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나왔던 그 헬기, 한국군이 1조원 들여 바꾼다 [박수찬의 軍]
UH-60. 세계 각국에서 쓰이는 군용 헬기 중에서 가장 유명한 기종으로 꼽히는 헬기다. ‘블랙 호크’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UH-60은 1979년에 첫 실전배치가 이뤄진 이래 지금까지도 신규 생산이 이뤄지는 스테디셀러다.
영화 ‘블랙호크 다운’ ‘12 솔져스’ ‘제로 다크 서티’ 등에도 모습을 드러내 대중에게 친숙한 헬기다.
이에 따라 군 당국은 육군과 공군 특수전부대가 사용할 UH/HH-60 헬기 36대를 대대적으로 개량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될 성능개량 사업은 군사·산업적 측면에서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전망이다.
◆헬기 산업 판도에 영향 미칠 대형 사업
특수전용으로 쓰이는 UH/HH-60은 유사시 특전사의 공중침투, 대량살상무기 대응, 탐색구조 등에 투입된다. 고난도 작전인만큼 헬기의 성능도 그만큼 우수해야 한다.
전술과 기술 발전에 따라 헬기에 탑승하는 특수전 대원이 휴대하는 장비가 늘어나면서 중량도 증가했지만, UH-60의 헬기의 수송능력은 1990년대 생산됐을 때와 큰 차이가 없다.
1개팀을 수송하려면 더 많은 헬기를 투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작전효율성이 떨어진다.
이에 따라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30일 UH/HH-60 성능개량 사업 업체 선정 입찰공고를 냈다. 업계에선 지난달 초에 입찰공고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다소 늦어진 모양새다.
입찰공고 지난달 말에야 나온 것은 사업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방산업계의 시각이다.
입찰공고에 따르면, 일반경쟁계약 방식을 적용하는 이번 사업에 9613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체계개발기본계획 의결 당시 사업비는 8900억원. 700억여원이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사업비 대폭 증액을 기대하던 업계에선 예산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공급망과 환율 등을 감안하면 2000억원 정도 증액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실제 증액 수준은 700억원”이라며 “그나마도 환차손을 감안해 늘어난 것이라 실질적인 사업비 증액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방위사업청은 오는 15일 사업에 참가할 의향이 있는 업체들을 대상으로 사업설명회를 갖고 사업 제안요청서(RFP)와 체계개발기본계획 등을 배포·공개하고 관련 설명을 실시할 예정이다.
제안서는 다음달 26일까지 제출하게 되며, 방위사업청은 협상 등을 통해 사업주관업체를 선정하게 된다. 사업기간은 계약 체결일로부터 7년이다.
다만 사업에 참여하려는 업체의 준비 상황이나 정치적 변수 등에 따라 세부 일정이 바뀔 가능성은 있다.
이번 사업에는 대한항공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양측은 한국형전투기와 무인기 등의 사업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쳐왔다.
국내 항공우주산업을 대표하는 두 회사가 쟁탈전을 펼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대한항공은 LIG넥스원, 미국 콜린스 에어로스페이스와 함께 사업에 참여할 전망이다.
대한항공은 체계통합, 설계, 시험, 납품을 맡는다. LIG넥스원은 생존 장비와 통신체계를 담당한다.
생존 장비 중에서 적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공격으로부터 기체를 보호하는 지향성적외선방해장비(DIRCM)는 이스라엘 버드 에어로스페이스와 함께 만들 예정이다.
DIRCM은 항공기에 장착돼 적의 미사일 위협 신호가 탐지되면 고출력 적외선 레이저를 발사해 미사일을 교란하는 장비다.
버드 에어로스페이스는 스프레오스(SPREOS)라는 DIRCM을 개발, 수출한 바 있다. 적외선 추적 방식의 지대공미사일 대응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여객기와 비즈니스 제트기, 헬기 등의 플랫폼에 장착할 수 있다.
대한항공이 성능개량 사업을 수주할 경우 UH/HH-60에는 스프레오스의 한국형 장비가 탑재될 전망이다. 이외의 생존·통신장비는 수리온 수송헬기와 미르온 공격헬기에 쓰이는 전자장비 개발 경험을 토대로 LIG넥스원이 진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기업인 콜린스 에어로스페이스는 항법 체계와 조종석 개량을 맡는다. 콜린스는 군용기, 우주분야 시스템 및 제조 전문 업체다. 미군 UH-60의 특수작전용 헬기인 MH-60 조종실 디지털화를 비롯한 성능개량을 실시했다.
도입 절차가 진행중인 한국군 특수작전용 대형기동헬기의 조종석도 디지털 방식이다. 운영효율성이 증대되는 효과가 있다.
한미 연합작전 관련 상호운용성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 미군은 디지털 조종석이 적용된 UH-60V를 운용하고 있다. 특수전 헬기인 MH-47G, MH-60M은 더욱 우수한 성능을 지니고 있다.
이들과 동등한 수준의 디지털 조종석을 갖춘다면 한미 연합 특수전 능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KAI는 한화시스템·이스라엘 엘빗 시스템과 손을 잡고 사업에 참여할 전망이다.
KAI는 기체 체계 개발 및 통합을 맡고, 한화시스템은 항공전자시스템을 담당한다.
한화시스템은 지난해부터 자사의 DIRCM과 미사일경보수신기(MWR), 레이더경보수신기(RWR) 등을 제안해왔다. 기체에 장착되는 다양한 센서로부터 수집된 위협 경보를 통합 관리해서 최적의 솔루션을 찾게 된다.
엘빗 시스템은 디지털 조종석 개발 등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엘빗 시스템은 헬기의 임무컴퓨터, 다기능 디스플레이, 전자 광학 포드 및 헬멧 장착 디스플레이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이같은 장비를 통합하는 기술도 갖췄다.
UH/HH-60 성능개량 사업 수주의 결과에는 플랫폼인 UH-60 관련 기술을 얼마나 확보했는지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원 제작사인 미국 시코르스키가 보유한 UH-60 기술의 활용 범위다.
한국군 UH-60 도입은 1990년 대한항공과 시코르스키가 면허생산계약을 맺으면서 시작됐다. 이는 한국에 UH-60 제작, 유지 관리, 개조 및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한항공은 이후에도 한국군과 미군 UH-60 창정비, 개조, 성능개량 등을 진행했다. UH-60의 결함과 대응조치, 운영이력 등에 대한 경험과 기술이 축적될 수밖에 없다.
KAI는 군용 수리온과 더불어 경찰·해경·소방 등의 관급 헬기 제작 경험을 갖고 있다. 고객의 요구에 맞는 헬기 성능개량 작업 경험이 풍부하다.
사업을 누가 수주할 것인가에 대해 일각에선 UH-60 제작사인 시코르스키로부터 엔지니어링 및 임무 시스템 등에 대한 원천 기술 정보를 얼마나 확보하느냐를 꼽고 있다.
사업은 일시 중단됐고, 방위사업청은 2015년 12월 미국 록히드마틴으로 사업자를 바꿨다. 당시에는 비용 문제에 관심이 쏠렸지만, 원천 기술 문제도 군 안팎에서 거론됐다.
록히드마틴은 F-16 제작업체로서 특허를 비롯한 원천 기술을 보유했고, 성능개량경험도 있었다. 반면 BAE시스템스는 성능개량 경험이 1건에 불과했다. F-16 기술 접근 범위도 록히드마틴보다 훨씬 낮았다.
UH/HH-60 성능개량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2030년대 한국군의 특수전능력은 기존보다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국내 방위산업계도 첨단 헬기 성능개량 경험을 확보, 기술력을 높이면서 향후 방산수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어 군과 방위산업계의 관심이 지속될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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