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이 끝이 아닌, 동네사랑방 구실 ‘중개소’ [.txt]
일하는 사람의 초상 l 공인중개사 20년차 박인숙씨
나이 상관없이 일하는 공인중개사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 확신
온갖 돌발상황 ‘해결사’로 나서기도
갈등 회피하면 더 큰 싸움으로 번져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때로는 보람과 긍지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들었습니다.
의식주(衣食住). 셋은 인간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로 꼽히지만, 경제적 비중을 살펴보면 ‘주’가 나머지를 압도한다. 아르바이트만으로도 그럭저럭 해결이 가능한 ‘의’와 ‘식’과 달리, 안정된 직장에 다니며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몇 달 동안 고스란히 모아도 전세는커녕 월세 보증금조차 모으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아무리 작은 부동산이라도 매수 결정은 살면서 가장 큰 돈을 쓰는 일이다. 거래하는 과정도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는 일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번거롭다. 대부분의 거래가 부동산을 전문으로 다루는 공인중개사를 끼고 이뤄지는 이유다. 공인중개사는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는 가장 중요하고 부담스러운 일을 함께하는 직업 중 하나다.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는 박인숙씨는 2018년 여름에 나와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직장과 가까운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소재 작은 빌라에 월세로 신혼집을 차리고 살다가 새로운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매달 월세와 관리비를 합쳐 100만원 넘게 통장에서 꼬박꼬박 빠져나가니 저축이 어려웠고 살림살이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렇게 살다가는 평생 월세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고민 끝에 직주근접(직장과 주거지가 가까이 있음)을 포기하고 서울 바깥으로 눈을 돌렸다. ‘영끌’로 매매해도, 매달 갚아야 하는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이 서울에서 치러야 하는 월세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형편에 맞는 집을 알아보던 나는 김포 양촌의 한 아파트 단지까지 닿았다. 박씨는 내 생애 첫 집의 등기를 칠 때 함께했던 공인중개사였다.
내 기억 속 박씨는 야무지게 일하는 중개사였다. 말이 행동보다 앞서지 않았고, 일 처리가 꼼꼼했다. 그 기억이 두번째 집을 살 때 박씨를 다시 찾게 했다. 2024년 여름, 거실에서 스프링클러 배관이 갑자기 터지는 바람에 살던 집이 큰 수해를 입었다. 집을 수리하느라 팔자에도 없는 수재민이 돼 여기저기 떠돌게 된 아내와 나는 이참에 이사하기로 마음먹고 새로운 집을 알아봤다. 공교롭게도 같은 아파트 단지에 마음이 드는 집이 있었다. 박씨는 6년 만에 다시 찾아온 나를 정확하게 기억했다. 내가 계약했던 집의 위치는 물론 당시 내 직업까지. 첫번째 집의 매수와 매도에 이어 두번째 집 매수까지 함께했다면 보통 인연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집을 전전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공인중개사를 만났는데, 그들의 일상에 관해 아는 게 없었다. 문득 인생의 중대사를 두 차례나 함께한 박씨의 일상이 궁금해졌다.
이삿짐 정리를 마치고 며칠이 흐른 뒤, 나는 박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계약 과정 내내 침착하면서도 밝은 모습만 보여줬던 그는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못 이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요청에 응했다. 지난해 12월 말 오후, 박씨는 어색한 미소로 사무실에서 나를 맞았다.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도 박씨의 전화에선 수시로 벨이 울렸다. 그때마다 인터뷰가 끊겼고, 박씨는 내게 미안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어휴! 휴가는 무슨요. 화장실에 잠시 다녀오는 3분도 불안하다니까요. 그사이에 사무실로 손님이 찾아오실까 봐요. 매일 오전 9시에 사무실로 출근해서 30분 동안 청소하고 주변을 정리해요. 포털사이트에 올린 매물 정보를 확인하는 등 이런저런 일이 끝나면 오전 11시쯤 돼요. 그때부터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요. 손님은 주로 오후에 많이 찾아오세요. 특히 토요일과 일요일에 직접 사무실로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요.”
박씨는 올해로 공인중개사로 일한 지 20년째다. 30대 중반까지 직장에서 일했던 그가 공인중개사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부동산 중개사무소에서 일하는 언니 때문이었다. 언니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건강만 허락하면 정년 없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업이 공인중개사 같았다. 2005년 제15회 공인중개사 시험에 응시해 합격한 뒤 경기도 화성, 인천 부평 등지에서 부동산 중개사무소에서 실장으로 일하며 중개 보조업무를 맡았다. 그 시절에 박씨를 눈여겨본 손님이 지금의 남편을 소개해줘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공인중개사 자격이 ‘국민자격증’ 소리를 들을 만큼 흔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본인 역량에 따라 평생 일하며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잖아요.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자가 개업하려면 사전실무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그때 함께 교육받은 분을 보면 70대뿐만 아니라 80대 노인도 계시더라고요. 나이와 상관없이 오래 일할수록 고스란히 경력과 경험으로 쌓이고, 다른 자영업처럼 재고가 쌓일 일이 없다는 점이 매력으로 느껴졌어요.”
박씨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김포에 자리 잡게 된 계기는 남편의 직장 이전 때문이었다. 남편의 직장이 들어선 양촌산업단지를 살피던 박씨의 눈에 마침 새로 지어지던 아파트 단지가 들어왔다. 당시 단지 주변은 공장 외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지만, 박씨는 그 풍경이 고향(충남 서산)인 시골 모습 같아 마음에 들어 분양 신청을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관해 그가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자세히 알고 있었던 이유는 2010년 분양 당시 첫 입주민이기 때문이었다. 인터뷰 덕분에 박씨가 한동네 주민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 더 반가웠다. 박씨가 풀어놓은 사무실 풍경은 중개사무소라기보다는 동네 사랑방을 닮아 있었다.
“이 아파트 단지를 저보다 많이 아는 분은 아마도 없을걸요? 관리실 직원도 모르는 부분을 제가 알고 있을 때도 많으니까요. 수없이 많은 돌발상황을 경험해 본 터라, 어지간한 문제는 제가 직접 해결할 수 있어요.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에 연락해 무엇을 해야 해결되는지 대부분 파악하고 있고요. 팩스를 보낼 일이 있거나 주민등록등본을 떼려고 이곳에 들르는 분도 많아요. 택배를 맡기고 가는 분도 있고, 학원에 가는 아이들이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차를 타기도 해요. 깜빡하고 가스 밸브를 잠그지 않고 외출했다며 대신 잠가 달라는 분도 있어요.”
동네 사랑방이라고 해서 일이 마냥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흘러가진 않는다. 큰돈이 오가다 보니 매도인과 매수인 모두 손해라고 생각하는 사항에 몹시 민감하다. 계약금 지급부터 잔금 지급까지 아무런 갈등 없이 깔끔하게 이뤄지는 거래는 드물다. 매수인은 물건에 하자가 있다고 항의하고, 매도인은 하자가 아니라고 맞서는 과정에서 감정싸움이 벌어지기 일쑤다. 중개사는 양쪽 말에 모두 귀를 기울이며 거래를 원만하게 이뤄지도록 조율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법정 중개수수료를 깎아달라고 우기는 손님도 있고, 수수료 지급을 미루고 피하며 적반하장으로 큰소리를 치는 손님도 있다.
“집을 이미 팔았는데도 매수인이 집을 고치지 못하게 하는 매도인도 있었고, 세입자가 고장 난 부분을 고치지 못하게 막는 임대인도 있었어요. 세입자가 잔금을 치르기도 전에 임대인 몰래 집에 이것저것 들여놓았다가 난리 난 적도 있었죠. 그런 일이 벌어지면 중간에서 제가 온갖 욕을 다 먹어요. 얼굴이 하얘지고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심한 욕을 듣기도 해요. 남편이 제 전화로 들리는 손님의 욕을 들은 적도 있는데, 그땐 남편이 도저히 못 듣겠다며 제게 일을 그만두는 걸 권유하더라고요. 저를 밀어서 넘어뜨렸던 손님도 기억나네요. 최근에는 불황이 심해져서 사무실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몰리기도 했어요. 그때마다 남편과 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어요. 감사한 일이죠.”
박씨는 부동산 거래에서 돌발상황은 피할 수 없는 문제라며, 중개사가 거래 당사자 가운데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면 어떻게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나는 이사한 집의 가스레인지 점화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연락했을 때 바로 주방용 가스라이터를 사 들고 집으로 찾아왔던 박씨의 모습을 떠올렸다. 중개사가 나 몰라라 하며 갈등을 회피하면 더 큰 싸움으로 번져 거래 당사자 양쪽의 반감을 사 결국 본인에게 독으로 돌아온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몇만원, 몇천원을 두고 집요하게 따지는 손님도 있는데 그럴 때는 양쪽이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게 그냥 제 선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조금 손해를 봐도 어떻게든 계약을 잘 성사시키는 게 저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이익이에요. 낮이든 밤이든 제가 맡은 계약과 관련해 벌어지는 갈등은 가능한 한 빠르게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해요. 갈등 대부분이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면 해결되는 일이에요. 세상 사람 모두를 다 제 편으로 만들진 못해도 최소한 누구와도 척을 지진 않으려고 노력해요.”
나는 임장(부동산을 사려고 할 때 직접 해당 지역으로 가서 탐방하는 행위를 이르는 말)을 할 때 문을 닫아둔 채 전화로만 영업하는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많이 봤다. 적게는 5분, 많게는 30분가량 사무소 앞에서 중개사를 기다리는 불편한 경험을 여러 차례 했다. 박씨는 손님이 찾든 찾지 않든 사무실을 지키려는 편이라고 말했다.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꾸 바깥을 돌면, 마음도 밖으로 떠돌고 해이해진다는 게 이유였다.
“손님이 온종일 찾아오지 않는 날도 있어요. 그럴 때는 사무실 컴퓨터로 웹소설을 읽거나 웹툰을 봐요.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좋아해서 지금도 책을 많이 사서 읽어요. 덕분에 혼자서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그리 지루하지 않아요.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찾아오는 손님을 바로 응대할 수 있잖아요. 사무실에 앉아 언제 찾아올지 모를 손님을 기다리다 보면 주위가 고요해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공인중개사라는 직업의 미래를 물었을 때, 박씨는 적어도 사라지는 일은 없으리라고 자신했다. 나는 박씨의 말에 동의했다. 부동산은 가상화폐와 달리 실체를 가진 공간이자 자산이다. 내가 직접 들러 확인했던 어떤 집도 사진이나 가상현실(VR) 영상과 똑같지 않았다. 누수나 가까운 도로에서 자동차가 지나갈 때 창틀이 떨리는 현상까지 담아내는 사진이나 가상현실 영상은 없으니 말이다.
“좋은 집을 소개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 일을 하기 잘했다는 보람이 들어요. 지나가다가 고맙다고 오이나 호박을 갖다 주시는 분도 있고, 김장했다고 한 포기 갖다 주시는 분도 있어요. 그게 다 사람 사는 정이죠. 그 맛에 오랫동안 이 일을 하고 있고요. 앞으로도 여길 벗어나서 일하진 못할 것 같아요. 다른 지역을 이곳만큼 잘 파악할 자신도 없고요. 저를 통해 거래하는 모든 분이 잔금을 치를 때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수많은 중개사무소가 있는데 저를 찾아오는 모든 손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정진영 작가
정진영 l 월급사실주의 동인. 장편소설 ‘도화촌기행’으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침묵주의보’, ‘젠가’,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등을 썼다. 백호임제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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