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없어도 벤츠·테슬라” 영끌했는데 날벼락…2년만에 반값 폭락, 호갱 전락? [세상만車]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2025. 1. 5.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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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목록 2호’ 중고 전기차값 폭락
가치 떨어지는 것도 정도가 있는데
잡은 물고기 취급, ‘도’가 지나치네
중고차 가치-EV는 ‘뚝’, HEV는 ‘쑥’
쏘렌토와 벤츠 EQE SUV [사진출처=기아, 벤츠/편집=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평범한 직장인이 ‘억’ 소리 나는 수입차를 사려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기)해야 합니다.

폼생폼사(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를 위해 경우에 따라 집 마련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카푸어(car-poor)로 전락할 각오를 하기도 합니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서 새 차를 샀는데 1~2년 만에 반값 수준으로 떨어졌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날벼락’입니다. 재산가치가 폭락해서죠. 일반적으로 집 다음으로 비싼 ‘재산목록 2호’ 자동차는 폐차할 때까지 타지 않는 이상 비교적 빠른 시간에 현금화할 수 있는 동산입니다.

물론 자동차는 아파트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집니다. 출고되는 그 순간부터 ‘중고’가 됩니다.

더 편하고 더 폼 나고 더 좋은 후속 모델이나 경쟁 차종이 나오면 가치는 급락할 수도 있습니다.

대신 가치 하락에도 ‘정도’가 있습니다. 신차 가치가 절반 정도로 떨어지는 시기는 출고된 지 4~5년입니다. 1~2년만에 반값이 됐다면 도가 지나치다고 볼 수 있죠.

캐즘+공포증, 중고 전기차 가치 뚝뚝
전기차 공포증을 일으킨 벤츠 전기차 화재 [사진출처=연합뉴스]
벤츠·테슬라 전기차(EV)를 구입한 소비자들에게는 날벼락이 현실입니다. 2일 중고차기업인 엔카닷컴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중고차 시세를 비교해본 결과입니다.

지난해 ‘전기차 공포증’을 일으켰던 차종인 벤츠 EQE 305+2022년식의 시세는 5042만원입니다.

신차 가격은 1억300만원이었죠. 잔존가치는 48.9%, 2년 만에 신차값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뜻이죠.

지난해 1월 시세인 6308만원과 비교하면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1266만원이 감가됐습니다. 기아 모닝 가격이 사라진 셈입니다.

전기차 공포증에 가치가 급락한 벤츠 EQE [사진출처=벤츠]
중고차업계는 벤츠 EQE의 경우 전기차 캐즘(수요정체)을 벗어나기 위한 파격 할인으로 중고차 가치가 계속 하락했다고 분석합니다.

여기에 지난해 8월 인천의 한 아파트를 쑥대밭으로 만든 벤츠 EQE 화재와 중국산 배터리 이슈가 결합돼 가치 폭락을 일으켰다고 풀이하죠.

벤츠 EQE SUV도 유탄을 맞았습니다. EQE 350+ 4매틱 SUV 2023년식 12월 시세는 7713만원입니다. 신차 값은 1억990만원입니다.

잔존가치는 70.1%로 집계됐습니다. 출고된 지 1~2년된 수입차의 잔존가치가 80%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치 하락이 큰 편입니다.

값질 논란을 일으킨 테슬라 모델3 [사진출처=테슬라]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전기차인 테슬라 모델Y도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2022년식의 12월 시세는 5363만원으로 신차 값인 9665만원과 비교하면 잔존가치가 55.4%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에서 테슬라 열풍을 일으켰던 모델3 롱레인지도 12월 기준 잔존가치가 53.1%에 그쳤습니다.

테슬라 모델3는 가격을 고무줄처럼 올렸다 내렸다하는 ‘값질’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값질은 중고차 가치를 제대로 책정할 수 없게 합니다. 가격을 크게 내리면 중고차 가치도 크게 떨어집니다.

중고차 시세가 왔다 갔다 하면 수요가 감소합니다. 소비자들은 더 내릴 것으로 기대하고 구입을 미룹니다. 구입했다가 가치하락으로 손해볼 수 있다는 판단에 다른 차종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합니다.

테슬라 모델Y의 경우 중국산 모델 투입으로 신차 수요는 증가했지만 중고차 가치는 타격을 입었다. [사진출처=테슬라]
국내에서 국산차·수입차 통틀어 전기차 판매 1위인 모델Y의 가치가 요동을 친 가장 큰 이유는 지난 2023년 7월부터 기존 ‘미국산’ 모델Y보다 가격이 1000만원 이상 낮아진 중국산 모델Y가 판매된 데 있습니다.

미국산 모델Y와 구별하기도 쉽지 않고 가격도 저렴한 게 신차 판매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했지만 중고차 가치에는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미국산 모델Y를 비싸게 산 구매자 입장에서는 날벼락이죠.

현대차와 기아 전기차의 가치도 캐즘 영향을 받아 떨어졌지만 벤츠·테슬라 전기차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입니다.

2022년식 기준으로 잔존가치는 현대차 아이오닉5 롱레인지 프레스티지가 58.03%, 기아 EV6 롱레인지 어스는 58.13%로 산출됐습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중고차 도·소매 데이터로 잔존가치와 시세를 산출하는 ‘밸류어블 카스탯’(CAR STAT)을 통해 산출한 도매 시세의 흐름도 비슷했습니다.

지난해 1월과 10월의 평균 도매 시세를 비교해보면 출고된 지 16개월 안팎이고 주행거리가 1만5000km 미만인 벤츠 EQE는 1월보다 622만원 하락했습니다.

출고된 지 12개월 안팎, 주행거리 1만km 미만인 벤츠 EQE SUV는 2131만원 급락했습니다.

출고된 지 31개월, 주행거리 4만5000km 수준인 테슬라 모델Y도 890만원 떨어졌죠.

시세가 폭락한 전기차와 달리 친환경차 대세 자리를 다시 차지한 하이브리드카(HEV)의 가치는 높게 형성됐습니다.

중고차 가치가 높게 형성된 혼다 CR-V 하이브리드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엔카닷컴에 따르면 현대차, 기아, 혼다, 토요타가 내놓은 2022년식 하이브리드카의 잔존가치는 12월 시세 기준으로 80%대를 기록했습니다. 벤츠·테슬라 전기차 잔존가치는 50% 안팎에 불과했죠.

잔존가치가 가장 높은 차종은 신차 시장에서도 출고적체가 심한 기아 쏘렌토입니다. 쏘렌토 HEV 1.6 2WD 그래비티 2022년식의 잔존가치는 86.5%로 나왔습니다.

현대차 싼타페 HEV 1.6 4WD 캘리그래피는 81.8%, 그랜저 HEV 르블랑은 82.0%으로 역시 높은 잔존가치를 기록했습니다.

토요타 캠리 HEV 2.5 XLE는 80.2%, 혼다 CR-V HEV 2.0 투어링 4WD는 81.3%로 산출됐습니다.

이들 하이브리드카를 소유한 차주는 전기차 차주와 달리 재산상 피해를 보지 않는 셈입니다. 중고차로 팔 때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도가 지나친 값질, 고객 뒤통수치는 격
파격 할인으로 판매된 벤츠 EQE [사진출처=벤츠]
중고차 잔존가치는 신차 판매에도 영향을 줍니다. 신차를 살 때 나중에 중고차로 팔 때의 가치도 중요하게 여기는 소비자들이 많습니다. 경쟁차종보다 중고차 가치가 떨어지면 신차 판매도 타격을 받습니다.

신차 브랜드들이 중고차 가치 유지에 신경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BMW, 벤츠, 렉서스, 포르쉐 등 수입차 브랜드는 물론 현대차와 기아 등 국산차 브랜드까지 ‘인증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중고차 가치에는 신차 인기도는 물론 서비스 품질과 가격도 영향을 줍니다. 신차 인기도가 높으면 중고차 가치도 높아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서비스가 불편하고 수리·점검비가 비싸다면 공염불입니다.

현대차·기아 차종이 벤츠·테슬라보다 중고차 가치가 더디게 떨어지는 이유도 서비스 편의성과 비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중고차 가치는 신차 판매에도 영향을 준다. 중고차 가치가 높게 형성된 쏘렌토 하이브리드 [사진출처=기아]
중고차 가치가 ‘정도’ 이상으로 급락한 차종을 볼 때마다 ‘팔고 나면 그뿐’이라는 생각이 그 밑바탕에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됩니다.

“잡아 둔 물고기에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당장 눈앞의 이득에 눈이 멀어 기존 구매자를 홀대하는 격이니까요.

신차 판매를 늘리기 위한 파격 할인으로 발생하는 중고차 가치 급락은 그나마 남아있는 먹이까지 빼앗아 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수입차 브랜드는 국산차보다 비싼 수리비와 금융 프로그램으로 손실을 상쇄할 수 있겠지만 기존 구매자는 고스란히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 구매자의 재산 가치를 지켜줘야 충성도가 높아집니다.

서비스 혜택과 같은 먹이를 주지 않은 것은 물론 도가 지나친 할인 프로모션이나 값질로 기존 남아있는 먹이까지 빼앗아 간다면 기존 고객을 호구로 여긴다는 증거입니다.

토요타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한 스킬 콘테스트 장면 [사진출처=토요타]
호구·호갱 대접을 받은 소비자가 다음에 해당 브랜드의 차종을 또 사고 싶을까요.

뒤늦게 “우리 뜨겁게 사랑했잖아,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며 바지 가랑이 잡고 매달려 봐야 버스 떠난 뒤 손 흔드는 격입니다.

“너 말고도 나 좋다는 사람 줄 섰어”라는 말이 단순히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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