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 안보’ 위해 선택되고 폐기된 한류

한겨레 2025. 1. 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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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CULTURE & BIZ
한국 영화 <오! 문희>가 6년 만에 중국에서 상영되면서 2016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암묵적으로 취해진 중국의 한류 제한령(한한령)이 풀릴지 주목된다. <오! 문희> 포스터. 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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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넘게 유지된 한류 제한령(한한령)이 해제될 수 있을까. 2024년 11월 중국이 한국을 무비자 대상국으로 지정하고, 한중 문화·관광 장관이 콘텐츠 교류 방안을 논의하는 등 화해 흐름이 펼쳐지면서 한한령 해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중국이 외국인 관광객 유치로 경기 활성화를 모색하고, 트럼프 2기 시대 우방 확보를 위해 내린 조치들이다. 이유야 어떻든 한중 관계가 개선되면 한한령의 벽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2016년 7월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발해 한한령을 시작했다. 한한령은 중국 내에서 한국 기업이 제작한 콘텐츠나 한국 연예인이 출연하는 광고 등의 송출을 금지하는 것이다. 한한령이 발효되면서 중국에서의 한류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한중 합작 드라마의 한국 주인공 배우가 갑작스럽게 중국 배우로 교체되기도 했고, 한국 드라마 대부분이 방송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현재까지도 한국 대중 가수들의 대규모 공연은 재개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과거 한류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은 일본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가 되자 중국 시장이 성장하면서 한류 최대 시장이 중국으로 변모됐다. 중국은 저작권법이 부실해 수익성이 높지 않았지만, 시장이 워낙 커서 잠재력이 컸다. 중국 현지에서의 반응도 뜨거워 중국 시장을 빼놓고 한류산업을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오히려 지나치게 중국 시장만 바라보며 사업을 펼치는 것은 위험하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였다.

중국이 ‘한한령’ 택했던 이유

특히 한한령 직전인 2014~2016년경엔 중국 자본의 한국 문화산업 투자도 크게 늘어났었다.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크게 성장하면서 한국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한국 역시 중국 기업과의 합작 등에 적극 나섰다. 중국에서 외국 기업이 독자적으로 진출해 수익을 얻는 것은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의 유명 드라마작가, 피디(PD), 제작자, 스태프, 배우들을 좋은 조건으로 유치해 중국 문화산업에 그들의 능력을 이식시키는 작업을 활발히 진행했다. 이런 현상이 너무 급진적으로 이뤄져 한국 문화산업에 차이나머니가 쏟아지는 부작용을 걱정하는 보도가 쏟아질 정도였다.

이렇게 한국 문화산업에 관심이 많았던 중국이 한한령이라는 문화적 제재를 선택한 것은 여러 고려 사항을 반영한 결과였다. 일단 문화산업 영역은 국제무역에서 예외 조항으로 인정되는 분야라 분쟁의 소지가 적다는 점이 컸다. 문화산업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서도 개방되지 않고 남아 있는 분야다. 우리가 과거 미국의 스크린쿼터 축소 요청 때 주장했듯이 문화산업 시장은 자국이 보호할 수 있는 예외적 영역이다. 정부가 어느 정도 문을 열고 닫을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 입장에서는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해야 할 부담이 없으면서도 한국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분야를 찾은 것이었다.

만약 다른 분야를 타깃으로 삼았다면 자칫 중국 산업에 대한 피해로 전이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한국과 중국은 국제분업으로 긴밀하게 엮여 있어 섣불리 제재를 가할 경우 양국 산업이 모두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한국이 보복 제재라도 가한다면 중국의 피해도 커진다. 국제 무역 체제에서 자국의 경제적 피해를 우회해 제재만 가할 수 있는 분야는 많지 않다. 반면 문화산업에 대해 제재를 가할 경우 중국의 경제적 피해는 그리 크지 않지만 한류를 대표 상품으로 내세웠던 한국에는 깊은 타격을 줄 수 있다. 중국은 이러한 모든 점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2016년 7월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발해 한한령을 시작했다. 2018년 7월 한 시민이 사드 기지가 세워진 경북 성주군의 한 마을에서 사드 반대 펼침막을 들고 있다. REUTERS

더 근본적으로는 중국의 대외 문화 정책의 연장선에서 ‘한류’가 선택됐다가 폐기된 것이 한한령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류는 다양한 매력으로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중국 시장에서 널리 확산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문화 안보’라는 관점에서 한류를 선택하고, 수용을 허용했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중국 정부가 문화 안보 차원에서 서구 문화 확산을 방어하는 ‘백신’으로서 한류를 바라보았다는 이야기다.

중국에서 ‘문화 안보’라는 개념이 중요해진 것은 1992년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부터다. 개혁개방이 추진되면서 중국 인민은 경제적 성장과 사회·문화적 변화도 함께 경험했고, 이 과정에서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미국 중심의 서구 대중문화도 중국 내에 급격히 확산됐다. 서구 문화는 중국 사회를 지탱해온 사회주의 문화와 전통 윤리의 영향력을 떨어뜨릴 수 있어 중국 정부에는 편치 않은 존재였다.

OTT 영향력 증가로 한한령 피해는 축소

서구 문화의 침투를 우려한 중국 정부는 2001년 WTO 가입을 전후해 ‘문화 안보’라는 개념을 수립했다. ‘유교 전통문화의 부활과 문화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통한 문화 정체성의 확립’이라는 전략 아래 중국식 사회주의 문화를 지켜나가고자 한 것이다. 이때 중국 내 폭넓게 확산되던 미국 문화를 대체할 새로운 대중문화가 필요했는데, 이때 선택된 것이 한류였다.

새로운 대체 문화로 한류가 선택된 것은 자연스러웠다. 1992년 한중 수교를 맺으면서 양국 관계는 빠르게 개선됐다. 게다가 한류는 아시아 국가에서 나타나는 가치 갈등의 문제, 즉 산업화의 부작용과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부각되는 동양적 가치관과 같은 것들을 잘 다뤘다. 중국 정부도, 시청자도 그런 한류를 편하게 받아들였다. 중국에서 처음 성공한 한류 드라마가 시기적으로 먼저 진출한 <질투>나 <여명의 눈동자>가 아니라 <사랑이 뭐길래>였다는 것이 이런 배경을 잘 보여준다.

중국은 한국 대중문화가 자국의 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할 것도 기대했다. 중국 문화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한류를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한한령 직전인 2010년대 중반 중국 자본이 한국 대중문화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여러 한국 인력을 유치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류의 인기가 높아지고 중국 내 영향력도 커지면서 중국 정부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허용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때마침 ‘사드 배치’라는 정치적 사건이 터지자 한한령으로 맞서게 됐다는 것이 많은 중국 전문가의 분석이다. 한류가 중국 문화산업 발전에 도움을 주는 선까지는 허용됐지만, 중국 문화산업을 침범한다고 판단되자 금지됐다는 이야기다.

한한령이 발효되면서 한국 기업들은 많은 문제에 직면했지만 점차 대체 시장을 찾아갔다. 케이(K)-팝의 경우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의 아이돌 그룹이 유튜브를 활용하면서 미주, 유럽 등으로 시장 기반은 더 넓어졌다. K-드라마는 한한령 발효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이 커지면서 시장 축소 영향을 줄여나갈 수 있었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과 같은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던 시기여서 중국 시장 봉쇄의 위기를 넘어 시장 확대가 이뤄진 것이다. 오히려 지나치게 중국 중심으로만 사업 전략을 짜던 관행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관광업계나 화장품, 중국 내 유통산업의 피해는 컸지만 한한령의 타깃이었던 대중문화의 피해는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됐다.

반면 중국 내에서는 ‘비공식적인’ 한류의 유입이 늘어났다. 중국에서는 현재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가 허용되지 않는다. 중국 내 방송이나 현지 OTT에서는 공식적으로 한국 드라마, 영화 등이 방영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중국 내 한류팬들은 우회적인 방법으로 한국 드라마를 즐기고 있다. 일례로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자 중국 안에서도 달고나 열풍이 불기도 했다.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넷플릭스를 즐기거나 불법 한국 드라마 유통 사이트에서 드라마를 봤기 때문이다.

예상 밖의 한한령 효과, ‘반중 정서’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정적 영향도 있었다. 한국인의 반중 정서가 매우 높아진 것이다. 각종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반중 정서는 한한령 이후 눈에 띄게 높아졌다. 한국 드라마에 중국 기업의 간접광고(PPL)가 발견되면 “중국 자본이 한국 연예계를 침투하려 한다”는 부정적 여론이 바로 생겨나는 것도 그 여파 가운데 하나다.

역사, 문화 문제에 대해 두 나라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일도 늘어났다. 한국의 전통문화나 음식, 한복을 두고 “한국인이 중국 전통문화를 자기 것이라 주장한다”는 애국주의 중국 누리꾼, 즉 ‘샤오펀훙’(小紛紅)이 늘어난 것도 한한령 이후다. 시진핑 시대의 영향이기도 하나, 두 나라 대중의 국민감정이 나빠지면서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중국인에 대한 묘사는 거칠어졌고, 중국인은 다시 이를 비난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휴대폰이나 전자제품 수출을 제재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그것이 문화의 힘이고, 그래서 세계무역규범에서도 문화는 신중히 다루도록 예외를 적용한다.

우리도 돌아보면 일본 대중문화를 공식적으로 개방한 이후 한일 관계가 긍정적으로 개선된 경험이 있다. 우려와 달리 일본 문화의 부정적 영향은 적었다. 실제로 한한령을 해제해도 한국 기업들이 이전만큼 높은 중국 특수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강하다. 중국의 문화산업이 그동안 크게 성장했고, 이미 문을 한번 닫아보았던 중국은 처음 문을 열었던 때와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일방적인 관계는 없다. 서로 문화를 나눌 수 있어야 서로의 시장도 커지고, 오해도 풀릴 수 있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yzkim@koreaexi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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