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버티고 버티다 `결국 백기`… 가격표 바꾸는 사장님들 `한숨`
원자잿값 일제히 상승에 카페·식당 등 가격 올려
매출·단골 줄어도 불가피… 임대료 못내는 곳도
#서울 강서구 한 카페는 새해벽두부터 출입문에 '가격인상 안내문'을 내걸었다. 안내문에는 "2023년 12월부터 현재까지 가격이 오르지 않은 품목이 단 하나도 없었다"고 적혀있다. 이 카페 사장은 "어려운 시기에 가격을 올리게 돼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도 했다.
#제주 한 로컬 카페는 초콜릿이 들어간 디저트를 메뉴판에서 모두 지웠다. 기후변화 여파로 카카오 작황이 부진하면서 원재료 가격이 뛰자 감당할 수 없어서다.
#단골 상대로 송년회 공간 대여 서비스를 해 오던 경기 일산의 한 카페는 계엄 여파로 12월 대목에도 매출이 급감하자 결국 음료 가격을 올렸다. 이 지역 학원가에선 김값 상승 영향으로 김밥집들이 1년새 가격을 500~1000원 올렸다.#경남권 대학가의 한 식당 사장은 인근 프랜차이즈 점포들마저 불경기 속 매출 급감에 임대료를 버티지 못하고 장사를 접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다. 떠나는 점주들을 보며, 생존을 위한 가격인상을 고민하고 있다.
가격 변동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골목 상권에서 장사를 하는 동네 카페, 김밥집부터 대학가 집밥까지 긴 불황과 치솟는 원재료 가격에 '백기'를 들고 있다. 계엄사태로 인해 더욱 위축된 소비심리는 이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이에 그동안 단골손님 눈치만 보던 동네 사장들이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는 한계에 직면했다고 판단, 가격 인상으로 새해를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국적으로 예외없이 나타나고 있다.
5일 호소문에 가까운 가격인상 안내문이 붙어있는 서울 강서구 한 카페의 출입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손님 20여명을 받을 수 있는 소규모 동네 카페다. 카운터에는 새해에 고쳐쓴 가격표가 있었다. 커피 가격은 최대 12.5%, 디저트 가격은 최대 30% 올랐다.
◇일년 내내 속앓이 하다 1월부터 500원씩 올려= 이 카페를 운영하는 A씨(40대)는 동네 단골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라서 가격 요인이 있어도 반영하지 못하고 지난 일 년을 속앓이를 해왔다. 결국 작년 12월 31일까지 4000원 하던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을 1월1일부로 4500원으로 올렸다. 아메리카노를 포함한 커피 메뉴와 논커피(초코라테 등) 음료 가격을 각각 500원씩 올렸다. 카페 주인은 "원두상품은 11.1%, 치즈케이크는 최대 30%, 견과류가 들어간 디저트는 23%, 쿠키류는 11.1% 올랐다"고 하소연했다.
A씨는 "2년 전 1㎏에 1만1000원대였던 스페셜티 싱글빈 생두의 수입 가격이 지금은 1만5000원이 됐다"면서 "특히 디저트는 원재료 대부분이 수입산인데 2년전부터 계속 가격이 오르다가 최근 환율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더 비싸게 사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버터는 3년전 500g에 8000원 주고 들여왔던 게 1만1000원이 됐고, 생크림은 1ℓ에 6000원대였던 게 9000원대가 됐다"며 "호두 만생종의 경우 3주전 9만원에 들여왔던 것이 지금은 15만원을 주고 가져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브라질, 베트남 등 주요 생산지의 가뭄 등 기후변화로 인한 원두 생산량 급감과 치솟는 환율 등 가격 인상 요인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커피 가격을 올린 것이다. 원두 가격은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물류난이 심화한 2021년부터 들썩이기 시작해, 지난달 10일엔 미국 뉴욕 시장에서 아라비카 원두 선물 가격이 장중 파운드당 3.44달러(약 500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1977년 이후 47년만에 최고치다.함께 판매하는 베이커리 메뉴 가격도 밀가루 등 원재료 가격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상승세를 보인 영향으로 인상된 것으로 분석된다.
◇불경기에 단골까지 발길 뚝= 경기도 일산의 한 카페 계산대 옆에도 가격 인상을 알리는 메모가 붙었다. 메모에는 "여러 차례 거듭되는 원두 가격 상승과 치솟는 물가 상승으로 불가피하게 음료 가격을 조정하게 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카페는 커피를 포함한 음료의 가격을 최근 500원가량 올렸다. 매출이 줄었음에도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는 게 카페 사장 B씨의 설명이다. B씨(40대)는 "원두 가격이 4년 동안 2~3차례 올랐으며, 과일 가격도 올라 가격 조정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불경기에 단골들의 발길이 줄어든 타격이 컸다. 지속된 물가 상승과 계엄 여파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단골의 발걸음이 끊겼다. B씨는 "연말연시 손님들로 북적였던 가게에 이제 웃음소리가 줄었다"라며 "저녁에 동네 단골을 대상으로 술을 판매하고, 연말에는 송년회를 위한 공간 대여 문의도 잦았는데, 지난달엔 장사 대목인 12월이었는데도 매출이 10~20% 떨어졌다"고 전했다. 인근에서 타르트 등을 파는 디저트 가게에선 과일값과 원유값 등 원재료 가격이 급등해 가격 인상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제주 지역에서 로컬 카페를 운영하는 D씨는 새해부터 초콜릿이 들어간 디저트 제품 판매를 중단했다. 초콜릿의 주원료인 코코아(카카오 열매를 가공한 것)의 경우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국제상업거래소(ICE)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선물 가격이 종가 기준 톤당 1만1241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만 165.24%나 폭등했다.
◇올해 소매유통시장 0.4% 성장에 그칠 듯= 아직 가격을 안 올린 동네 사장들도 가격 인상 압력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도 일산의 김밥집 사장(50대)은 "소비자들의 지갑이 아예 닫힐까봐 가격을 못 올리고 있다"면서도 "계엄을 기점으로 소비심리가 더 위축돼, 사태 이후 매상이 20~30% 빠졌고 원재료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며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경남권 대학가의 한 일본가정식 식당 사장(30대)도 "하루에도 몇번씩 가격 인상 고민을 하고 있다"면서 "재작년에 한차례 가격을 올린 뒤라 추가로 더 올리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인근의 한 프랜차이즈 점주는 "주변 자영업자들 모두 최근 20~30% 씩 매출이 줄 정도로 불경기"라며 "임대료를 버티다 못해 나가는 점주들도 많아 번화가임에도 상가 공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올해도 상황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 동네 사장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대한상의의 '2025 유통산업전망조사'를 보면, 올해 소매유통시장은 전년 대비 0.4% 성장하는데 그칠 전망이다. 이는 코로나19 펜데믹이 시작된 202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김수연·이상현·임주희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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