찍 찾아오는 발달장애인의 노년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최신 가요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 사람들. 얼굴에 생기가 넘칩니다.
추위를 피해 실내에서 함께 걷기 운동도 합니다.
한 비영리법인이 운영하는 중고령기 발달장애인 거주 시설의 아침 풍경입니다.
<인터뷰> 황규인 / ‘교남시냇가’ 원장
교남시냇가는 일반인보다 노화를 15~20년 정도 일찍 겪는 발달장애인 거주 시설입니다. 일상 생활에서부터 평생 교육, 의료적 지원, 임종과 장례, 유품 정리까지 다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사는 발달장애인 29명 중 대부분은 4~50대.
나이는 중년이지만, 노인성 질환을 몇 가지씩 앓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지연 / ‘교남시냇가’ 간호사
고혈압, 당뇨는 사실 기본으로 갖고 가고 있고요. 평균적으로 6개 이상의 질환을 갖고 있는 분들이 한 절반 이상?
식사 준비도 요양원만큼이나 신경 쓸 게 많습니다.
<인터뷰> 황규인 / ‘교남시냇가’ 원장
삼킴 곤란이 일곱 명 정도, 그리고 치아가 소실됐거나 다른 원인에 의해 다져서 식사를 드려야 하는 분이 한 다섯 분.
이곳 입주민 중 3분의 1은 이미 치매 판정을 받은 상태.
정기적으로 옛 사진을 들춰보며 기억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요양기관이 아니다 보니 치매 전문 인력 등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치매 진행을 늦추기 위한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겁니다.
<인터뷰> 김혜림 / ‘교남시냇가’ 사회복지사
즐거웠던 순간이라든지 그런 기억들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계속 되새겨 보면서 그래도 좀 천천히라도 (진행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어요).
최근엔 의료 기기를 갖춘 생활 공간까지 어렵게 마련했습니다.
<녹취> 황규인 / ‘교남시냇가’ 원장
누워서라도 좀 팔 운동이라도 할 수 있는 거? 그다음에 대소변을 볼 수 있는 곳. 또 식탁. 병원식 배치로 볼 수 있죠.
발달장애인 보호자에겐 이런 맞춤형 시설이 큰 의지가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두환 / ‘교남시냇가’ 이용인 김정미 어머니
워낙 케어를 잘해주시니까 완전히 맡길 수가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맡기고, 정미도 이제 거기도 제집이고 여기도 제집이고... 이렇게 늙어가면서 사는 날 동안 그렇게 편안을 누리면서 저도 거기서 할 수 있는 걸 도와가면서 다 같이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인터뷰> 노승현 / 루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현재 운영되고 있는 시설들은 선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것이 보편적인 모델이 돼서 중고령 장애인을 전문적으로 케어하는 거주 시설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시설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하는 발달장애인이 훨씬 많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입니다.
50세 이상 발달장애인의 78%가 가장 선호하는 주택 유형으로 독립된 일반 가정을 꼽았습니다.
<인터뷰> 노승현 / 루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들, 친구, 이웃이 있는 친숙한 공간이 가장 행복할 가능성이 높은 공간이기 때문에 중고령 발달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주거의 선택지가 필요하다.
이른 아침, 발달장애인 75살 이희경 할머니가 외출 준비를 합니다. 목도리와 모자를 단단히 챙겨 입습니다.
부지런히 걸어 도착한 곳은 서울의 한 발달장애인 전용 복지관.
이곳에서 할머니는 어린 시절처럼 학생이 됩니다.
<녹취> 홍태경 / 충현복지관 사회복지사
여러분이 80살 어르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나의 모습이 어떤 모습일지를 내가 상상을 한 번 해보는 거예요.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완성된 그림을 사람들 앞에서 소개해 봅니다.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복지관에서 보내는 한나절은 가장 즐거운 시간입니다.
<인터뷰> 이희경 / 75세
집에 혼자 있으면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 (여기) 오면 이야기 많이 해. (여기 오는 게) 재밌어. 아이들 만나고.
20년 넘게 복지관에 다니며 만든 사회적 관계가, 할머니의 노년기를 지탱하고 있는 겁니다.
<인터뷰> 구본영 / 충현복지관 사무국장
저희는 (이희경 님을) 왕언니라고 부르는데 충현복지관 안에서 굉장히 다양한 관계들을 맺으면서 살아오셨잖아요. 원하시는 삶이 있으면 그 삶을 그대로 지원하는 게 저희의 목표죠.
하지만 이 할머니처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40대 이상 발달장애인은 많지 않습니다.
전국 장애인복지관 265곳 중, 중고령 발달장애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26곳. 10%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노승현 / 루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연령이 높을수록, 특히 40대 이후에 더 높은 수준의 지원이 필요한데 오히려 현행 서비스는 40대 이후에 발달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크게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이 부분을 충분하게 채워가야 지역사회에서 행복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는 기본적인 배경이 되는 것이다.
국내 발달장애인은 27만여 명. 이 가운데 1/3은 40세 이상의 중고령층입니다.
<인터뷰> 김경미 /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내가 건강하게 나이 들려면 '뭐가 필요하지, 어떻게 되지'라는 생각을 해보셨을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럼, 그거와 똑같이 발달장애인에 대해서도 그럼 이 사람이 건강하게 지역사회에 살면서 나이 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자원들을 만드는 노력. 그런 것들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건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든 누릴 수 있는 미래가 돼야 할 겁니다.
<인터뷰> 김태영 / 62세
(어떤 할머니 되고 싶어요?) 건강하고 행복한 할머니. 그리고 재미나게 사는 할머니.
촬영: 조선기 강우용 설태훈 오광택 이창준
영상편집: 김태형
그래픽: 장수현 이시영
자료조사: 이승민
조연출: 유화영 심은별
촬영협조: 교남시냇가 우리마을 충현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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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린 기자 (di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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