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탄핵 심판, ‘전원일치’ 결정이 필요하다
2017년 “국론 분열과 혼란 종식…화합과 치유의 길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12월31일 조한창 정계선 헌법재판관을 임명함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8인 체제로 틀을 갖췄습니다. 헌법재판소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1차 변론기일을 오는 14일로 지정했다”며 “피청구인 윤 대통령이 1차 변론기일에 불출석할 시 2차 변론기일은 16일에 열릴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와 별도로 탄핵심판 심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여야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최상목 대행이 임명하지 않은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문제도 헌법재판소가 곧 해결할 것 같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김정환 변호사(법무법인 도담)가 제출한 ‘헌법재판관 임명권 불행사 위헌 확인’ 헌법소원을 31일 전원재판부에 회부한 데 이어, 2일 “사안의 성격을 고려해 신속하게 심리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국회도 3일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고 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최상목 대행이 마은혁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은 행위가 위헌이라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하면 최상목 대행은 마은혁 재판관을 임명해야 합니다.
이제 관심은 헌법재판소가 언제, 어떻게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할 것인지에 모이고 있습니다.
우선 결정 선고의 시기는 4월18일 이전이 될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문형배 재판관과 이미선 재판관의 6년 임기가 4월 18일에 끝나기 때문입니다.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은 6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습니다. 국회에서 선출한 조한창 정계선 재판관과 달리 ‘대통령 몫’입니다.
이들이 퇴임하면 대통령이 새 재판관을 임명해야 하는데, 대통령 권한대행이 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는지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권한이 있다고 해도 최상목 대행이 임명권을 행사할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행히 시간은 충분한 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은 2개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은 3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도 그 정도 걸릴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은 사안의 중대성과 정반대로 위헌·위법성이 너무나 확실하고 증거도 많습니다. 법률적 논란의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리인들이 시간 끌기를 하겠지만, 헌법재판소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헌법은 대통령 궐위 시 60일 이내에 후임자 선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6월에는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시기는 그렇다고 치고, 헌법재판소가 과연 윤석열 대통령을 확실히 파면할 것인지 걱정하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헌법도 상식에 기반을 둡니다. 친위 쿠데타로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대통령을 파면하지 않으면 누구를 파면하겠습니까?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문형배 이미선 정계선 재판관은 진보 성향, 김형두 정정미 김복형 재판관은 중도보수 성향, 정형식 조한창 재판관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됩니다. 마은혁 후보자는 진보로 분류됩니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심판과 같은 중차대한 사안에서는 재판관들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보다는 법과 원칙에 따를 가능성이 큽니다. 2일 취임식을 한 조한창 재판관은 취임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래전에 읽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초대 헌법재판관이었던 알비 삭스의 ‘블루 드레스’라는 책 중에서 ‘국가가 실험대에 올랐을 때 판결을 통해 나라가 근본적으로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면 판사로서의 소명을 다 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판결에 책임을 져야 하고, 우리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문구를 마음에 깊이 새기며 제 각오를 다시 한 번 더 굳게 다지겠습니다.”
정계선 재판관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저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받치는 지혜의 한 기둥, 국민의 신뢰를 받는 든든한 헌법재판소의 한 구성원, 끊임없이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나아가는 믿음직한 동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슬픈 난국을 수습하고 희망을 찾는 위대한 여정에 동행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여 따라가겠습니다.”
“저는 오늘 세 번째로 취임사를 하게 될 줄 알고 짧게 준비하였습니다. 빨리 한 자리의 공석이 채워지기를 기대합니다.”
어떻습니까? 두 신임 재판관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어떤 각오로 임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사실은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때도 그랬습니다. 당시 8명의 재판관은 추천자가 제각각이었습니다. 이정미 재판관은 이용훈 대법원장, 김이수 재판관은 민주당, 이진성 김창종 재판관은 양승태 대법원장, 안창호 재판관은 새누리당, 강일원 재판관은 여야 공동,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은 박근혜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8명 전원일치 파면 결정이었습니다.
보수 성향이 강했던 안창호 재판관은 장문의 보충 의견에서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 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습니다. 안창호 재판관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 세력의 주장을 언급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파면 결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기반으로 한 헌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와 자손이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고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한 것이다. 헌법질서를 수호하고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과 같은 정치적 폐습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
안창호 재판관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기 위한 개헌을 제의하기도 했습니다.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했던 이정미 재판관은 선고에 앞서 이례적으로 모두 발언을 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우리 재판부는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에 따라 이뤄지는 오늘의 이 선고가 더 이상의 국론 분열과 혼란을 종식하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어떤 경우에도 헌법과 법치주의는 흔들려서는 안 될 우리 모두 함께 지켜가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
헌법재판소 선고 직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2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은 현장에서 취재하던 기자들을 폭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8 대 0’이었기에 그 정도였지, 만약 헌법재판소가 ‘7 대 1’이나 ‘6 대 2’로 파면 결정을 했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앞둔 어느 날 저는 박은정 당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나 중요한 말을 들었습니다. 박은정 교수는 독일에서 법철학을 공부한 학자였습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국가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사안을 다룰 때 재판관들이 사전 협의를 통해 가급적 전원일치 결정을 내린다고 했습니다.
박은정 교수의 말에서 소중한 단서를 얻어 저는 2017년 2월 23일 치 한겨레신문에 “만장일치 탄핵해야 통합할 수 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헌법학을 전공한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2월 27일 치 경향신문에 “헌재 결정 ‘만장일치’ 돼야”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습니다. 임지봉 교수는 칼럼에서 1954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브라운 판결을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58년 전인 1896년 열차에 흑인 칸과 백인 칸을 따로 둔 것이 합헌이라는 플레시 판결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분리하되 평등한’이라는 이 판례는 미국에서 흑백 분리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됐습니다.
브라운 등 흑인 어린이들이 흑인학교와 백인학교를 따로 둔 시교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을 때 연방대법원 대법관 다수는 기존 판례를 바꿀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취임한 워런 대법원장이 대법관들을 한 사람씩 설득해 만장일치 위헌 결정을 끌어냈다는 것입니다. 인종 차별이 심한 미국에서 국민 통합의 결정적 계기가 된 중요한 판결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도 재판관들이 정치 양극화에서 비롯된 심각한 갈등을 완화하고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2025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역사의식을 갖춘 이 시대의 현자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954년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들과 2017년 우리 헌법재판관들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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