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 ② 30년째 '인생을 찍는' 장수 사진가 박희진 교수

박성제 2025. 1. 5.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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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은 어르신을 카메라 뷰파인더로 바라보면 그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역 어르신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영정(장수)사진 촬영을 30년 동안 이어온 사회복지학과 대학교수가 있다.

그는 "사진 한장에 그 사람의 인생을 모두 담을 수는 없다"면서도 "최대한 꾸미지 않고 평소 모습 그대로의 어르신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하는데, 많은 이들이 영정 사진을 보고 그 사람의 인생을 떠올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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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1천명씩, 30년간 3만명가량 촬영해 액자에 끼워 손수 전달
영정사진은 어르신 가시는 길에 남기는 마지막 인사…인물의 개성을 담아 촬영
박희진 교수 [촬영 손형주]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의자에 앉은 어르신을 카메라 뷰파인더로 바라보면 그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역 어르신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영정(장수)사진 촬영을 30년 동안 이어온 사회복지학과 대학교수가 있다.

사진을 전공한 부산보건대 박희진 교수는 "사진을 찍기 전 어르신들의 손을 보는 습관이 있는데 대부분 손이 온전하지 않다. 얼마나 어렵게들 살아오셨는지 짐작이 간다."면서 "손과 표정, 옷을 보고 짧은 대화를 나누면 그 찰나에 어르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가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 한장에 그 사람의 인생을 모두 담을 수는 없다"면서도 "최대한 꾸미지 않고 평소 모습 그대로의 어르신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하는데, 많은 이들이 영정 사진을 보고 그 사람의 인생을 떠올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박 교수는 영정 사진을 촬영할 때 가능한 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으려 한다. 영정 사진은 어르신들이 가시는 길에 유가족과 조문객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어르신을 웃음 짓게 하기보다 대화 몇 마디, 옷차림새 등 사람의 개성으로 삶을 유추하고 이를 사진에 남기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진지한 어르신은 근엄하게, 유머가 넘치는 어르신은 환한 모습을 사진 한 장에 담는 것이다.

박희진 교수 [촬영 손형주]

박 교수가 30년 가까이 영정 촬영에 매진한 것은 친할머니에 대한 아픈 기억에서 비롯됐다.

1991년 고향인 경북 군위에 살던 친할머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제대로 된 영정 없이 장례를 치렀다.

사진을 전공한 손자가 평소 친할머니의 사진 한 장을 찍어드리지 못했다는 게 한으로 남았다고 했다.

직업이 생기고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면 어르신 영정 사진을 찍어드리는 봉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부산보건대(옛 동주대)에 교수로 임용돼 첫 월급을 받은 바로 다음 날인 1996년 3월 26일부터 지역의 노인을 중심으로 영정 촬영 봉사를 시작했다.

한때는 한여름에 에어컨도 없는 마을 경로당에서 모기와 싸워가며 400명을 찍었다.

한해에 1천명 가까이 영정 사진을 촬영했다. 지금까지 카메라에 담은 어르신만 2만9천명에 이른다.

그간 3만명에 가까운 어르신을 찍다 보니 기억나는 사연도 여럿 있다.

그는 "대부분 어르신이 사진에 찍히는 방법을 모른다"며 "사진에 언제 찍혀 봤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분도 있고 치매가 있어서 나를 아들로 보고 끌어안는 어르신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에도 한 복지관에서 150여명을 촬영했는데 며칠 후 담당 복지사에게 급히 연락이 와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서둘러 작업해 장례식에 쓸 수 있도록 사진을 보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가슴에 훈장을 단 6·25 참전용사를 촬영해 사진전을 열었으며, 내년에는 베트남전에 참전해 고엽제 후유증을 앓는 어르신 영정사진을 찍을 계획이다.

박희진 교수 [촬영 손형주]

그의 역할은 촬영에만 그치지 않는다.

사비를 들여 액자에 사진을 넣은 뒤 직접 복지관 등에 배달하는 게 원칙이다.

그는 "직접 전달하는 것까지가 나의 임무이자 역할"이라며 "유가족이 황망한 마음에 영정사진을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아 꼭 액자에 끼워 완성된 형태로 직접 전달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10년 주기가 다가올 때마다 '이번까지만 하고 그만둘까'라는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렇지만 이 봉사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서 어르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장례식장에 놓인 영정 사진으로 어르신들이 조문객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조문객이 어르신의 인생을 떠올리고 기억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handbroth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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