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도 지금도…참사 유가족 곁으로 달려온 사람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 찾았던 봉사자들
“뭐라도 하자 싶어 왔다”
의료·식사 지원·청소 등
무안공항서 다시 ‘연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발생 8일째인 5일 전남 무안공항에는 많은 자원봉사자가 찾아왔다.
이들은 2024년 연말 하늘에서 돌아오지 못한 179명을 보며 10년 전 세월호를 떠올렸다. 이들 중에는 세월호 참사 때 팽목항 등지로 달려간 시민들도 있다.
2014년에도, 지금도 이들은 묵묵히 유가족 곁을 지켰다.
한의사 조옥현씨(55)는 지난 1일 무안공항 분향소 앞에서 세월호 생존자 장애진씨 아버지 장동원씨와 인사를 나눴다. 반갑지만 반가울 수 없는 만남이었다. 두 사람이 만났다는 건 또다시 어딘가에 치료와 연대가 필요한 참사 유가족이 있다는 뜻이었다.
“역시 원장님 여기 계실 줄 알았어.” 장씨 말에 조씨는 말없이 어깨를 두드렸다.
한의원을 운영하는 조씨는 이날 오전 9시부터 공항 1층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한의학 진료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2014년 조씨가 진도체육관을 찾아 의료지원에 나서며 만났다. 세월호 가족들이 안산에서 목포신항까지 도보 행진을 할 때마다 조씨가 진료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또다시 이런 만남은 없길 바랐다. 그러나 조씨가 2014년 4월 진도체육관에서 보았던 모습은 11년 만에 다시 무안공항에서 반복됐다. “지금은 유가족들이 아픈 줄도 모르실 거예요. 근데 그 몸과 마음이 멀쩡할 수가 있겠어요.” 조씨는 그 모습에 진료 가방을 들고 공항에 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새해 첫날 시작된 진료는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개인 연차를 쓰고 온 공보의들이 교대해가며 조씨와 함께 자리를 지켰다.
조씨도 이번 참사로 지인들을 잃었다. 새벽 3시 집으로 향하기 전, 그는 분향소에 들러 찬찬히 영정을 둘러본다고 했다.
“형 간다. 또 올게.” 한 달 전 같이 저녁을 먹었던 후배와 송년회를 미뤘던 동료들이 영정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고 했다.
지난 10년간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에서 활동해온 추말숙씨(58)도 무안공항을 찾았다. 협소하게 차려진 분향소 앞에 즐비한 텐트를 보는 순간 2014년 5월 초 팽목항을 찾았던 날이 떠올랐다고 했다. 반복되는 지역 주민들의 아픔을 도저히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마음은 그때와 같았다. 추씨는 자원봉사라고 적힌 주황색 조끼를 입고 식사 지원을 시작했다.
점심때에도 텐트에서 나와 편하게 식사하지 못하는 유가족들을 보면 마음이 미어진다고 했다. “세월호 가족들도 일반 시민들이 가는 곳에는 편히 못 갔었어요. ‘왜 유가족이 돼서 밥을 먹냐’ ‘유가족이 웃고 있다’는 말을 들을까 봐 꼼짝도 못하셨어요. 여기도 지금 그때랑 똑같네요.” 추씨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은 유가족들이 요청하는 식사를 텐트까지 가져다주거나 편히 가져갈 수 있도록 곳곳에 배치해뒀다.
추씨가 속한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은 “상주의 마음으로 유가족과 연대하자”는 마음에 공감한 시민 400여명이 모여 만들어졌다. 광주 시민들이 대부분인 모임에선 이번에도 알음알음 무안공항을 찾아 자원봉사를 했다고 한다.
광주 시민 황예슬씨(25)는 지난 2일부터 공항 쓰레기를 정리하는 등 봉사를 시작했다. 2014년 중학생 3학년이던 황씨는 세월호 참사가 나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 학교 때문에 팽목항에서 직접 자원봉사를 하진 못했지만 지역사회에서 어른들의 연대를 보며 “나 또한 꼭 도움 되리라”고 다짐했다. 황씨는 뜻을 모은 동료 10명과 함께 이곳에 왔다.
제주항공 참사 여객기인 보잉 ‘737-800’ 기종은 황씨가 지난해 태국을 갈 때 탔던 기종이었다. 참사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나한테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구나 싶더라고요. 참사 이틀째까지 발만 동동 구르다가 유가족들 곁에서 봉사할 수 있다는 걸 듣고 뭐라도 하자 싶었어요.” 황씨는 전국에서 밀려오는 구호 물품을 정리하면서 시민들의 힘을 느꼈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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