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을 이렇게 대하나"…충격 휩싸인 일본, 미국 '맹비난'

김일규 2025. 1. 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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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불허 후폭풍
버릿 US스틸 CEO "바이든 행동 부끄럽고, 부패"
일본 정부 "이해하기 어렵고 유감"
니혼게이자이 "강력 비난", WSJ "경제적 자학 행위"
20일 취임 트럼프도 결정 뒤집지 않을 듯
"미 대선 정치적 합리성에 휘둘린 결과"
"일본이 아니라 미국인지 아닌지가 중요"
US스틸 경영 재건 불투명, 주가 8% 하락

“법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조처를 하겠다.”

일본제철과 US스틸은 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계획 중단 명령을 내린 데 대해 이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데이비드 버릿 US스틸 최고경영자(CEO)는 “바이든의 행동은 부끄러운 것이며, 부패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가 안보를 약화한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일본제철과 US스틸은 바이든 대통령의 판단에 대해 “조사에 근거하지 않고 미리 결정된 것”이라며 “우리는 미국에서 사업을 수행하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US스틸은 그동안 일본제철에 의한 인수가 미국 철강업 경쟁력을 높이고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라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버릿 CEO는 “인수 불허는 미국의 경제안보를 위험에 빠뜨린다”며 “경제안보상 중요한 동맹국인 일본을 모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인수 불허로) 베이징의 중국 공산당 간부들이 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다”며 “이번 결정은 중국이 득을 보는 것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일본 정부도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무토 요지 일본 경제산업상은 “국가안보상 우려를 이유로 이런 판단을 내렸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고 유감이다”는 논평을 냈다. 그는 “양국 경제계, 특히 일본 산업계에서는 향후 미·일간 투자에 강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일본 정부로서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일본 언론도 강력 비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사설에서 “미국의 안보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고 부당한 정치적 개입”이라며 “강력히 비난한다”고 썼다. 미국 언론의 시선도 곱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제조업과 안보를 훼손하는 경제적 자학 행위”라고 비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US스틸이 인수 불발 시 제철소 폐쇄나 본사 이전을 시사했던 것을 언급하며 “US스틸 운명은 공중에 떠 있다”고 논평했다.

외국 기업의 대미 투자에 악영향을 우려하는 지적도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의 오랜 역사를 가진 개방적인 투자 문화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미국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 CNN도 “다른 미국 기업에 대한 외국 투자를 멀어지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제철은 30일 이내에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계획을 철회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일본제철은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지만, 미국 규칙상 대통령 판단 자체는 뒤집을 수 없다. 니혼게이자이는 “상황을 타개할 길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인수 계획을 심사한 대미외국투자위원회(CFIUS)가 기한을 연장하지 않는 한 2월 2일까지 CFIUS에 인수 계획 포기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일본제철은 2월 2일까지 법원에 인수 포기 명령의 일시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일본제철 측은 재판에서 CFIUS의 절차에 문제가 있는 만큼 명령의 일시 중단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제철은 CFIUS가 제기한 안보 우려에 대해 ‘인수 후 US스틸 이사 과반을 미국 국적으로 구성’ 등 네 가지 합의안을 제시했으나, CFIUS가 ‘서면 피드백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일본제철과 US스틸은 “동맹국인 일본을 이렇게 대하는 것은 충격적이며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20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한다. 일본 정부는 일본제철이 만회할 가능성은 트럼프가 바이든의 중단 명령 철회를 명령하는 것뿐이라 보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도 지난해 일본제철의 인수 계획에 대해 “완전히 반대”라고 밝혔으며, 생각을 바꿀 조짐은 없다는 관측이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반대했던 데이비드 맥콜 전미철강노동조합(USW) 회장은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차기 정부에서도 (저지 결정은) 뒤집히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니혼게이자이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작용하는 ‘정치적 합리성’에 휘둘린 결과”라고 지적했다. 선거 승패를 가르는 격전 주(펜실베이니아)에서 미국을 상징하는 제조업(US스틸)이 외국 기업에 인수되는 것에 대한 저항감은 ‘경제적 합리성’과는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는 트럼프 인수팀 관계자 발언을 인용, “미국 제조업 부활을 내건 트럼프가 미국을 대표하는 철강기업 US스틸이 인수되는 데 반대하고, 정치적 라이벌인 바이든도 끌어들이며 정치화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고 전했다.

일본제철이 US스틸 인수 계획을 발표한 것은 지난해 11월 대통령 선거까지 1년이 채 남지 않은 2023년 12월이었다. 일본제철은 미국 철강기업 클리블랜드 클리프스 등과 경쟁 입찰에서 승리하며 회사 사상 최대 규모인 2조엔에 US스틸 인수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제철이 US스틸 인수에 성공하면 연간 조강 생산량 세계 4위에서 3위로 오를 수 있었다.

전미철강노동조합(USW)이 즉각 반대를 표명하자 트럼프도 다음 달에 뒤를 이었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려면 ‘러스트 벨트(5대호 주변 쇠락한 공업지대)’ 노동자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선택은 할 수 없었다. 노조를 기반으로 하는 바이든도 지난해 3월 가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4월 펜실베이니아주 USW 본부에서 연설을 통해 “국내에서 소유 및 운영되는 미국 철강기업으로 남아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당시 연설을 듣던 한 산별노조 간부는 “(매수자가) 동맹국인 일본인지 여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생각은 바이든, 트럼프의 사고방식 그대로다. 일본제철 안팎에선 “일본제철 간부가 인수 발표 직후부터 펜실베이니아에 머물면서 현지 관계자 및 정치인과 관계를 맺었어야 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본제철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3월에는 14억달러, 8월에는 13억달러 규모의 설비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인수 작업을 맡은 모리타카 히로 부사장은 여러 차례 펜실베이니아주를 방문했다. 그가 만난 직원과 지역 정치인, 비즈니스 리더는 1000명이 넘는다.

지난해 7월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무부 장관을 지낸 마이크 폼페이오를 고문으로 임명했다. 결과적으로 이 인사가 성과를 냈다고 보기는 어려워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승리가 굳어진 지 3일 뒤에 폼페이오를 새 정부 요직에 기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일본제철의 투자를 받지 못할 경우 US스틸은 경영 재건이 어려워진다. 3일 미국 증시에서 US스틸 주가는 한때 8% 하락했다. US스틸은 인수 불발 시 제철소 폐쇄와 본사 이전 등을 시사해 왔다. 새로운 인수자를 둘러싼 움직임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US스틸이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있는 여지는 제한적이다. 지난달에는 작년 10~12월 손익이 4분기 만에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했다. 자동차 등 산업용 철강 수요 침체와 가격 하락에 더해 환경 부담이 적은 전기로 공장 가동 비용도 부담이 됐다.

1901년 창업한 US스틸은 미국을 대표하는 전통기업이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JP모건의 시조’ 존 피어폰트 모건 등이 여러 철강회사를 합병해 탄생했다. 1960년대까지 세계 최대의 철강 메이커였으나, 일본과 유럽의 공세에 시달렸다. 2023년 조강 생산량은 약 1500만으로 일본제철의 3분의 1이다. 2023년 세계 순위는 24위로, 10년 전 13위에서 크게 하락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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