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도 10년 뒤에도…묵묵히 유가족 지키러 달려왔다[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김송이 기자 2025. 1. 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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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발생 8일째인 5일 전남 무안공항에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2024년 연말 하늘에서 돌아오지 못한 179명을 보며 10년 전 세월호를 떠올렸다. 무안공항까지 걸음한 이들 중에는 세월호 참사 때 팽목항 등지로 달려간 시민들도 있다. 2014년에도, 지금도 이들은 묵묵히 유가족 곁을 지켰다.

진도에 있던 진료 가방, 이젠 무안공항에
한의사 조옥현씨가 지난 2일 전남 무안공항에 마련된 한의진료실에서 진료를 보기 위한 준비 중이다. 조씨는 지난 1일부터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을 상대로 의료지원을 해오고 있다. 김송이 기자

한의사 조옥현씨(55)는 지난 1일 무안공항 분향소 앞에서 세월호 생존자 장애진씨 아버지 장동원씨와 인사를 나눴다. 반갑지만 반가울 수 없는 만남이었다. 두 사람이 만났다는 건 또다시 어디엔가 치료와 연대가 필요한 참사 유가족이 있다는 뜻이었다.

“역시 원장님 여기 계실 줄 알았어.” 장씨 말에 조씨는 말없이 어깨를 두드렸다. 한의원을 운영하는 조씨는 이날 오전 9시부터 공항 1층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한의학 진료를 시작한 참이었다. 두 사람은 2014년 조씨가 진도체육관을 찾아 의료지원에 나서며 만났다. 세월호 가족들이 안산에서 목포신항까지 도보 행진을 할 때마다 조씨가 진료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또다시 이런 만남은 없길 바랐다. 그러나 조씨가 2014년 4월 진도체육관에서 보던 모습은 11년 만에 무안공항에서 반복됐다. 가족을 제대로 찾지도 못한 유가족들은 공항을 떠나지 못하고 찬 바닥에 텐트를 쳤다. “지금은 유가족들이 아픈 줄도 모르실 거예요. 근데 그 몸과 마음이 멀쩡할 수가 있겠어요.” 조씨는 그 모습에 진료 가방을 들고 공항에 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참사 발생 나흘이 지나면서 유가족들 기력이 급격히 쇠해갔다. “실신하는 분도 계시고 맥을 잡아보면 허증에 빠지는 분들도 있어요.” 조씨는 대한한의사협회와 함께 공항에 진료 공간을 마련했고 급히 보약을 지어왔다.

새해 첫날 시작된 진료는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개인 연차를 쓰고 온 공보의들이 교대해가며 조씨와 함께 자리를 지켰다. 자정 넘어 공항 한쪽이 소등되자 조용하던 텐트에서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곧이어 또다른 텐트에서 흐느낌이 시작됐다. 조씨는 아들 내외와 손주를 잃은 70대 노인이 ‘이제 어째야 하냐’는 말에 손을 잡아드리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했다. “우리는 유가족에게 쉽게 ‘힘내시라’고 얘기하는데요. 힘을 낼 수가 없죠. 그냥 더 많이 슬퍼하셨으면 좋겠어요. 차라리 참지 말고 슬퍼하시고 분노하시면 좋겠어요.”

조씨도 이번 참사로 지인들을 잃었다. 새벽 3시 집으로 향하기 그는 분향소에 들러 찬찬히 영정을 둘러본다고 했다. “oo아, 형 간다. 또 올게.” 한 달 전 같이 저녁을 먹었던 후배와 송년회를 미뤘던 동료들이 영정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고 했다.

‘유족의 마음으로’···무안 찾은 세월호시민상주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에서 활동하는 추말숙씨(왼쪽)와 김화순씨가 3일 오전 무안공항 1층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김송이 기자

지난 10년간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에서 활동해온 추말숙씨(58)도 무안공항을 찾았다. 협소하게 차려진 분향소 앞에 즐비한 텐트를 보는 순간 2014년 5월 초 팽목항을 찾았던 날이 떠올랐다고 했다. 반복된 지역 주민들의 아픔을 도저히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던 마음은 그때와 같았다. 추씨는 자원봉사라고 적힌 주황색 조끼를 입고 식사 지원을 시작했다.

점심때에도 텐트에서 나와 편하게 식사하지 못하는 유가족들을 보면 마음이 미어진다고 했다. “세월호 가족들도 일반 시민들이 가는 곳에는 편히 못 갔었어요. ‘왜 유가족이 돼서 밥을 먹냐’ ‘유가족이 웃고 있다’는 말을 들을까 봐 꼼짝도 못 하셨어요. 여기도 지금 그때랑 똑같네요.” 추씨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은 유가족들이 요청하는 식사를 텐트까지 가져다주거나 편히 가져갈 수 있도록 곳곳에 배치해뒀다.

추씨가 속한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은 “상주의 마음으로 유가족과 연대하자”는 마음에 공감한 시민 400여명이 모여 만들어졌다. 이후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주법원에서 세월호 재판을 방청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도보 행진을 할 때마다 곁을 지켰다. 광주 시민들이 대부분인 모임에선 이번에도 알음알음 무안공항을 찾아 자원봉사를 했다고 한다.

함께 온 김화순씨는 세월호 참사 때도, 이태원 참사 때도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또다시 대규모 참사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참사가 날 때마다 한 번이라도 뭐가 문제인지 제대로 밝힌 적이 있나요. 그렇지 않아서 같은 문제가 생긴 거죠. 이번에는 꼭 철저한 진상규명이 뭔지 보여주기 바랍니다.”

세월호 시민연대 보고자란 중학생도
광주 시민 황예슬씨가 3일 오전 전남 무안공항 1층에서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황씨는 지난 2일부터 공항을 찾아 친구들과 봉사에 나섰다고 했다. 김송이 기자

광주 시민 황예슬씨(25)는 지난 3일 오전 7시부터 공항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지난 2일부터 오후보다 자원봉사자가 적은 오전 시간대를 골라 봉사하고 있다고 했다.

2014년 중학생 3학년이던 황씨는 세월호 참사가 나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 학교 때문에 팽목항에서 직접 자원봉사를 하진 못했지만 지역사회에서 어른들의 연대를 보며 “나 또한 꼭 도움 되리라”고 다짐했다.

제주항공 참사 여객기인 보잉 ‘737-800’ 기종은 황씨가 지난해 태국을 갈 때 탔던 기종이었다. 참사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나한테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구나 싶더라고요. 참사 이틀째까지 발만 동동 구르다가 유가족들 곁에서 봉사할 수 있다는 걸 듣고 뭐라도 하자 싶었어요.” 뜻이 맞은 동료 10여명이 함께 봉사를 시작했다.

황씨는 지난 이틀간 전국에서 밀려오는 구호 물품을 정리하며 시민들의 힘을 느낀다고 했다. 동시에 유가족의 마음을 후벼파는 온라인상 혐오에 맞설 필요가 있다고 했다. “10년 전에도 유가족 혐오와 호남권 모욕이 심했어요. 이번에도 나아진 것 없이 혐오가 심하더라고요. 유가족들도 다 보실 텐데 제발 2차 가해가 사라지면 좋겠어요.”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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