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이 핫플!.. '계엄 모의' 45세 롯데리아 속 한국사

2025. 1. 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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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의 식사(食史)]
<96>롯데리아 45년 역사 속 주요 사건
편집자주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전·현직 정보사령관들이 '12·3 불법계엄' 직전 비밀 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경기 안산의 한 롯데리아 매장(왼쪽 사진)과1990년대 롯데리아 광고의 한 장면. 뉴스1·한국일보 자료사진

기억이 맞는다면 1984년의 일이다. 경기 수원 구도심, 남문(팔달문) 바로 옆에 롯데리아가 문을 열었다. 지금은 고도제한 탓에 발전이 멈춰 쇠락했지만, 당시 남문의 주변 지역은 활기찬 수원의 중심지였다. 바로 그런 입지에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가 들어오다니! 조금 과장을 보태 온 수원이 들썩였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도 들떠 가보겠노라고 어머니에게 허락을 구했다.

어머니는 처음에 안 된다고 했다. 이른바 '노는 애들'이 꼬이는 곳일 거라는 논리였다. 실제로 남문 일대 중심가에서는 초중생의 옷이나 시계, 돈을 갈취하는 고등학생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아파트 상가에서 파는 게살고로케버거 같은 것이 최선이었던 나에게 롯데리아는 놓칠 수 없는 패스트푸드 경험의 기회였다. 결국 어머니를 설득해 허락을 받아냈는데, 정작 가서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햄버거 프랜차이즈로서 롯데리아는 만년 2등의 이미지를 풍긴다. 다소 난잡해 보이는 브랜드 정체성에, 실험적이라고 보기에는 괴식에 가까운 메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해온 것도 영향을 미쳤다. 새우 아닌 명태살로 패티를 만들어 '새우 알러지가 있는 사람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다'는 새우버거의 사례처럼 종종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롯데GRS는 지난해 5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최대 외식 박람회인 NRA에서 롯데리아 버거 시식회를 진행했다. 롯데GRS 제공

하지만 규모만 놓고 보았을 때 롯데리아는 오랜 세월 1등이었다. 요 몇 년 공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한 맘스터치에 밀려 진짜 2등으로 주저앉았지만, 2022년 기준 매장 수만 거의 1,300곳에 달한다. 서울과 수도권뿐만 아니라 그 외의 지역, 시가 아닌 군 이하 단위까지 진출했음을 의미한다. 맥도날드의 매장 수가 2024년 7월 기준 422곳임을 감안하면 롯데리아가 구축한 햄버거 네트워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올해로 출범 45주년을 맞이한 롯데리아의 역사 속 주요 사건을 살펴보자.

롯데리아는 세계 각국에 진출하고 있다. 사진은 베트남의 유명 가수 에이미가 출연한 롯데리아 CF의 한 장면. 롯데GRS 제공

◆1979년 롯데리아 1호점 개장

1967년 롯데제과가 국내에 진출한 지 12년, 1972년 일본 롯데리아가 문을 연 지 7년 만의 일이었다. 상호는 '롯데+카페테리아'의 조어였다. 롯데는 일제강점기부터 서울의 대표 호텔이었던 반도호텔을 매입한 자리에 롯데호텔을 지어 1979년 3월 10일에, 롯데백화점을 12월 17일에 열었다. 그리고 그 사이인 10월 25일, 롯데리아 1호점이 개장했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고 신격호 롯데 회장의 포석이었던 롯데리아는 한국 최초의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였다. 그렇기에 국내에 여러모로 최초의 사례를 낳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 둘만 꼽자면 아르바이트 채용과 셀프서비스 도입이었다. 먼저 아르바이트 모집에는 5,000명 이상이 지원했는데 문턱이 상당히 높았다. 적성검사와 면접은 물론 외국어 능력까지 요구했다.

소공동과 이웃 명동 일대는 지금도 그렇듯 외국인의 왕래가 매우 많은 지역이었다. 서울의 중심 지역으로서 호텔과 관공서, 은행과 증권사의 본사가 밀집해 있었다. 한국의 첫 본격 햄버거 프랜차이즈임을 감안할 때 외국인의 수요가 많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이들을 응대하기 위해 영어, 일본어 등 외국어로 회화가 가능한 사람을 찾았다. 물론 적성검사와 면접은 기본이었다.

1990년대 롯데리아 광고의 한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편 먹는 이가 직접 주문을 하고 음식을 가져다 먹은 뒤 쓰레기까지 버리는 셀프서비스는 비용 절감으로 단가를 낮추기 위한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의 핵심 전략이다. 지금이야 너무나도 익숙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1970년대 말의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매장에 '셀프서비스'라 붙여 놓은 문구를 보고 음식 이름으로 착각해 "셀프서비스 하나 주세요"라고 주문을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해외여행도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 비록 일본산이지만 본질적으로 미국 문화인 햄버거는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덕분에 롯데리아 1호점은 서울 도심의 명소로 급부상했다. 롯데백화점의 시너지 효과까지 맞물려 개장 두 달 만에 월 평균 3,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니, 당시 450원이었던 햄버거 가격을 감안하면 하루에 2,200개를 판 셈이었다. 국민소득 1,400달러, 가구당 연간 외식비는 5만 원(1978년 기준)인 시절이었다.

◆1992년 불고기버거 출시

롯데리아에서 현재 판매 중인 버거 메뉴. 출처 롯데리아 홈페이지

불고기패티와 소스를 사용한 불고기버거는 태생적으로 미국, 즉 서양 음식이라는 인식에 도전하는 롯데리아의 역작이었다. '토종 버거라는 게 존재할 수 있구나'라는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 냈을 뿐만 아니라 맛 또한 만족스러워, 불고기버거는 단숨에 롯데리아의 대표 메뉴로 급부상했다. 어린이와 젊은층 외의 소비자에게도 햄버거의 심리적 장벽이 훨씬 낮아졌다.

그렇기에 1992년 9월 25일 출시 이후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불고기버거가 롯데리아 부동의 판매 1위라는 사실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누적 판매 10억 개를 돌파했으며, 원조 불고기버거로서 맥도날드 등 다른 프랜차이즈의 그것에 비해 우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2004년에는 업그레이드 버전인 한우불고기버거가 출시되어 붙박이로 자리 잡았다.

◆1996년 우엉버거 출시

등장했다가 한 달 만에 사라진 롯데리아의 '우엉버거'. 나무위키

당시의 건강 열풍을 등에 업고 출시된 우엉버거는 닭가슴살 패티와 들척지근한 데리소스, 우엉을 마요네즈에 버무린 샐러드가 한데 합쳐진 제품이었다. 말하자면 양상추를 우엉샐러드로 대체한 버거였는데 오늘날 평은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다. '롯데리아 사상 최악의 괴식'이라는 야멸찬 혹평과 '그래도 먹을 만했다'는 뜨뜻미지근한 호평이 공존한다. 1996년 11월 1일 등장해 1개월여 만에 사라졌다.

◆1999년 라이스버거 출시

햄버거의 빵 대신 둥글넙적하게 뭉친 밥을 쓴 제품이다. 원래 라이스버거는 국내에도 소수의 매장이 운영되고 있는 일본의 모스버거(1972년 설립)가 원조로 1987년 출시되었다. 새우라이스버거와 김치라이스버거로 변모한 뒤 사라졌다가 2003년 '버거짱'이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했지만 평가가 나빠 몇 달 만에 단종되었다. 이후 야채라이스불고기버거(2006~2016, 2019), 전주비빔라이스버거(2023)가 등장했다.

◆2015년 라면버거·2016년 마짬버거 출시

'라면버거'와 '마짬버거'는 2010년대 롯데리아의 대표적인 실험적 메뉴로 회자된다. 롯데리아 제공

이 가운데 정말 확실하고도 진정한 괴식으로 남은 제품을 꼽자면 라면버거와 마짬버거가 있다. 2015년 1월 6일 등장한 라면버거는 전국 통틀어 50만 개만 파는 한정판이었다. 라이스버거처럼 뭉친 라면 면발 두 장 사이에 닭고기 패티와 양상추, 라볶이맛의 매콤한 소스가 들어갔다.

한편 '마성의 짬뽕버거'를 줄인 '마짬버거'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짬뽕맛을 추구했으니, 라면버거처럼 면발로 만든 패티 사이에 오징어, 명태, 돼지고기를 섞은 패티를 끼워 넣었다. 두 버거가 각각 3, 4개월 만에 판매를 종료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환영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빵을 대신하는 라면의 조리 상태를 일관되게 유지하지 못한 게 패착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2024년 브랜드 리뉴얼

롯데리아는 코로나19 시국을 거치면서 주춤했다. 맘스터치에 매장 수 1위도 빼았겼으며 매출도 1조 원을 밑돌고 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올해 대대적인 리뉴얼 작업에 돌입했다. 새로운 로고를 도입하는 한편 제품명 또한 '리아'라는 접두어를 활용해 바꾸는 등(불고기 버거->리아 불고기) 브랜드 정체성을 새롭게 다듬는 데 주력하고 있는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러 사람이 빈번하게 오가는 패스트푸드점은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시기, 집단감염 온상지로 몸살을 앓았다. 2020년 8월, 서울역 인근 롯데리아에 임시 휴점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2024년 안산 상록수점 내란 모의 회동 사건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지난해 11월 17일 문상호 정보사령관과 정성욱 대령을 만나 계엄 계획을 알렸다. 이후 12월 1일과 3일에 2, 3차 회동이 이루어졌다. 그 장소가 바로 롯데리아 안산 상록수점이라 화제가 되었는데, 번잡한 음식점인 데다가 노상원의 거주지이자 점집에서 가까워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롯데리아는 반갑지 않은 이유로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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