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수업’ 교사 “교실, 정치 무균실 안 돼야”
수업 자료 온라인 공유 화제
정치적 사건 교육 싸고 논란
“학생 자유로운 목소리 내야
정치 성향 편중된 교육 아냐”
12·3 비상계엄 다음날 학교 현장은 떠들썩했다. 교사들 중에는 새벽 사이 특별수업 자료를 만든 이들도 있었다. 경기 광명시의 중학교 역사 교사인 한유라씨(31)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한씨가 전국역사교사모임 홈페이지를 통해 공유한 특별수업 자료는 조회수 19만회를 넘길 정도로 화제가 됐다. 자료에는 비상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의 타임라인뿐 아니라 계엄령의 정의, 계엄령 선포의 역사 등이 담겼다.
한씨의 책 <12·3 사태, 그날 밤의 기록>(사진)은 지난달 27일 출간됐다. 그는 출판 제의를 받고 비상계엄 당일부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까지의 상황을 엮어 썼다. 책에는 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국회 및 법률 용어들도 정리돼 있다.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한씨를 만났다. 그는 비상계엄 사태를 “대통령의 엉성했던 친위 쿠데타가 시민들과 정치인들의 연대로 저지된 사건,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연대와 정치적 행동이 빛을 발했던 사건”으로 평가했다.
한씨는 “현대사 수업할 때 한국의 독재 역사에서 계엄령을 언급하는 정도로 가르쳐 왔는데 내가 실제로 겪게 되니 현실 감각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날 특별수업 자료를 들고 수업에 들어가니 학생들은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학생들은 ‘어제의 한국 상황이 계엄령을 선포할 정도로 비상사태인 것 같냐’는 한씨의 질문에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통령 본인이 계엄령을 통해서 비상사태를 만든 것 아니냐”고 답했다. 한씨는 학생들의 집중도가 남달랐다고 느꼈다.
비상계엄 이후 학생회를 중심으로 일부 학생들이 시국선언을 냈다. 일부 학교에선 학생들이 쓴 대자보가 학칙에 규정된 정치활동 금지 조항을 위배한다며 내리라고 요구해 논란이 일었다. 한씨는 “학생들이 목소리를 자유롭게 내는 것을 그렇게까지 통제할 필요가 있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가 학생들의 정치적 행동을 막는 이유에는 학교의 보수성도 있지만 극우세력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한씨는 학교 현장에서 ‘정치적 중립’이 오인되고 있다고 했다. 일부 학교에선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업에서 다루지 말라는 권고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영화 <서울의 봄>을 단체관람하기로 하자 극우단체가 학교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씨는 “정치적 이슈를 다뤘다는 것 자체만으로 특정 정치 성향에 편중되는 교육을 하는 것 아니냐는 공격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교사 입장에선 이런 수업을 하고 싶어도 학교에 해를 끼칠까 봐 다들 망설인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담당 교과를 가리지 않고 특별수업으로 비상계엄 사태를 다룬 동료 교사들에게 “큰 용기였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한씨는 “아이들에게 정치 성향을 주입시키려 한 것도 아니고 교과서 내용 위주로 사실만을 짚었다”며 “정치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학교 현장이 ‘정치 무균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 차원에서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왕을 꿈꿨던 윤석열씨, 당신은 이길 수 없습니다 [김민아 칼럼]
- [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계엄’ 경고에도 시스템 먹통…‘80년 광주’ 가
- 민주 “김태효, 비상계엄 다음날 미 대사에게 ‘계엄불가피’ 강변”
- 국힘 김재섭 “중도 다 넘어가는데 무슨 보수의 승리”
- 학대로 숨진 ‘12살 시우’ 계모, 파기환송심 징역 30년···“살해고의 인정”
- ‘경호처 지휘 침묵’ 최상목 “공직자로서 국민과 역사의 평가만 두려워해야”
- ‘박정희 동상’ 지키려 ‘감시 초소’까지 검토하는 대구시
- “내란죄 왜 빼냐” “권성동도 그랬다”···과방위 여야 ‘탄핵’ 공방
- 유승민, 여당 관저 집결에 “전광훈과 자매결연? 헌법 어긴 죄인 지키나”
- ‘신림역 살인예고’ 20대 남성, 대법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