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 ① '나 죽으면…' 무연고자 유언작성 교육 이주언 공익변호사

박성제 2025. 1. 5.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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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은 생전 의사 확인 유일한 방법…무연고자 존엄한 죽음 위해 교육"
공영 장례부터 국가폭력 피해자 지원 등 다양한 인권 문제 전담

[※ 편집자 주 = 새해가 밝았지만 안타깝게도 2024년이 남긴 혼란과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적 혼란은 현재진행형이며 제주항공 참사가 준 충격은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하지만, 어려운 현실에서도 희망의 꽃은 피어납니다. 그 씨앗은 자신을 희생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연합뉴스는 오랜 시간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봉사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새해의 희망을 모색했습니다. 이들의 사연을 10편의 기사로 제작해 송고합니다.]

이주언 변호사 [촬영 박성제]

(부산=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 "누구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무리 짓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산에서 공익 변호사로 활동하는 이주언 변호사(43)는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를 상대로 진행한 유언장 작성 교육의 의미에 대해 5일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그는 부산 동구와 함께 무연고자에게 '해피엔딩 장례' 지원 활동을 펼쳤다.

유언은 사후 장례 주관 의사와 재산 처리 등에 있어서 중요한 법적 효력을 지닌다.

그러나 현재 유언을 작성하는 것은 온전히 민간에 맡겨져 있어 개인이 요건에 맞춰 쓰기란 쉽지 않다.

특히 친지가 없는 무연고자가 사망할 경우 관할 지자체가 재산 처분이나 장례 절차 등을 공영장례 절차에 따라 진행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유언장을 미리 작성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 변호사는 "돌아가시고 나면 생전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게 유언밖에 없다"며 "혼자 사는 이들이라도 자신이 지정한 장례 주관자가 장례를 진행하고, 유언집행자가 재산 처분과 유산을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과거 국가로부터 인권 유린을 당한 피해자에게도 유언장 작성법을 교육했다.

그는 "국가 폭력 피해자 중 무연고자가 많은데, 국가 배상을 받기는커녕 자신이 사망한 뒤 재산이 국고로 귀속된다는 사실을 매우 싫어한다"며 "사회에 환원하거나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을 오히려 돕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들의 의사가 이처럼 분명한 이들이기에 생의 마무리를 어떻게 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유언 작성 교육하는 이주언 변호사 [부산 동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변호사가 부산에서 공익 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2022년 3월부터다.

부산의 서쪽 끝인 다대포에서 나고 자란 그는 애초부터 공익 변호사를 꿈꿨다.

가정내 성폭력 사건의 심각성을 일깨운 이른바 '김보은양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의 에세이와 조영래 변호사의 책을 읽은 뒤 이들 변호사와 닮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에는 우선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서울의 한 로펌에서 3년간 일했다.

이후 평소 꿈꿔왔던 공익 변호사에 대한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공익 변호사 단체 사단법인 두루에 들어갔다.

그는 "공익 변호사 단체에서 직접 활동해보니 지역에 공익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했다"며 "고향인 점과 육아 등 현실적 여건 등을 고려해 부산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공영장례 관련 토론회 [부산반빈곤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변호사는 부산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인권 관련 문제를 맡아 해결해 나가고 있다.

부산반빈곤센터, 사회복지연대 활동가들과 함께 공영장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조문단으로 활동한다.

기초자치단체에서 무연고 사망자에게 실시하는 공영장례에 대해 상조회사가 제대로 진행하는지 등을 시민으로 구성된 봉사자들과 점검하는 작업이다.

확인 결과 일부 장례식장에서는 젓가락조차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굳은 쌀밥을 제사상에 올리거나 시든 과일을 올려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

이 변호사는 "시민들에게 애도할 권리를 보장하고, 고인에 대한 존엄한 죽음을 마무리하기 위해 상조회사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장례를 치르는 것"이라며 "그런데 일부에서 형식만 맞춰 제사상을 차린 뒤 사진을 찍어 지자체에 보고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내용을 포함해 빈소 운영 시간 역시 최소 4시간으로 너무 짧다는 점을 지자체와 상조회사에 건의했다"며 "결국 빈소를 최소 6∼8시간으로 연장해 운영하는 등 전반적인 장례 절차가 크게 개선됐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이 변호사는 부산지역 집단 수용시설인 영화숙·재생원의 피해 생존자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세상에 알리고 적절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 대표인 손석주 씨가 유엔에 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증언했다"며 "당시 손씨가 활동을 잘 마치고 돌아올 수 있도록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재원 마련 등을 도왔다"고 말했다.

공영장례 관련 토론회 [부산반빈곤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에서 몇 없는 공익 변호사로 활동하다 보니 혼자 나서 해결해야 할 일도 많다.

이 변호사는 "시간과 체력이 제한적인 데다가 소속 단체의 활동 방향 등으로 인해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이 오더라도 어쩔 수 없이 거절할 때가 많아 죄송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는 앞으로 부산에서 활동할 공익 변호사를 양성하는 데 힘쓰고 싶어 한다.

앞서 부산에서 공익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결국 로펌에 들어가기로 택한 이들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이다.

소수의 공익 변호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공익 관련 사건을 하다 보니 결국 '소진'되고야 말았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저 역시 계속 혼자 일을 한다면 소진되고 말 것"이라며 "훌륭한 일반 혹은 청년 변호사들이 부산에서 자리 잡고 의미 있는 활동을 오래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psj1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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