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도 흔드는 머스크···“특유의 선동으로 세계 정치 장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의 실세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유럽 정치권에도 입김을 행사하고 있다. 유럽 지도자들이 머스크의 내정 간섭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심 중인 가운데, 선출된 공직자가 아닌 머스크가 다른 나라 정치에 공개 개입하는 것은 도를 넘은 행동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영국 정치권 흔든 머스크의 새해 ‘엑스 폭탄’
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엑스(옛 트위터)의 소유주이자 2억1000만명 팔로워를 가진 머스크가 새해부터 선동적인 게시물을 쏟아내며 세계 정치를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미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머스크는 새해 첫날부터 약 3일간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비방하는 글을 60개 이상 올렸다. 머스크는 스타머 총리가 10여 년 전 왕립검찰청(CPS) 청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아동 성착취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폈다.
이어 그는 스타머 총리 내각을 해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찰스 3세 국왕이 의회 해산을 명령하고 조기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게시했다.
그러나 머스크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영국 국왕은 일방적으로 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다. 머스크가 언급한 아동 성착취 사건 역시 이미 충분한 수사를 거쳐 종결된 사안이라고 영국 언론들은 전했다.
머스크는 지난해 10월부터 수감 중인 극우 활동가 토미 로빈슨을 석방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로빈슨은 반이민 극우단체를 설립해 난민 출신 학생을 공격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극우 성향인 영국개혁당조차 거리를 두려 할 정도로 영국에서 악명이 높다.
외신들은 머스크의 ‘엑스 폭탄’이 노동당 정부를 흔들고 영국개혁당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행보라고 해석했다. 지난달 머스크는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와 플로리다 마러라고 별장에서 만났으며, 1억달러(약 1472억원)를 후원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영국 총선 기간 모든 정당 후원금의 총합이 약 6213만달러(약 914억원)였던 것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라고 가디언은 짚었다.
WP는 머스크가 “미국 정치를 혼란에 빠뜨렸던 것과 매우 유사한 선동 전략으로 주요 동맹국의 정치를 흔들려고 한다”며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퍼뜨리면서 극우 정치인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서 ‘골칫거리’ 된 머스크…“공직자도 아닌데 한복판에 등장”
머스크의 행동은 내정 간섭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상황이지만 영국 정부는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앤드루 그윈 보건부 차관은 “머스크는 미국 시민이니 대서양 건너편 일들에 집중하는 게 맞을 것”이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곧이어 웨스 스트리팅 장관은 머스크의 주장이 “잘못된 정보”라면서도 “우리는 그와 협력할 의향이 있다. (성착취 문제 해결을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함께 일하자”고 말했다. 영국 총리실은 별도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차관이 머스크의 발언을 질책했지만 장관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면서 두 사람의 엇갈린 반응이 “억만장자 머스크를 어느 정도까지 자극해도 되는지를 두고 영국 정부 내에서 긴장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머스크가 유럽 정치권에 개입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머스크는 독일의 총리와 대통령에게 “반민주적 폭군” “무능한 멍청이”라고 막말을 퍼부었고, 독일 신문 기고문에서는 극우 독일을위한대안(AfD)이 “마지막 희망”이라며 공개 지지했다. 이탈리아 정부에는 “더욱 강경한 이민자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는 취지로 주문하기도 했다.
폴리티코는 유럽 지도자들이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실세’ 머스크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고민에 빠진 상태라고 전했다. 런던 정책 싱크탱크 ‘브리티시퓨처’의 순데르 카트왈라 소장은 유럽 지도자들이 머스크가 트럼프 당선인의 ‘최측근’이라는 점을 의식해 강한 비판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면서 “트럼프와 관계를 맺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겨운 상황인데, 공직자도 아닌 머스크가 한복판에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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