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겜2’ 이정재 “공항서 돌아선 순간 ‘소시민’ 기훈은 죽었다”[인터뷰]

이민경 2025. 1.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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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렁한 기훈의 매력…시즌2에선 정배가 보여줘
‘모래시계’ 속 20대 얼굴 보며 30년 되돌아 봐
한국 영화·드라마 제작 늘리려 최선 다할 것
‘오징어게임’의 주인공 성기훈을 연기한 배우 이정재[넷플릭스 제공]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우산’ 모양이 찍힌 달고나를 뽑은 후 바늘에 정성껏 침을 발라 짜투리를 떼내고 겨우 살아남은 기훈. 동생 상우(박해수 분)로부터 ‘하 기훈이형! 형 병신이야?’라는 힐난을 받을 정도로 사람‘만’ 좋고 셈이 느렸던 기훈이 미간에 힘을 ‘빡’ 준 명사수 리더로 거듭났다. 시즌1에서 기훈이 보여준 ‘헐렁한 캐릭터’의 매력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는 팬들이 적잖다.

3년3개월만에 속편을 내놓은 ‘오징어게임’의 주인공 성기훈으로 분한 배우 이정재를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소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왜 이렇게 심각해진건가?’라는 물음이 쇄도하자 그는 “우승했어도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단 한푼도 쓰지 못하고, 비행기에 오르려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순간 기훈은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던 것”이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이정재는 “사실 시즌1 때 대본을 받고는 회사에서 제가 기훈 역을 안하길 바랬다. 왜냐면 너무 찌질남으로 나오니까”라고 운을 띄웠다.

그러면서 “시즌2에서 배우 개인으로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기훈은 더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로 바뀌었고, 게임을 멈추겠단 하나의 목적이 강하기 때문에 시종일관 심각한 편이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한다”며 “밝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정배(이서환 분) 등 다른 출연자들이 대신 해줬다. 작품 전체를 생각하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끼리 어둠 속에서 살육을 벌이는 ‘스페셜게임’을 앞두고, 사람들이 희생돼도 돕지 말자고 열을 올리는 기훈의 모습은 사실 ‘역변(逆變)’에 가깝다.

이정재는 “절대로 단 하나의, 한 명의 목숨도 희생해선 안된다고 하던 사람이 저렇게 바뀌었구나. 기훈이 결국 저런 선택까지 하는구나 생각하니 안타까웠다”며 “그렇게 해서 나온 행동과 결정이 파국으로 치닫기에 더욱 쓰리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견들 많이 듣고있다. 현재 시즌3의 후반작업을 하는 시점이라서 많은 분들 의견 귀담아 들어서 잘 마무리할 수 있을거 같아 더 좋은거 같다”며 완성도 높은 시즌3에 대한 기대감을 지폈다.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백재희’역으로 출연한 이정재[출처 SBS]

배우 개인으로서 2025년은 이정재에게 기념비적인 해이기도 하다. 올해는 그가 대중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은 ‘모래시계가 방영된 지 30년이 된 해이기 때문이다. 1995년에 방송된 이 드라마는 ‘K-드라마 신드롬의 원조’로 꼽힌다. 엄밀히 말해 ‘모래시계’가 그의 데뷔작은 아니지만, 지금의 이정재가 있을 수 있게 한 중요한 작품이라 할만 하다.

이정재는 “최근에 넷플릭스에 ‘모래시계’에다 ‘젊은남자’까지 올라와서 좀 쑥스러웠다. 제 예전 얼굴을 보면 미숙한 표현과 캐릭터 분석이 눈에 띄는데, 하지만 한편으로는 20대 연기자의 에너지가 부럽기도 하다”며 “그때는 그때 나름의 최선이 담겨있고, 오랜만에 보니 저도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몇 년간 흥행작이 많아 그것만 기억에 남아 계실 수 있지만 제가 30년 동안 연기가 안좋거나 흥행이 안 되는 등 실패한 작품도 많았다”며 “이런 작품들도 사실 다 저한테 자양분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오징어게임에서 회당 13억원의 출연료를 받을 정도로 월드스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도 좀 더 열심히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넷플릭스 제공]

“제가 또다른 캐릭터로 나오는걸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있다.(웃음) 그런 (팬과 배우 사이의) 의리와 우정이 있나부다. 제가 잘할 수 있겠다는 작품이 있다면은, 해야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K-드라마 선봉에 있는 작품의 주인공으로서 최근 몇 년간 해외에서 급부상한 한국 콘텐츠 인기에도 불구, 쪼그라든 제작 환경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쏟아냈다.

“사실 지금 한국 드라마·영화 제작편수가 너무 줄어들다보니까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열심히 해서 예전만큼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그러면 이 시장이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저를 비롯한 오래 일했던 사람들이 누렸던 그런 혜택을 후배들이 잘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 그런 책임감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업계에선 제작비, 그중에서도 배우들의 출연료가 최근 몇 년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경쟁으로 천정부지로 뛴 탓에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드라마·영화 제작이 엎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이에 대해 이정재는 “출연료가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어떤 상황이 생겼을 때는 원인을 한 두개가지로 특정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수 십, 수 백가지 원인이 모여 하나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제작자들끼리는 이 복합적인 문제를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지 많은 토론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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