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시간표 너머, 쓰는 자의 을사년 달력 [.txt]

임인택 기자 2025. 1. 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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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rgb(0, 184, 177);">2025년 기대작―문학</span>
한강·황석영·이금이 등 새 소설
시집 ‘진달래꽃’ 100주년 빛내는
박준·나희덕·안도현 등 새 시집
새 작품으로 2025년을 준비하는 주요 작가들. 왼쪽 윗줄부터 신경림(1936~2024), 이금이, 지난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던 황석영, 박준,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정지아, 김숨, 나희덕, 무라카미 하루키, 황정은, 폴 오스터(1947~2024). 각 출판사·한겨레 자료사진

100년 전, 1925년의 기대작을 언론에서 꼽는다면 단연코 들어갈 한 작품이 있었겠다. 한해를 꽉 채운 뒤인 그해 성탄절 이튿날 출간된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이다. 시집 대중화의 물꼬를 텄다. 같은 해 한용운은 ‘님의 침묵’을 탈고했다. 출간은 이듬해였다. 김동인의 ‘감자’, 전영택의 ‘화수분’ 등 소설들 없지 않으나 1925년은 아무렴 대중의 시, 민중의 시가 일획을 그은 해다.

‘전설’만 남은 건 아니다. 근년 시집을 사보는 10~30대의 비율이 높아져 왔고, 2024년 군소 출판사의 시집이 여럿 또 호응을 얻었다. 2025년도 시집이 나온다. 시인 신경림(1936~2024)의 타계 1주기를 기한 유고시집, 지난 10년 동안 시집 최다 판매기록(‘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을 지닌 박준, 반세기 서정시의 표상 정호승의 새 시집이 창비에서 나온다. 안도현, 나희덕, 문태준(문학동네), 남진우, 이문재, 허연(이상 문학과지성사)의 시도 만나볼 수 있다. 타이피스트, 봄날의책, 아침달의 시집 시리즈도 멈추지 않는다. 도서출판b에선 최근 7년여 걸쳐 쓴 시 1398편을 1천쪽 넘게 구성한 김정환의 시집 ‘죽은 것과 산 것’이 나온다. 일상, 신화, 철학이 망라된다.

소설 기대작 첫손엔 한강의 신작(문학동네)이 꼽힌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첫 작품이다. 단편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2015), ‘작별’(2018)에 이은 ‘눈’ 또는 ‘겨울 3부작’의 완결로, 세 작품이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처럼 엮일 예정이다. 당초 세번째 꼭지로 구상했던 ‘작별하지 않는다’가 장편이 되면서 새 작품이 예고되어온 상태였다. 지난 30년 한강은 시린 ‘겨울의 언어’로 죽음과 소멸, 이별, 슬픔, 폭력, 존엄과 사랑을 투사해왔다. 다만 ‘기후’는 서서히 바뀌어온바, 2023년 11월 “이젠 봄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말(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 간담회 때)과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라는 최근치 말(노벨상 연설)로 신작의 ‘온도’를 가늠해볼 만하다. 54살 동갑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튀르키예의 오르한 파묵(72)은 수상 이후 완성된 소설 ‘순수 박물관’을 자신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한강의 새 책 출간월은 미정이다. 이르면 상반기가 될 듯하다. 4월께엔 2024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던 황석영의 신작도 예상된다. ‘철도원 삼대’ 이후 5년 만의 장편(가제 ‘할매’)으로, 창비는 한겨레에 “간척지에 우뚝 솟아 미군기지의 확장을 막아내고 있는 600살 팽나무를 통해, 한반도 역사의 질곡과 평화의 메시지를 펼쳐낸다”고 설명한다.

이밖에 김애란의 5번째 소설집, 김혜진의 장편(이상 문학동네), 윤성희의 7번째 소설집, 손보미의 경장편, 공선옥의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1993)의 후속 장편(이상 창비), 강화길의 2번째 장편(은행나무)이 상반기를, 편혜영의 첫 짧은소설집, 정이현의 ‘상냥한 폭력의 시대’ 이후 9년 만의 소설집, 김멜라의 장편(이상 문학동네),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큰 인기를 끌었던 정지아의 새 소설집(창비), 청소년 소설을 넘어 한국 고유의 청·장년 소설로 국제적 입지를 다져 온 이금이의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와 ‘알로하, 나의 엄마들’에 이은 ‘디아스포라 3부작’ 완결편(사계절), 문지혁의 ‘한국어 시리즈’ 완결편(민음사), 이서수의 장편(은행나무) 등이 하반기를 준비한다.

지난해 예고됐던 황정은의 새 장편은 해를 넘겨 올해를 재기약하고 있다. 그의 마지막 장편은 2014년치 ‘계속해보겠습니다’이다. 그외 백수린과 이인성의 소설집 등이 문학과지성사의 주요 라인업이다.

작품은 비평을 발 딛고 독자로의 강을 건넌다. 문학과지성사가 내놓는 비평선집이 증거해줄 것이다. ‘동시대 문학사’(가제)로 10월 출간을 목표로 하는 출판사는 한겨레에 “1910년에서 2020년대까지 100년이 넘는 한국의 근현대문학사를 돌아보며, 주요 키워드(나, 젠더, 사랑, 폭력 등) 중심으로 때로 논쟁을 촉발시킬 수 있는 질문을 포함한 비평문들을 통해 시대와 담론을 횡단하고 분절하는, 다층적인 문학사, 작은 계보학의 문학사를 재구성하려 한다”고 말한다. 2025년 문지 창사 50주년(12월12일)이 계기다.

제30회를 맞는 한겨레문학상을 기념해, 수상작가인 심윤경, 박민규, 윤고은, 최진영, 장강명, 이혁진, 강화길, 박서련 등 역대 수상작가가 7월 앤솔러지를 발간할 참이다. 즈음 30회 수상자의 신간 장편도 나오겠다.

이상문학상은 문학사상에서 지난해 운영권을 인수한 다산북스의 첫 수상 작품집(제48회)으로 이르면 3월 선보인다. 위즈덤하우스는 2023년 3월 시작, 단편 단행본을 정형화한 ‘위픽 시리즈’를 100호로 완간한다. 2016년 이래 올해 20번째 작품을 펴낸 ‘이음 희곡선’도 이양구의 ‘당선자 없음’(2023년 대산문학상 수상), 김풍년의 ‘초상집 개에 관한 연구’ 등을 지속해 출간하며 ‘읽는 연극’의 맛을 문학판에 보태나갈 것이다. 작가정신은 시리즈 ‘소설, 향’ 27주년을 기념해 ‘작가정신, 테마소설집’(가제)을 6월께 내놓는다. 김사과, 김희선, 김화진 등이 참여한다.

국제문학상 수상작의 국내 출간 시차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 특히 부커상은 최종후보작까지 빠르게 수입된다. 2024년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 ‘카이로스’가 국내 소개(한길사)된 게 지난 11월이다. 국제문학상 중 대중성과 상업성에 가장 부합한 탓이리라. 24년 부커상 수상작 ‘오비탈’은 5월께 서해문집서 예고되어 있다. 24년 상반기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바리 산행’은 올 2월 국내 소개(은행나무)된다. 6명의 우주비행사가 24시간 동안 우주정거장에서 경험하는 16번의 일출과 일몰, 더불어 드러나는 욕망에 기후위기 소재까지 더한 ‘오비탈’, 평이한 직장인이 괴짜 동료와 함께 일반 등산로 대신 새 길을 개척 등반하는 산악모임을 통해 제 삶도 반추한다는 ‘바리 산행’ 등은 국내 소설로 닿지 못한 서사의 지평선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국내 단 세 권으로 대세가 되어버린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새 장편(‘너무 늦은 시간’)도 올봄 다산북스의 몫이다. “한 남자의 상실과 후회를 통해 이기심이 어떻게 행복의 가능성을 부수는지 탐사”한다고 출판사는 소개한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흑인 노예 제임스 관점으로 비틀어 2024년 전미도서상 수상과 부커상 최종후보라는 성적을 거둔 퍼시벌 에버렛의 ‘제임스’, 일본 무라카미 하루키의 재즈 에세이 ‘데이비드 스턴 마틴의 멋진 세계’, 살만 루슈디의 작품 단상, 여타 작가론과 예술론을 볼 수 있는 에세이(이상 문학동네)도 을사년 하반기 위시리스트에 담아둘 만하다. 미국 작가 폴 오스터(1947~2024)가 타계 직전까지 썼던 작품 ‘바움 가트너’(열린책들), 밀란 쿤데라의 오래된 유작 ‘여든아홉 개의 말’(민음사)도 2025년을 기다리고 있다. 고 박완서(1931~2011)의 미수록 원고 5편을 포함, 강릉, 만주, 백두산, 티베트 등지 기행기를 망라한 여행 산문집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도 그의 기일을 맞아 이달 곧 출간(문학동네)된다. 떠난 작가들의 올해 작품을 떠난 박완서의 떠나는 이야기로 여는 셈이다.

노벨상이 작가의 시간표는 아니다. 작가는 쓸 뿐이다. 2024년 문학사상 주관 마지막 이상문학상에 이어 김승옥문학상을 받으며 중년 작가의 재림을 알려온 조경란의 9번째 소설집(문학동네)도 올해 나온다. 김숨은 1월 연작소설 ‘무지개 눈’(민음사)부터 첫 산문집(마음산책), 11월께 신작 장편(은행나무)까지, 쓰는 여정에서 독자와 만날 것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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