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복행 선언 2분만에 비상 착륙했을까
우연히 일어나는 사고는 없다. 2024년 12월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도 마찬가지다. 179명이 사망했고 2명이 크게 다쳤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사고 여객기인 제주항공 7C2216편의 블랙박스를 회수해 안에 저장된 데이터를 해독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항공기 사고 원인 규명에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장비다. 사고 조사는 예방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절차다. 제주항공 참사를 둘러싸고 지금까지 제기된 여러 의문점도 유사한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콘크리트 구조물’ 규정 위반·참사 영향 규명해야
사고 여객기는 2.8㎞ 길이의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끝단에서 약 264m 떨어져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과 충돌할 때 폭발했다. 항공기 항행을 돕기 위한 시설이 설치된 구조물이었다. 그 전에 사고 여객기가 활주로 북쪽 시단(기점)으로부터 약 1.2㎞ 떨어진 지점에 기수(비행기 앞부분)와 양 날개 쪽 착륙장치(랜딩기어·Landing Gear)를 내리지 못한 채 착륙했다. 블랙박스 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 국토교통부가 설명한 내용에 비춰볼 때, 사고 여객기 조종사가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을 언급하며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고 선언한 지 3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원래 착륙해야 하는 지점도 아니었다. 앞서 사고 여객기 오른쪽 날개에 설치된 제트엔진에서 연기가 분출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다.
기장이 오전 8시59분께 새떼와 충돌했다고 알린 뒤 활주로에 비상 착륙한 사고 여객기가, 오전 9시3분께 콘크리트 구조물과 충돌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4분. 이 시간 동안 있었던 일을 하나씩 살펴보자.
사고 여객기가 충돌한 콘크리트 구조물엔 항공기 항행에 필요한 방위각 제공시설(로컬라이저·Localizer)이 설치돼 있었다. 착륙하는 항공기에 활주로 중심선 정보를 제공해 항공기가 활주로 중앙에 정렬할 수 있도록 돕는 설비다. 이 설비에 왜 2m 높이의 구조물이 설치된 걸까. 무안국제공항 활주로는 기점부터 끝단까지 평평하지 않다. 그 2m 내외의 단차를 극복하기 위해 구조물을 설치했다는 것이 국토부 설명이다. 항행안전시설과 활주로, 계류장 등이 있는 전국 공항 내 에어사이드(Airside) 구역 설계·건설은 국토부 소관이다.
왜 콘크리트로 만든 구조물일까. 국토부는 2024년 12월31일 브리핑에서 “방위각 시설이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하기 위해 지지대를 설치했고, 활주로 종단 안전구역 밖에 있어서 (구조물) 재료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판단해 콘크리트 지지대로 받친 것”이라고 밝혔다. ‘공항 부지에 있고 장애물로 간주되는 모든 장비나 시설물은 부러지기 쉬운 받침대에 장착해야 한다’는 것이 국토부가 정한 규칙(‘항공장애물 관리 세부지침’)이긴 하나, 무안국제공항 방위각 제공시설과 같이 활주로 종단 안전구역 ‘밖’에 설치된 장비에 대해서는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처럼 방위각 제공시설이 단단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고정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 항공업계 중론이다. 국외 항공사 조종사인 ㄱ씨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나도 그렇지만, 나와 같이 일하는 다른 외국인 조종사들도 ‘왜 로컬라이저가 저 두꺼운 콘크리트 구조물에 고정돼 있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만일 사고 여객기가 콘크리트 받침대 없이 (벽돌로 쌓아 올린) 공항 외벽에 부딪혔다면, 여객기가 충돌로 폭발하지 않고 그대로 외벽을 치고 나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운송에 필요한 각종 국제 표준과 규칙을 정하는 유엔 산하 전문기구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이카오) 항공항행위원을 지낸 이우종 전 위원도 같은 말을 했다. “활주로 시단과 끝단 높이차를 고려해 구조물을 세웠더라도 그 구조물을 항공기가 부수고 나갈 수 있도록, 즉 부서지기 쉽게 만들었어야 했다”며 “로컬라이저 설계 때 항공기가 오버런(Overrun·활주로를 이탈)해서 갈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하고 항공기에 위험을 줄 수 있는 요인을 제거했어야 하는데, 항공기를 대파시킬 수 있는 콘크리트 옹벽 같은 구조물을 만든 건 결정적인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항공사고철도조사위원회는 국토부가 무안국제공항에 지은 해당 콘크리트 구조물이 이번 참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조사할 계획이다.
사고 여객기는 왜 동체 착륙을 했을까
사고 여객기는 왜 착륙장치(랜딩기어)와 항공기 속도를 줄이는 장치를 작동하지 못한 채 동체 착륙을 했을까. 그것도 원래 착륙하려던 지점과 다른 지점에서. 이 점이 제주항공 참사의 가장 큰 의문점이다. 동체 착륙은 말 그대로 항공기가 착륙장치를 완전히 펼치지 못하고 항공기 밑면으로 착륙하는 것을 말한다.
항공기 랜딩기어는 보통 항공기가 활주로에 착륙하기 전 고도 2400피트(약 720m) 정도에서 내린다. 그런데 사고 여객기는 착륙장치뿐만 아니라, 주날개 뒷전에 설치돼 항공기가 수직으로 뜨도록 양력을 발생시키는 장치인 플랩(Flap)마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상태로 동체 착륙을 했다. 항공기는 착륙할 때 플랩 각도를 30도로 맞춰 항공기가 앞으로 나아가는 속력을 줄인다. 이우종 전 이카오 항행위원은 “항공기가 (활주로에서 항공기 방향을 제어하는) 노즈(Nose) 랜딩기어(기수 쪽 착륙장치)를 접은 채 동체 착륙을 하는 경우는 전세계적으로 종종 있어도, 메인(Main) 랜딩기어(양 날개 쪽)를 접고 동체 착륙을 하는 경우는 몇십 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거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사고 여객기는 메인 랜딩기어와 노즈 랜딩기어 모두 펼치지 못한 상태로 동체 착륙을 했다. 착륙장치는 왜 내려오지 않은 걸까. 플랩과 마찬가지로 착륙장치는 유압(기름에 가하는 압력)으로 움직인다. 이 유압을 발생시키는 장치(펌프)는 제트 엔진(이하 엔진)에 연결돼 있다. 양쪽 주날개에 설치된 엔진은 항공기의 심장과도 같다. 공기가 연소하면 팽창하는 성질을 이용한 동력 장치로, 기체 전방에서 흡입한 공기를 연소시켜 팽창하게 한 다음 이를 압축기로 압축하고, 가스(제트)로 분사해 추진력(추력)을 얻는다. 항공기 객실과 조종석(콕피트) 내부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온도, 습도를 조절하는 에어컨 시스템도 이 엔진과 연결돼 있다.
항공기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엔진에 부착된 발전기와 기체 뒷부분에 있는 보조동력장치(APU)가 주로 공급한다. 보조동력장치는 엔진이 꺼졌을 때 사용된다. 수동으로 켠 보조동력장치는 가동하기까지 약 1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항공기에 탑재된 배터리는 모든 발전기가 고장 났을 때 항공기 위치, 속도, 고도 등을 알리는 위치발신 장치(ADS-B)와 같은 조종·통신 기능을 유지하고 비상탈출 유도등을 켜는 데 쓰인다. 착륙장치를 올리고 내리는 것과 같이 큰 힘이 필요한 유압 장치는 엔진과 보조동력장치로 움직일 수 있지만, 배터리로는 작동시킬 수 없다.
국토부 설명대로라면, 참사 당일 오전 8시54분께 사고 여객기는 무안국제공항 관제탑으로부터 활주로 남측(01방향) 착륙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착륙 중이던 사고 여객기 기장이 오전 8시59분께 ‘조류 충돌’을 언급하면서, 조난 상황을 뜻하는 ‘메이데이’(Mayday·3회 반복)를 선언하고 복행하겠다고 공항에 통보했다. 착륙 중인 항공기가 착륙을 포기하고 다시 상승한 뒤 재차 착륙하는 것이 복행(고어라운드·Go-around)이다. 원래 착륙하려던 곳으로 다시 착륙을 시도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에 따라 사고 여객기는 활주로 남측(01방향)으로 복행해야 했다.
엔진 두 개 모두 고장 났을 가능성 제기
참사 발생 당일 무안의 한 펜션에 묵고 있던 여행객이 오전 8시58분께부터 찍은 영상을 보면, 착륙을 시도한 사고 여객기의 오른쪽 날개 엔진에서 불꽃과 연기가 보였다. 이 영상을 바탕으로 엔진 2개 중 하나에만 이상이 생겼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고 해서 착륙장치를 작동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 얘기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조사관으로 11년, 임기제 공무원인 국토부 항공안전감독관으로 6년 일한 경험이 있는 심재동 세한대 항공정비학과 교수는 “새떼와 충돌해서 또는 엔진 내 압축기 이상으로 공기 압축성이 나빠져 엔진 하나가 꺼진다고 해도 항공기 주요 기능이 멈추지 않도록 이중, 삼중 장치를 만든 것이 항공기 설계의 기본”이라며 “엔진 하나가 고장 나도 랜딩기어를 내릴 수 있도록 항공기가 설계돼 있다”고 말했다.
또 엔진 2개 중 하나에 이상이 생겼을 때 메이데이를 선언할 수 있을까. 국내 항공사 조종사인 ㄴ씨는 “통상 조종사들은 엔진 하나에만 이상이 생겼을 때 메이데이를 선언하지 않고 (긴급 상황을 뜻하는) ‘팬팬’(Pan-pan)을 선언하도록 교육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원 엔진 페일리어(One Engine Failure·엔진 하나만 손상) 상황에서 조종사가 메이데이를 선언했다고 해도 과한 것은 아니다. 엔진 하나의 추력이 갑자기 50% 정도 떨어지고, 이것을 조종사가 심각한 손상이라고 판단했다면 메이데이를 선언할 수 있다. 조종사가 판단하기 나름”이라고 덧붙였다.
조종사가 엔진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했다고 판단하고 결정한 복행을 실행하는 데까지는 통상 15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사이에 기장은 부기장에게 ‘내가 교신과 비행을 할 테니, 당신은 비상조치를 하라’는 지시를 한다. 그 비상조치에는 보조동력장치를 켜고, 엔진에서 발생한 연기가 기내와 조종석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스위치를 꺼서 공기를 차단하고, 에어컨 시스템을 끄는 일이 포함돼 있다. 이런 여러 비상조치를 하는 데 15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사고 여객기는 복행을 통보하고 15분이 아니라 2분 뒤인 오전 9시1분께 공항 관제사로부터 활주로 진입 착륙 허가를 받고 오전 9시2분께 동체 착륙을 했다. 그것도 활주로 남측(01방향)이 아니라 북측(19방향)에 했고, 항공기가 활주로에 내린 지점도 활주로 끝에서 200~300m 떨어진 정상적인 착지 지점이 아니라 1.2㎞ 떨어진 지점이었다. 즉, 플랩을 동작시키고 기체와 활주로와의 마찰을 이용해 속도를 늦추더라도 콘크리트 구조물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던 지점에 착륙한 것이다.
그렇게 위험한 상태로 착륙을 시도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놓고 엔진 두 개가 모두 고장 났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엔진 두 개에 모두 심각한 손상이 발생해 메이데이를 선언한 상황에서 보조동력장치를 켤 시간도 없이 급박하게 비상 착륙을 시도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건 조종석 계기판에 있는 착륙장치 작동 레버(손잡이)를 ‘Up’(접힘)에서 ‘Down’(내림) 위치로 내렸는데도 착륙장치가 펼쳐지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조치, 즉 부기장 자리에 있는 케이블을 잡아당겨 유압이 떨어지면서 랜딩기어를 내리는 조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추정과도 연결된다.
조종사 ㄱ씨는 “비상 상황이라 해도 착륙하기 20~30분 전에 여러 조치를 하고 관제사와 충분히 교신하면서 착륙하는데, 엔진 두 쪽이 모두 고장 난 경우가 아니고서는 랜딩기어를 안 내리고 짧은 시간에 착륙 시도를 한 것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재동 교수는 “사고 여객기가 최초 착륙 시도 때 이상 없이 랜딩기어를 내렸기 때문에 (오전 8시54분께 공항으로부터 착륙 허가를 받고) 활주로 01방향으로 진입해 착륙하는 시도까지 갔을 것”이라며 “만일 최초 착륙을 시도할 때 랜딩기어를 내리지 않았다면, 또는 내리지 못했다면 착륙 허가를 받기 전에 메이데이를 선언할 상황이 이미 있었어야 한다”고 밝혔다. 사고 여객기 조종사가 ‘조류 충돌’을 언급한 오전 8시59분께부터 상황이 급변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항공기 조종사 행적 조사 통해 피로도 확인 필요
사람이 만든 기계는 언제든 고장이 날 수 있다. 그런데 고장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고 점검할 새도 없이 항공기가 바쁘게 움직인다면 어떻게 될까. 정비 인력과 조종사의 피로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저비용항공사(LCC)인 제주항공은 국내 항공사 11곳(2023년 12월 기준) 중 여객기당 월평균 가동시간(2024년 3분기 기준)이 418시간으로 가장 많다.(2위는 티웨이항공 386시간, 3위는 진에어 371시간) 대형항공사(FSC)인 대한항공(355시간)과 아시아나항공(335시간)의 월평균 가동시간을 웃돈다. 가동시간은 항공사 수익과 직결되면서도 노동자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항공기 가동시간을 높였다는 건 항공기도 고생하고 사람도 고생한다는 뜻이에요. 일하는 사람이 여기저기 끌려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죠.” 이우종 전 항행위원의 말이다.
12월은 국외여행 수요가 높은 성수기다. 사고 여객기는 한국시각 기준으로 12월29일 타이 방콕에 있는 수완나품 공항에서 새벽 4시29분 출발했다. 다음은 조종사 ㄴ씨의 말이다.
“이륙 시간을 고려하면 (사고 여객기) 조종사는 아마 이륙 3시간 전인 새벽 1시20분께 수완나품 공항 근처 숙소에서 잤을 거예요. 그리고 새벽 3시께 공항에 도착했을 것이고요. 사고 여객기가 무안국제공항에 도착한 게 오전 9시께잖아요. 한마디로 조종사가 날밤을 새웠단 얘기죠. 그런데 이 조종사가 그 전에 어떤 일정에 따라 움직였는지를 봐야 해요. 지금이 국외여행 성수기잖아요. 만일 동남아시아 비행을 다녀온 날 하루 쉬고, 그다음 날 국내선 여객기를 조종하고, 그다음 날에도 국내선 여객기를 조종하다가 그다음 날 밤에 타이로 가서 그다음 날 새벽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공기를 몰았다면요? 그러면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성수기 국외 비행은 조종사들이 다 힘들어해요.”
제주항공 근무방식·임금체계도 엄밀 조사해야
참사 발생 전 사고 여객기의 정비 이력뿐만 아니라 항공기 조종사의 피로도를 확인하기 위한 72시간 행적 조사도 항공기 사고조사 과정에서 이뤄진다. 만일 제주항공이 조종사가 무리한 비행을 할 수밖에 없는 근무방식과 임금체계를 운영했다면, 또 조사 결과 사고 원인 중 하나로 기체 결함이 지목된다면 제주항공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조사 대상이 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항공기와 같은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하여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를 ‘중대시민재해’로 정하고 있다. 국토부는 2021년 발행한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에서 ‘에이(A)항공이 착륙 도중 기체 결함으로 인해 추락하여 이용자 1명이 사망하고 5명이 다친 사고’를 가상사례로 제시했다. 이 사례에서 A항공 경영책임자는 항공기의 항공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고 개선 조치도 하지 않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사고는 ‘그리고’의 연속이다. 여러 복합 요인으로 발생한다. 참사를 불가항력과 같이 예기치 못한 우연의 결과로 여긴다면 안전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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