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스페셜티 커피의 가벼움 [박영순의 커피 언어]

2025. 1. 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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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란 용어를 좋은 품질을 보증하는 지표로 간주하는 관행이 한계에 달했다.

1982년 미국이 발 빠르게 이 용어를 가져가 스페셜티커피협회(SCA)를 결성해 커피의 품질을 100점 만점으로 평가했는데, 엉뚱하게도 이 협회로부터 80점 이상 점수를 받아야만 스페셜티 커피가 되는 것인 양 이제까지 오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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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란 용어를 좋은 품질을 보증하는 지표로 간주하는 관행이 한계에 달했다. 스페셜티 커피라는 문구에 홀려 비싼 값을 지불하는 소비자들의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서둘러 구태를 바로잡아야 한다.

스페셜티 커피는 애초 ‘특별한 등급의 커피’를 지칭한 게 아니라 와인의 테루아(Terroir)처럼 커피가 자란 땅을 명확하게 구분해 소비함으로써 자연의 축복과 재배자의 노고에 감사하자는 문화 개선 운동의 하나로 등장했다. 에르나 크누젠이 1978년 국제커피회의에서 “산지의 특별한 지리학적 미세기후 조건이 커피에 고유한 향미를 부여한다(Special geographic microclimates produce beans with unique flavor profiles)”고 연설했을 때 싹을 틔운 개념이다. 커피 패러다임이 음료에서 문화로 바뀐 순간이었다.
에르나 크루젠. 파란만장한 커피사(도서출판 이글루)
1982년 미국이 발 빠르게 이 용어를 가져가 스페셜티커피협회(SCA)를 결성해 커피의 품질을 100점 만점으로 평가했는데, 엉뚱하게도 이 협회로부터 80점 이상 점수를 받아야만 스페셜티 커피가 되는 것인 양 이제까지 오용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한 자치단체가 미국의 사설단체인 SCA의 이러한 개념을 설파하는 데 막대한 혈세를 사용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어 1999년 커피생산국들이 모인 컵오브엑설런스(Cup of Excellence)가 출범한 뒤로는 이 단체로부터 평점 85점 이상을 받아도 스페셜티 커피가 된다는 인식이 횡행하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라는 자격을 부여하는 단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외국의 특정 단체에 기대어 ‘문화적 권력’을 휘두르고, 일각에서는 이에 주눅이 든 양 비판 없이 따라가는 것은 수치스러운 사대주의적 태도이다.

한국인에게 맞는 스페셜티 커피를 우리의 입맛으로 골라 순위를 매겨 시상하는 ‘K커피 어워드’가 작년부터 경기도커피콩축제와 서울노원구커피축제에 등장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커피가 세계인의 음료가 된 상황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가려내는 주도권을 우리가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마당에 커피 문화 발전에 앞장서야 할 몇몇 유명 커피업체가 스페셜티 커피를 내세운 상술을 펼치는 데 급급한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이라는 타이틀을 건 A사는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여러 나라 커피를 섞어 팔고, 심지어 인스턴트 가루 커피마저 버젓이 판매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급인 B사는 ‘100% 스페셜티 커피 사용’이라고 적시했지만 커피 농장은커녕 지역조차 알 수 없는 커피, 그것도 여러 나라를 섞은 블렌디드 커피가 즐비하다. C사는 “SCA의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된 80점 이상의 상위 10% 생두를 사용한다’고 내세우고 있지만, 10%라는 표현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올해 세계적으로 생산된 커피 생두는 1억7620만포대(1포대=60㎏)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10%라면 1762만포대, 무게로 100만t이 넘는다. 포대를 길게 세우면 서울과 부산을 50회 이상 오가는 거리이고, 적도를 따라 지구를 절반가량 도는 분량이다.

인류애를 담은 스페셜티 커피를 장삿속으로 악용하는 행위를 소비자들이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커피를 구매할 때마다 명확히 산지를 묻고 따지는 운동에 나서야 한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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