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유연성'과 고용의 '안정성'이 소득 크레바스 해법"

정진우 기자, 조규희 기자 2025. 1. 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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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머니투데이는 지난해 12월30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 사무실에서 권 위원장을 만나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에 현실로 다가온 소득 크레바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얘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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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크레바스] <중> 유연안정성(flexicurity)②권기섭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편집자주] 올해부터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5명 중 1명이 노인인데, 노인빈곤율은 세계 최고다. 특히 퇴직 후 소득공백(Crevasse)은 노인 빈곤을 더 악화시킨다. 정년과 연금 제도의 불일치로 60~65세는 소득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급속한 고령화와 만혼(滿婚) 추세 속 소득공백은 이제 '공포' 그 이상이다. 정년 연장 등 계속고용 논의가 이어지지만 노동계와 재계의 엇갈린 입장 속에서 공회전만 반복하고 있다. 소득공백의 현실을 진단하고 소득 공백을 늦출 일자리, 소득 공백을 최소화할 연금 개혁 등 합리적 대안을 짚어본다.

권기섭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연금 개시연령과 법적 정년이 일치하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월 평균 노후 소득은 65만원으로, 노인 빈곤율이 OECD 최고 수준입니다."

노(勞)·사(使)·정(政) 사회적 대화를 이끌고 있는 권기섭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대한민국의 '소득 크레바스'(소득 공백기, 빙하 속 깊이 갈라진 틈을 뜻하는 crevasse에서 유래) 현실에 대해 이같이 지적했다. 독일과 일본 등 많은 선진국들이 고령화 시대를 대비해 오래전부터 이미 노후소득 문제 대응방안을 분주하게 마련한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준비된 게 없다는 얘기다.

권 위원장은 특히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 잠재 성장률 저하, 부양인구 증가 등에 따른 재정부담을 감안하면 소득 크레바스 문제는 어느 사회적 의제보다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국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머니투데이는 지난해 12월30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 사무실에서 권 위원장을 만나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에 현실로 다가온 소득 크레바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얘기를 들어봤다.

권기섭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소득 크레바스' 문제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 우리나라 60세 이상 고령자들에 대한 계속고용 문제가 이슈인데 그 문제의 핵심 화두가 소득 공백입니다. 계속 일을 하고 싶은 이유도 소득 때문이죠. 우리나라가 전세계에서 노인 빈곤율이 높은 나라에 속하는데 55~65세까지 고용률이 낮기 때문입니다. 은퇴 후 재취업 시장 자체가 발전하지 못했고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 연령이 안맞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보통 60세 안팎에서 퇴직하는데 국민연금은 65세부터 받습니다.

- 왜 그런 문제가 발생했을까요.

▶ 사실 노동시장에서 정년 문제는 2013년부터 논의됐는데 제대로 매듭짓지 못했습니다. 또 이렇게 고령화 속도가 빠를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저출산 문제만큼 고령화 문제도 더 일찍 준비하고 심각하게 다뤘어야 하는데 노동시장 이중 구조 문제와 호봉제로 대표되는 연공급 시스템 때문에 쉽지 않았습니다. 노사정 타협 등을 통해 연착륙 방안을 만들고 긴 호흡으로 준비했으면 좋았을텐데 국민연금 고갈 문제 등 소득보장 체계에 대한 우려가 먼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습니다.

- '소득 크레바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요.

▶ 국가적으로 국민들의 은퇴 시기와 국민연금 수급 시기를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정부와 기업, 노동자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책임을 나눠야 합니다. 그리고 고령자 노동 시장을 건전하게 키워야 합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 임금체계가 직무나 성과 등에 따라 이뤄졌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어요. 노동자가 일한 만큼 받는 공정한 노동시장이면 굳이 일하는 나이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연공급 시스템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부담이 큽니다. 근속 기간이 오래될수록 돈을 더 많이 줘야하기 때문입니다.

권기섭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결국 노사정의 사회적 타협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 그렇죠. 사회적 대화를 통해 기업과 노동계가 '유연안정성'(Flexicurity)을 키워야 합니다. 저는 경영계나 노동계가 이 문제를 모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경영계는 임금체계 개편만 얘기하고 노동계는 법적 정년연장만 얘길 하고 있는데 지금은 공익위원님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계는 기본적으로 은퇴 시점에 월급이 줄어드는 임금의 유연성 또는 생산성이나 직무, 성과에 따른 보상 시스템을 어느정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고용 안정성을 얻을 수 없을 겁니다.

경영계도 정년연장 문제에 솔직해져야 합니다. 지금 생산가능 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인력 활용 측면에서 정년연장을 당연히 생각하면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노사가 그렇게 대화하다보면 접점이 나올 수 있어요. 결국 '임금의 유연성'과 '고용의 안정성'을 놓고 노사가 바터(barter, 교환)하는 방식으로 가야합니다.

- 정부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 정부는 임금의 유연성과 고용의 안정성을 연착륙하는 기간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죠. 임금 문제에선 정부가 근로자들의 줄어드는 임금을 보조해줄 수 있고 또 기업들에게 세제혜택을 줘서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 삭감을 보조해줄 수 있습니다. 아울러 고용의 안정성을 위해서 정부가 고령자들에게 재취업을 신속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정부가 이런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노사가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권기섭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국회의 역할도 중요해 보입니다.

▶ 사실 계속고용 등 노동시장 문제는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통해 입법이 돼야 합니다. 정치적으로 해결하기엔 우려스러운 문제가 많아요. 여야도 탄핵정국 상황과 별개로 이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입법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국회는 특히 이 문제가 노사, 전 세대, 대·중소기업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는 의제인 만큼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입법이 되지 않도록 균형적이고 세밀한 입법에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야당 의원들이 입법안을 제출한 상황이지만 노사정 대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경사노위의 논의 결과를 기다려 보고 대타협 또는 권고안을 기초로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 정국 상황이 불안한 상황인데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가능할까요.

▶ 계속고용 문제는 현 정치 상황과 무관한 구조개혁 과제입니다. 지난해 10월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 주요 의제의 시급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고 사회적 대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큰 의제인 만큼 어떠한 경우에도 대화가 중단돼선 안됩니다.

만약 정치상황 때문에 구조개혁이 미뤄진다면 골든타임을 허비해 사회적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어요. 한국노총은 그간 사회적 대화의 주체로서 책임감을 갖고 대화에 임해왔는데 지도부가 리더십을 발휘해 사회적 대화에 적극 임해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위원회 논의가 다소 지체됐지만 노사정 주체들과 협의해서 연기된 토론회 재개 등 본격적인 공론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사회적 대타협이 도출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계획입니다.

☞ 주요이력= △1969년 경북 예천 △대전 보문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뉴욕주립대 경영학 석사 △노동부 외국인력정책과장 △고용정책총괄과장 △고용서비스정책관 △직업능력정책국장 △대통령 일자리수석실 선임행정관 △고용정책실장 △노동정책실장 △산업안전보건본부장 △고용부 차관

정진우 기자 econphoo@mt.co.kr 조규희 기자 playingj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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