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호언장담 대개 ‘국내용’…한국, 역이용해 기회 잡아야”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트럼프 행정부 2기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1기 때보다 훨씬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전개될 겁니다. 한국 정부는 트럼프 2기의 이런 특징을 감안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박홍민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교수(정치학)는 지난 3일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오는 20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전망하며 이렇게 말했다.
박 교수는 “트럼프 1기(2017~2021년) 당시만 해도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국정 기조의 대세가 아니었다”면서 “그때는 트럼프 기조에 동의하지 않는 미 국무부와 국방부를 중심으로 한 국제주의적 성향의 엘리트 고위 관료들이 정책 실행 단계에서 트럼프의 압박에 저항하며 다양한 방해 활동을 벌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2기에서는 ‘미국 우선주의’가 대선 선거운동 과정부터 전면에 내세워졌고, 트럼프 정부의 출범에 맞춰 미국 국민들 다수가 미국 우선주의가 실현되길 기대하고 있다”며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전부터 자신의 국정 ‘코드’에 맞는 인사들을 주요 직책에 전진 배치하고 있고, 취임 후에는 이를 동력으로 삼아 광범위한 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자신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공약의 실현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을 20여일 앞둔 지난 10월 15일(현지시간) 미 ‘시카고 경제클럽’에서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관세는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며 “관세로 인해 제조업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낸 바 있다.
또한 그는 이와 함께 선거 유세 중 모든 국가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매길 것이고, 특히 중국에는 60%의 관세를 부과할 거라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부정적인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한국이 위기 속 기회를 잡아 도약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고 총평했다.
그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한국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 가격이 올라 결과적으로 한국의 대미 수출액 감소로 이어질 것이고, 이 때문에 한국의 경제성장률에도 나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하지만 한국이 위기 속 기회를 잡을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며 “트럼프의 보편 관세는 결국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관세 정책이고, 특히 중국에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한국산 제품이 미국 내 중국산 제품을 대체하는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이 경우 오히려 한국의 수출이 증가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외교 전략과 무역 기조가 급변함에 따라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이를 역이용할 수 있는 지혜로운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발굴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박 교수는 “한국이 트럼프의 관세 부과, 주한미군 감축 등의 압박에 대응하려면 미국 국내 산업과 제조업에 도움이 되는 한국 기업을 연계한 전략을 고려해 볼 필요도 있다”며 “최근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조선업에 대한 한국의 도움을 요청한 바 있고,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반도체나 배터리 사업 분야에서는 여전히 미국과 협상을 벌일 여지가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호언장담 대다수가 미국 유권자들을 겨냥한 ‘국내용’ 발언이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는 트럼프의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하고 전전긍긍하기보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차분하게 접근하는 게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트럼프가 말하는 관세나 주한미군 문제는 미국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런 발언이 미국 ‘국내용’이라는 사실을 알고 접근해야 한다. 트럼프 입장에서 한국은 외교나 통상 이슈에서 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을 거론했다고 해서 그 발언이 한국 정부를 토론의 장에 직접 소환한 것인지부터 봐야 한다”면서 “어차피 한국은 트럼프의 발언 하나하나에 대응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을 이었다.
트럼프 당선인 취임과 함께 벌어질 미중 무역전쟁에 대해서는 국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강한 동력을 얻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다.
박 교수는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미국 국내 여론이 지지 정당과 상관 없이 60~70%로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2년 후 의회 중간선거 등 향후 정치 일정을 고려하면 표면적으로 지금 기조의 강한 레토릭이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중국에 대한 60% 관세 방침이 현실로 나타날 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중국을 향한 미국의 가시적인 무역 공격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다만, 중국에 대한 맹공으로 피해를 입는 미국 내 이익집단을 고려해 무차별적인 대중 강경책보다는 중국을 압박하면서 또 얼르는 강온양면 전략을 취한 공산이 크다”면서 “트럼프는 이를 위해 ‘시진핑은 친구’라는 메시지를 지혜롭게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메시지가 대중 무역전쟁 기조를 급반전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란 걸 모두 알고 있다”고 부연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처럼 미중 무역전쟁 사이에 낀 한국의 행보에 대해서는 “한국의 조심스러운 대중관계 개선”이 해법으로 제시됐다.
그는 “트럼프 2기의 미중관계는 안보보다는 경제적 측면이 더 강조될 것”이라면서 “한국은 대중관계를 조심스럽게 개선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이를 위해 한국은 미국의 대중 강경정책이 집중될 분야를 사전에 파악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매우 신속하고 심도깊게 마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바이든 행정부 정책을 뒤집더라도 바이든 재임 중 미국에 대거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피해는 의외로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는 “바이든의 경제정책은 한국 기업의 이해관계가 걸린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반도체·과학법(CHIP)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트럼프가 급작스럽게 뒤집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 “역설적으로 IRA와 CHIP 법안의 최대 수혜지는 공화당 지지세가 압도적인 곳이어서 공화당 내에서도 기존 정책 뒤집기를 반대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박 교수는 “상황이 비관적이진 않은 상황이나, 돌발 변수로 인한 한국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 인사를 중심으로 한 인적 네트워크를 적극 구축하고 활용할 필요는 있다”고 조언했다.
돌아온 트럼프 당선인이 1기 때처럼 북미정상회담에 나설 가능성은 있을까.
박 교수는 이 질문에 “북미간 정상회담은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그 결과 북핵문제가 해결되고 북미관계가 급진전되는 상황으로까지 전개되지는 못할 것”이라며 “1차 정상회담을 겪으면서 북미 모두 서로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아져 오히려 협상 타결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트럼프 입장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해결이 북한 문제보다 우선 순위라고 봤다.
트럼프 당선인은 러-우크라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가급적 빨리 마무리짓겠다고 여러 차례 공약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 트럼프 취임 이후 조기 종전이 이뤄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붙였다.
그는 “두 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이 바뀐다고 전쟁의 양상이 급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더구나 종전이 이뤄지려면 전쟁 당사자들이 손해 보지 않을 ‘딜’이 있어야 하는데, 그 딜이 복합적 이슈여서 트럼프의 의지만으로 관철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그는 “만약 트럼프가 국내정치에 집중한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나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다면, 전쟁 당사자 중 한 쪽이 일방적으로 무너질 가능성은 배제하지 못한다. 이 경우 미국에 불리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므로 트럼프가 섣불리 지원을 중단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예견했다.
강한 소신을 가진 트럼프 당선인의 복귀와 함께 극단화되고 있는 국제정치 지형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2022년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여 이어지고 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도 끝나지 않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장기집권이 가시화되고 있고, 유럽에서도 수만명의 난민이 유입되면서 극우 정치인들이 부상하고 있다.
박 교수는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극단적인 정치 세력이 등장하는 것과 연계해 한국의 정치 지형 또한 극단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4년 전 현직 미국 대통령이던 트럼프가 낙선했지만, 4년 후 다시 트럼프가 부상하고 공화당이 쇄신을 통해 재기한 현상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며 “트럼프와 공화당의 부활을 통해 한국 보수 정당의 미래 역시 3가지 시나리오로 예측해 볼 수 있다”고 했다.
1번 시나리오는 현재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결정으로 이어질 지 여부와 상관 없이 한국 정계가 양극화로 치닫는 것이다. 이 경우 한국 보수 정당은 공화당이 중국, 불법 이민자 등을 분풀이 대상으로 삼았듯이 논리와 명분을 갖춘 분풀이 대상 찾기에 골몰할 것으로 전망됐다.
2번 시나리오는 한국의 보수 정당이 자체적으로 혹독한 쇄신 작업을 거쳐 국민 눈높이에 맞는 행보를 펼치며 대중 정당 이미지를 다시 복원하는 것이다.
미국 역시 2008년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새 역사를 쓰자 미 정가에서는 ‘보수의 멸망’이라는 용어마저 등장했다. 하지만 이후 공화당은 티파티운동 등 자체 쇄신 작업, 구심점이 된 트럼프를 발판으로 당 체질 개선 작업 등을 거쳐 대선은 물론 상하원 양원에서 모두 승리하며 미 역사상 가장 강력한 공화당 정권 기반을 구축하고 날로 세를 확장하고 있다.
3번 시나리오는 한국의 보수 정당이 체질 변화에 실패하고 과거에 머물러 영남 중심의 정당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박 교수는 “계엄령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을 당론으로 옹호하는 정당에 머물면서 ‘내란 정당’ 이미지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영남 중심 정당으로 축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탄핵정국에 대한 미국 정가의 시각에 대한 질문에는 “현재 미국의 목표는 한국에서 질서가 회복되고 불확실성이 제거되는 것”이라며 “만약 한국에서 특정 정당이 불확실성을 지나치게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이 때문에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는 경우 미국이 개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는 “참고로 말하자면 미국 정부나 미국 국민의 입장에서 한국은 중요한 정책 우선 순위가 전혀 아니다”면서 “미국은 정상적 국정 운영이 가능한 로드맵이 짜여지기를 바라고 있으며,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 양당 중 그 어느 정당에도 특별한 선호를 갖고 있지 않다”고 부연했다.
바이든 정부에서 강화된 한미일 협력관계도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는 “트럼프가 한미일 협력관계를 흔들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다만, 트럼프의 판단 기준은 한미일 협력이 미국의 대중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지 여부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당선인이 파나마 운하, 그린란드, 캐나다 등을 편입하려는 야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평소 과장을 잘 하는 트럼프의 성향에 기반한 레토릭”이라고 평가하면서 “미국 대통령이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니다. 실현 가능성은 낮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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