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으면 인연도 끊긴다
내가 참여하는 한 취미 모임이 있다. 그 모임에서 많은 역할을 하는 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다. 단순히 모임에 나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단체 카톡방에서도 나갔다. 신년에 같이하기로 하고 예약까지 한 여행도 가지 못한다며 취소했다. 이는 무슨 일이 있는 것이다. 혹시 모임 멤버와 싸우고 틀어져서 나간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최근 사업이 굉장히 안 좋아져서 자금 흐름이 좋지 않고 모임에 나올 정신적 여유, 금전적 여유가 없단다. 단기적인 어려움은 아닐 것이다. 단기적 문제라면 모임 단체 카톡방에서 나갈 것까지는 없다. 단체 카톡방에서 나갔다는 건 사업의 어려움이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다.
안타깝다. 좋으신 분인데 돈 문제 때문에 취미 활동을 멀리하고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끊었으니 말이다. 그동안 챙겼던 주변 사람들을 더는 챙기지 못하고, 그동안 쌓아온 좋은 이미지마저 상처를 받을 것이다. 돈 문제는 단순히 돈이 없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남녀가 돈 떨어지면 헤어지는 이유
일본 유명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돈 떨어지는 날이 인연 끊어지는 날'이라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남자가 돈이 떨어지면 여자한테 버림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남자가 돈이 떨어지면 의기소침해지고 웃는 소리에도 힘이 없어지고, 괜히 비뚤어지거나 한다. 그래서 끝내는 여자와 헤어지게 된다."
여자는 돈 때문에 이 남자와 같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자기를 좋아해주고 아껴줬기 때문에 같이 있었다. 하지만 남자가 돈이 떨어진 다음부터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전처럼 잘 대해주지 않고 신경질을 부리면서 함부로 대하기 때문에 결국 떠난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가 떠난 이유가 자신의 행태 때문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있을 때는 여자가 옆에 있더니 돈이 떨어지니까 떠났다. 하긴 남자는 돈 때문에 여자가 떠났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돈이 없어서 여자가 떠났다고 하면 헤어짐의 원인은 여자가 된다. 진정한 사랑을 모르고 돈만 밝히는 여자 때문에 관계가 끊긴다. 하지만 자기가 학대해서 여자가 떠났다고 하면 문제는 자신에게 있다. 내가 나쁜 놈이라서 관계가 끝났다는 결론밖에 안 나온다. 자기 마음의 행복을 위해서는 불행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해야 편하다. 그러니 관계가 끝난 이유는 어디까지나 돈 때문이라고 본다. 돈이 계속 있었다면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남자의 생각도 맞다. 돈이 있을 때 이 남자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여자를 위하고 아끼는 보통 남자였다. 하지만 돈이 떨어지면서 이 남자는 변했다. 자신감이 없고 위축된다. 자신감이 없으니 다른 사람의 별거 아닌 말이나 행동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틀어진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와는 관계없이 자기 마음가짐, 행동이 일정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보통 사람은 그렇지 않다. 돈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 돈이 있을 때 더 여유 있는 마음가짐이 되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도 원활하다. 돈이 없으면 여유가 사라지고 다른 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좀 더 부정적으로 변한다.
돈에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렇게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달라진다면 이런 가설이 성립하지 않을까.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는 돈을 버는 것이다."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마음먹었다고 하자.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화내지 않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격 수양을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마음가짐과 행동을 살펴보고 점검하는 삶의 자세를 추구할 수도 있다. 또 명상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인격 수양 방법 중 하나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있지 않을까. 돈이 없으면 삶에 쉽게 민감해지고 걱정이 많아지며 다른 이들을 배려하기 힘들다. 하지만 돈에 여유가 있으면 타인을 생각할 수 있고 마음이 좀 더 부드러워지기도 한다. 돈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과 태도를 바꾼다면 돈을 버는 건 자기 수양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구김살 없는 부잣집 아이들
영화 '기생충'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부자들은) 순진하고 사람을 잘 믿고 꼬인 데가 없어." 순진하고 사람을 잘 믿으며 꼬인 데가 없는 이는 좋은 사람이다. 타인에게 당하기 쉽다는 단점이 있지만, 어쨌든 절대적 기준으로 좋은 사람인 건 분명하다. 이런 사람이 되고자 산속에 들어가 정신수양을 하거나 종교 단체에 들어가 엄격한 수련을 할 필요는 없다. 그냥 부자가 되면 된다. 부자가 되면 타인을 잘 믿고 꼬인 데가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드라마 '아저씨'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잘사는 사람은 좋은 사람 되기 쉬워." 잘사는 사람은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기에 좋은 사람이 되기도 쉽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잘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만 좋은 사람이 되는 데 돈이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아이들을 좀 더 좋은 아이로 키우는 데도 돈이 도움이 된다. 영화 '기생충'에서 또 다른 유명한 대사 중 하나로 배우 송강호가 한 말이 있다. "부잣집 애들은 구김살이 없어. 돈이 다리미야. 돈이 구김살을 쫙 펴준다니까."
자기 아이를 구김살 없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매일매일 아이를 붙잡고 정신교육을 시키면 될까. 심리상담사를 옆에 붙여 계속해서 심리상담을 하면 구김살 없는 아이가 될까. 친구들과 잘 지내도록 옆에서 계속 독려하면 될까. 그런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확률 높은 방법이 있다. 부자가 되면 된다. 부자가 돼서 내 아이가 부잣집 아이가 되면 된다. 그러면 구김살 없는 아이로 자랄 가능성이 크다. 내가 돈을 버는 건 아이가 구김살 없이 자랄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주는 가장 좋은 교육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돈이 많다고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되거나, 자식이 구김살 없이 자라는 건 아니다. 이건 확률 문제다. 명문대학을 나오면 삶이 좀 더 나아진다고 하지만, 명문대학을 나왔다고 누구나 다 삶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 명문대학을 나오고도 못사는 사람, 평범한 대학을 나온 이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다. 다만 명문대학을 나오면 보통 대학을 나온 사람보다 더 나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 클 뿐이다. 그 조금의 확률을 높이고자 학생들은 매일매일 공부하면서 명문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확률이 조금 높은 방법이 있다면 이건 충분히 노력하고 추구할 수 있는 길이다.
마찬가지로 돈이 충분하다고 항상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아이가 항상 구김살 없이 자라는 것도 아니다. 돈이 많아지면서 더 인색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부잣집에서 자란 아이가 구김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버릇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가 될 수도 있다. 돈에 여유가 있을 때 좀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100%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확률을 조금 높여주는 건 사실이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부자가 돼라
돈에 쪼들릴 때보다 돈에 여유가 있을 때 다른 사람을 돌아볼 확률이 좀 더 높다.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확률이 좀 더 높다. 아이들이 구김살 없이 자랄 확률이 좀 더 높다. 좀 더 높은 확률, 이거면 우리가 노력하면서 추구할 이유로 충분하다. 돈을 더 벌고자 하는 게 단순히 욕심이 많아서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마음먹었을 때 시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돈을 버는 건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유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돈 벌기는 인격 수양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최성락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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