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하버드 진학에 걱정하는 父…“날 무시하면 어떡하지”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5. 1. 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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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143]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비영리단체의 대표인 브래드(벤 스틸러)는 얼마 전부터 부쩍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끼던 직원이 회사를 나가면서부터다.

이직과 전직에 열려 있는 요즘 젊은 세대가 퇴사했다는 사실 자체에서 충격받은 건 아니다.

그가 나가며 남긴 한 마디가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솔직히 제가 많이 벌어서 기부하는 게 낫지. 남들한테 기부하라고 쫓아다니긴 싫어요.”

예의 없는 말이라고 무시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사실 스스로도 애써 억눌러왔을 뿐, 늘 마음 한쪽에 품고 살아왔던 생각이기 때문이다.

아끼던 직원이 퇴사한 뒤, 브래드의 잠 못 드는 밤이 시작된다. [영화사 진진]
선한 영향력 미치고 싶어 택한 직업인데…사람들이 피하네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2017)는 중년의 위기를 담은 작품이다. 어딘가 잘못됐다고 느끼지만 삶의 궤도를 수정하기엔 너무 많이 와버렸다.

브래드는 사회에 미칠 선한 영향력을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한 자기 20대를 후회하기에 이른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서 비영리단체 일에 투신하게 됐지만, 모임에서 브래드의 직업을 들은 사람들은 슬슬 피해 다니기 일쑤다.

혹시라도 후원해달라고 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실제로 처음 본 사람에게 후원을 요청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예상은 아주 틀린 것도 아니다. 그 사실이 브래드를 더 힘들게 한다.

명사가 된 친구에게 팬이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동안, 브래드는 어쩐지 투명인간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영화사 진진]
반면, 돈과 유명세를 중심에 두고 직업을 선택한 대학 동창들은 사회적 존경을 받는다.

헤지펀드 운용사 대표가 된 동창, 영화감독이 된 동창, 자기 회사를 일찍 매각하고 은퇴 후의 삶을 즐기는 동창 등 모두 어딜 가든 환영받는다.

동창들이 자신을 모임에 부르는 일도 어느 순간부터 드물어졌다.

인생 역전을 도모해야 할 때 같지만, 아내 또한 공무원이라 드라마틱한 부의 증식을 기대하긴 어렵다.

상속받을 재산이 나올 구석도 별로 없다.

브래드는 막다른 길에 다다른 듯한 막막함을 느꼈다.

브래드의 아내는 모든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브래드는 이제 그것마저 원망하기에 이른다. 아내의 안분지족하는 성격이 부부를 지금의 자리에 머무르게 한 것 같아서다. [영화사 진진]
아들의 하버드 진학, 아버지 성취로 간주해도 될까
자포자기하기엔 좀 일렀던 것일까.

브래드는 아들의 대학 면접 겸 캠퍼스 투어를 나선 길에 뜻밖의 사실을 접하게 된다.

아들이 면접을 앞둔 학교가 바로 하버드였던 것이다.

아들이 하버드에 갈 정도로 성적이 좋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내내 침울한 표정을 짓던 브래드의 안면에 웃음이 돈다. [영화사 진진]
브래드는 온갖 장밋빛 상상에 빠진다. 하버드를 졸업한 아들이 유명인이 돼서 매거진을 장식하고, TV쇼 게스트로 등장하는 미래를 그려본다. 결혼 이후의 모든 세월이 마치 이 아이를 제대로 키워내기 위한 시간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단번에 보상받는 기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울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을 거머쥔 아들이 정작 아버지를 무시할까 봐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아들의 성취는 아들의 것일 뿐 아버지와 상관없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브래드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또 다른 자신을 상상한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자기 몫이 될 수도 있었을 인생을 머릿속에 자꾸 그려본다. [영화사 진진]
(*아래 단락엔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이처럼 한없이 불안정한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간다. 그의 모든 시간에 따라다니는 걱정은 ‘나는 남을 지루하게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굴 만나도 자신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그래서 외려 엉뚱한 행동을 하거나 상대방에게 무례를 범하기도 한다.
브래드는 아들이 부와 거리가 먼 뮤지션이 될까 봐 걱정하기도 한다. 꿈을 따라가다가 자신처럼 후회하게 될 것 같아서다. [영화사 진진]
그 와중에도 아들은 계속해서 옆에 있다. 캠퍼스 투어라는 목적으로 떠나온 여행이지만,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이 꽤 즐거운 것 같다. 물론 아버지는 아들의 즐거워하는 표정을 감지하지 못한다. 외부 사람들의 시선에 모든 신경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아들은 하버드 면접 날짜를 착각해서 면접을 못 보고 돌아갈 상황에 처했고, 브래드는 하버드에서 강연하는 동창에게 자존심을 굽히고 연락한다. 면접관에게 전화 한 번만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그에게 보답하기 위해 마련한 저녁 자리에서 브래드는 어쩐지 무시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영화사 진진]
“사람들이 날 보면서 패배자로 여길까봐 걱정이 된다”는 브래드에게 아들은 아버지를 향한 자신의 평가를 들려주기로 한다. 일순간 팽팽한 긴장이 지나간 후 아들이 브래드에게 건넨 말은 이렇다.

“사랑해.”

아들과 걷는 동안에도 브래드는 늘 남의 생각에만 신경이 꽂혀 있었다. [영화사 진진]
부모가 좋은 이유는 부모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가 돈이 많거나 미남미녀이거나 코미디언처럼 웃겨서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런 요소들이 부모를 좀 더 존경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부모를 좋아하는 근본적 이유는 자기 부모라는 사실 그 자체에 있다.

브래드는 남의 시선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그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아이와 있을 땐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말이다. 있는 그대로 존재해도 평가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이 영화는 우리가 부모 자녀 관계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얘기한다. 서로가 서로이기 때문에 소중한, 세상에서 몇 안 되는 관계인 것이다.

어쩌면 가족으로서 우리가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도 그저 든든한 울타리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안에 있으면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충분히 휴식할 수 있다는 안정감이다. 울타리 안으로 자꾸 세상의 평가 잣대를 끌어오는 건 자신은 물론 가족 구성원에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가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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