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곧은 소리] 이재명의 29번째 탄핵은 정상인가? ‘단두대 정치’란 말까지 등장
전례 없는 방통위원장·중앙지검장·감사원장 탄핵에다 예산안도 야당 혼자 처리
(시사저널=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지금 대한민국에는 '4명의 대통령'이 있다. 국회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현직 대통령(윤석열)과 그 직무를 대행하다 탄핵당한 '대통령 권한대행'(한덕수)에 이어 바통을 물려받은 '대행의 대행'(최상목), 그리고 '여의도 대통령'으로 불리는 제1야당 대표(이재명)다. 마치 고대 로마의 과두 체제처럼 어색하고 불안정한 4인 공동 대통령 체제다. 이 가운데 가장 힘이 센 권력자는 단연 여의도 대통령인 이재명 대표가 아닐까? 그는 마음만 먹으면 윤석열-한덕수-최상목을 비롯해 누구든지 '탄핵의 칼'로 목을 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구가하고 있다. 항간에는 '제왕적 야당 대표의 단두대 정치'라는 험한 용어까지 나돈다. 2025년 새해 이재명의 권력은 어디까지 정당할까?
이재명의 권력은 2022년 3월 대선 이후 지금까지 크게 3개 터널을 거치며 크고 견고해졌다. 윤석열 정부 출범 전부터 폭풍처럼 밀어붙인 사실상의 대선 불복 투쟁과 대여 강공 드라이브가 첫 번째 터널이다. 2023년 4월 총선 공천 때 확실하게 구축한 친명계 일극 체제가 두 번째 터널이며, 지난해 가을부터 정부 고위직 인사를 무차별적으로 줄탄핵 해온 것이 세 번째 터널이다. 즉, 이재명 대표는 지난 2년7개월 동안 파상공세-총선 승리-탄핵 시리즈의 3대 터널을 통과하며 제왕적 당대표로 군림했고, 윤 대통령 최악의 자충수인 12·3 계엄 선포를 탄핵으로 수습한 이후엔 거리낄 게 없어졌다. 물론 윤 대통령의 불통-무능 통치가 원인을 제공했지만, 이제 이 대표가 국정의 주도권을 쥔 이상 그는 더 이상 '권력의 피해자'가 아니라 '권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제왕적 야당' 권력이 가해자 될 수 있어
이재명 대표가 권력의 정점에 있음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은 '한덕수 탄핵'이었다. 한 대행은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 즉, 쌍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아울러 헌법재판관 3명의 임명을 거부하는 등 '윤석열 아바타' 역할을 함으로써 야당의 공세를 피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한덕수 총리의 부인이 미대 출신의 역술 전문가로 김건희 여사와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었다는 박지원 의원의 폭로도 탄핵의 숨은 이유였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한덕수 탄핵을 서둘러 강행한 모습을 보면, '오만한 권력자'의 그림자가 보인다.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27일 기자회견에 이어 1월1일 무한공항 참사 현장을 방문했을 때도 "윤석열을 파면하고 옹위 세력을 뿌리 뽑아 내란 세력을 완전히 진압하는 데 역량을 총집결하자"는 내용의 메시지를 던졌다. 스스로 내란 진압군 총사령관임을 자처한 이 대표는 대국민 담화에서 '내란 수괴의 친위대' '내란의 준동' ' 반란 세력의 흉측한 망상' 등 강도 높은 표현을 총동원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 입장에서는 한덕수 탄핵이 불가피했다고 해도 윤 대통령이 탄핵된 지 2주밖에 지나지 않았고 국정이 사실상 마비된 상황에서 다분히 정략적이고 성급한 탄핵을 감행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 각국 외신들은 계엄의 위헌·위법성을 비판하면서도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탄핵한 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무책임성에 대해 혹평을 쏟아냈다. 국내 언론들도 '이재명 대표가 국정도 민생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사법 리스크 탈출과 조기 대선, 대권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한덕수 탄핵 직후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하자 일부 언론은 '민주당에 역풍, 국민의힘에 순풍'이라고까지 보도했다. 설상가상으로 민주당 일각에서 최상목 탄핵설까지 나오자 '공룡 야당의 탄핵 중독론'이 도마에 올랐다. 사실 민주당이 걱정해야 할 것은 최상목 대행의 탄핵이 아니라 그의 자진 사퇴다. 최 대행은 자신이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한 데 대해 내각과 용산 참모진이 사퇴 압박을 가하자 자진 사퇴 카드를 내비쳤다.
지금과 같은 국가 혼란, 비상 상황에서 최 대행마저 사퇴하거나 탄핵당하면 국제적인 대망신과 경제 및 민생의 악화는 물론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재난을 감당할 컨트롤타워마저 붕괴될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야권의 192석 거대 의석과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지렛대 삼아 대여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무리수를 두었다. 특히 29차례에 달하는 탄핵 공세 속에서 이루어진 3차례의 방송통신위원장 연속 탄핵, 그리고 감사원장 탄핵과 서울중앙지검장 탄핵 등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군사작전식 폭거라는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정부 예산안의 일방 처리와 국정원, 검찰 등 주요 기관의 특활비 전액 삭감은 '해도 해도 너무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덕수 대행은 탄핵 직후 "야당이 합리적 반론 대신 29번이나 탄핵으로 답한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해 안타깝다"고 뼈아픈 말을 남겼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자제하지 못하고 폭주하면 국가적 혼란이 온다"고 경고했고, 종교계 원로인 이영훈 순복음교회 담임목사는 "이미 정권을 잡은 듯 교만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이러한 경고를 귀담아들어야 민심의 역풍을 피할 수 있다.
'대법원 판결 전에 대선 치르겠다'는 조급함
이재명 대표가 갈수록 유아독존의 길로 빠져드는 듯한 이유는 세 가지라고 본다. 가장 큰 이유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대한 불안감이다. 자신의 공직선거법과 위증교사 재판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조급함이 자꾸 강압적 행보를 재촉하고 있다. 두 번째로 계엄 선포에 따른 민심과 명분의 우월적 확신이다.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라는 최악의 수를 둔 이상, 민주당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국민이 용납해 주리라는 확증편향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을지 모른다. 세 번째로 이 대표의 높은 차기 대권후보 지지율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는 30~40%대로 압도적 1위를 달리는 데 비해 홍준표, 오세훈, 안철수, 김동연 등 여야 주자들이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부지불식간 이 대표의 자신감과 자만심이 뒤섞여 분출된 것은 아닐까? 신년 국회에서 이른바 쌍특검법이 통과되고 명태균 게이트의 뚜껑이 열리면 '이재명 대세론'은 더욱 확산될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이 대표는 '승자의 저주'를 유념해야 한다. 로버트 그린은 《권력의 법칙》에서 "권력에는 리듬과 패턴이 있다. 성공에 도취된 승자는 자칫 자만에 빠지고 감정이 치우치기 때문에 스스로 강한 자기 절제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고 보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못지않게 제왕적 야당 대표의 폐해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헌법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과도한 권한을 줄여야 한다면, 당헌·당규 개정을 통해 야당 대표의 과도한 권한도 줄여야 한다는 논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탄핵 남발 같은 과잉권력 말이다. 대통령이든 야당 대표든 권력이 넘치면 자신과 국민 모두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권력은 확실히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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