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월급 탈탈 털어 교육비에 올인”...한국을 능가하는 이 나라의 맹모 파워 [신짜오 베트남]
그런데 인구의 절반이 30대 이하인 ‘젊은 나라’ 베트남도 한국보다는 훨씬 덜하지만 저출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갈수록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VN익스프레스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베트남 출산율은 2021년 2.11명에서 2022년 2.01명을 기록하다가 지난 2023년 1.96명으로 떨어지며 2명 이하로 내려갔습니다. 심지어 2024년 베트남 출산율은 1.91명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돼 또 한 번 최저치를 경신할 예정입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지 살펴보면 먼저 대도시 지역의 출산율 하락 추세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베트남 ‘경제 수도’인 호찌민시를 포함한 베트남 남동부 지역은 출산율이 베트남에서 가장 낮은 1.48명으로 내려갔습니다. 이에 반해 북부 산악 지역은 2.34명, 중부 고원 지역은 2.24명 등 농촌 지역은 뚜렷하게 출산율이 높은 경향을 보입니다. 평균을 내면 도시 지역 출산율은 1.67명에 불과해 농촌 2.08명에 비해 훨씬 낮습니다.
도시 지역 출산율이 떨어지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중 유력한 원인 중 하나는 역시 교육입니다. 베트남은 한국과 비슷하게 ‘유교 사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맹모삼천지교’ 풍습이 베트남에서도 굉장히 강합니다. 자식 교육만큼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확실하게 밀어주려는 문화가 베트남 대도시에 깊숙하게 뿌리내려 있습니다.
베트남에 체류할 당시 친하게 지냈던 한 부부가 있습니다. 이들은 부부 모두 한국계 은행에서 일을 합니다. 똑똑하고 근면하며 붙임성이 좋기까지 합니다. 이들에게는 아들 하나, 딸 하나 두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최근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이 부부는 “딸이 프랑스에 유학하는 게 꿈이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자녀가 다니던 학교도 옮겼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들의 자녀는 베트남어와 영어를 이중으로 쓰는 현지 사립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보다 학비가 더 비싼 국제학교로 자녀를 전학시켰다고 합니다. 해외에서 베트남을 찾은 주재원들이 주로 다니는 이 학교는 한 해 학비가 한화 기준으로 2500만원 정도 합니다. 자녀 둘을 보내는 학비가 한화 기준으로 5000만원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베트남에서 비교적 연봉이 높은 금융권에 다니고 있지만 두 부부가 벌어 한 해 5000만원의 학비를, 그것도 베트남에서 조달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입니다. 실례가 될까 봐 자세한 사정은 묻지 못했지만, 아마도 이 부부는 자녀의 성공을 위해 아낌없는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모든 베트남 부부가 이와 같은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 못지않게 치열한 교육열을 지닌 베트남의 문화가 저출산의 한 원인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남들 못지않게 훌륭한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싶은데 아이가 많으면 그러지 못할 공산이 큽니다. 자연스럽게 ‘하나 낳아 잘 기르자’는 심리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도시 지역 출산율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미 베트남 젊은 계층 사이에서는 아이 양육에 따른 부담감을 널리 공유하고 있습니다.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담긴 기사에 ‘하나 키우기도 얼마나 힘든데 정부가 사정을 아느냐’는 비난성 댓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미 베트남이 걷고 있는 길을 한참 먼저 걷고 있는 한국의 사정은 이보다 훨씬 심각할 것입니다. 내리막길을 걷는 한국 출산율 한복판에 살인적인 교육비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결국 저출산 대책의 시작은 자녀 교육비 문제를 어떻게 제도권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또한 이 문제는 한국의 입시 제도와 교육 시스템, 더 넓게는 학군과 부동산 문제까지 연결된 고차 방정식입니다. 누가 이 어려운 문제를 감히 풀어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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