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한센병 편견은 무지가 키워…약 1~2회 먹으면 균 사라져”

김홍준 2025. 1. 4.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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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소외와 편견을 넘어
김종필 한센복지협회 연구원장은 “한센병에 대한 오랜 편견이 환우들에겐 가장 큰 고통”이라고 말했다. 김홍준 기자
“설마 여기 오지는 않겠지. 경찰도 그렇게 판단했을 겁니다.”

1996년 7월 22일 밤. 경기도 안양시 서울소년분류심사원에서 원생 128명이 탈주했다. 경찰은 심사원 뒤편 모락산을 대대적으로 수색했다. 한 곳만 빼고. 이 산이 뻗어 있는 의왕쪽 중턱의 한국한센복지협회 건물이었다. 김종필(68) 한국한센복지협회 연구원장은 “한센병에 대한 편견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말 그대로 ‘웃픈’ 현실이었다. 문둥병 또는 나병으로 불리기도 했던 한센병. 오는 26일은 세계 한센병의 날. 세계보건기구(WHO)가 세계 각국의 경각심 고취를 위해 매년 1월 마지막 일요일로 정했다.

김 원장은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 병원을 겸하는 한센복지협회에서 근무하는 대부분의 의료진도 마찬가지였다. 물리치료사는 남성의 손을 만지고 있었고 간호사는 휠체어에 앉은 노인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기자가 마스크가 잘 걸려 있는지 연신 손으로 확인하자 김 원장은 “괜찮습니다”라며 미소로 답했다.

Q : 완치가 가능한 병이라고 하던데요.
A : “균으로 옮는 감염병이 맞긴 합니다. 20세기 초부터 치료약이 꾸준히 개발됐고 이젠 리팜피신 등을 1~2회만 복용해도 나균이 사라지죠. 감염률 자체도 낮고요. 오히려 안 걸린 사람이 더 위험하다고 볼 수 있어요. 나균을 가졌는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 여기 환자들은 나균이 없는 깨끗한 사람들입니다. 종합병원도 착용 의무화가 해지된 마당에 본인이 감기에 걸리지 않으면 구태여 마스크를 쓰지 않습니다. 의료진도 똑같고요.”

Q : 환자라면 증상이 있는 것 아닙니까.
A : “후유증 치료를 받는 분들입니다. 과거엔 진단과 증상 치료가 저희의 주된 역할이었다면 이젠 후유증 치료가 숙제입니다.”
경기도 의왕시 한국한센복지협회 치료실에서 나이 든 한센병 환우가 진료를 받고 있다.
실제로 국내 한센병 신규 환자는 수년째 한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도 지난해 5명 전원을 포함해 대부분 이주민 혹은 외국인이다. 이미 나균 감염 치료를 받은 뒤 후유증 치료에 집중하는 이들은 굳이 ‘환자’로 부르지는 않는다. 대신 ‘한센병 사업대상자’로 일컫는다. 1980년 2만8000명에 근접했던 사업대상자는 현재 7200여 명. 신규 환자는 대폭 줄고 사업대상자도 고령화로 자연 감소하는 추세다.

Q : 아까 만난 분은 눈이 충혈돼 있더라고요.
A : “한센병은 초기에 치료를 못 받으면 얼굴이나 손발에 변형이 올 수 있습니다. 말초신경 기능이 떨어져 화상이나 동상에 걸리기 쉽고요. 눈도 잘 못 감게 됩니다. 그러면 누구나 눈이 빨갛게 되기 쉽죠.”
‘누구나.’ 김 원장의 이 말에는 한센병 치료 대상자들을 ‘보통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한센병 치료를 받는 이들이 가장 괴로워하는 ‘편견’에서 벗어나게 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1962년 한센인 부부가 아이를 가졌다. 이들이 지내던 요양소는 유산을 종용했다. 남편에겐 단종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미 일본은 1916년 조선총독부령으로 ‘도립 소록도 자혜의원’을 설치하고 한센인을 격리 수용한 뒤 낙태·단종을 강요했다. 한센인 후손들은 정착촌에 갇혀 살다시피 했다. 그러던 중 한센인권변호단의 노력으로 2006년 일본이 한센보상법을 개정하며 590명의 한국 한센인이 1인당 1억원씩 보상을 받게 됐다. 2017년 대법원도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라는 판결을 냈다. 김 원장은 “한센인에 대한 오랜 인권침해 이면에는 한센병을 유전이 되고 완치할 수 없는 질환으로 잘못 알고 있는 무지와 그에 따른 편견이 짙게 도사리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Q : 가슴 아픈 일도 있을 텐데요.
A : “왜곡된 시각이 한센병을 키웁니다. 환자로 노출이 되면 일도 못 하고 교육도 제대로 못 받으니 치료를 안 받으려고 해요. 그래서 후유증이 더 커지는 거죠. 얼마 전에 병이 뒤늦게 발현된 70대 할아버지 한 분이 유난히 우울해 보이셨어요. 며느리가 손자를 못 보게 한다는 겁니다. 감염될까 그랬다는 겁니다. 답답하죠.”
김 원장은 “환우들은 육체적 아픔보다 ‘친구와 만날 수 있을까. 삶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더 고통스러워한다”며 “최근엔 고령화(평균 80세)로 노인성 질환이 늘면서 돌봐드릴 게 더 많아졌다”고 걱정했다. “앞서 말씀하신 탈주 소년원생들은 어떻게 됐나요.” 기자는 어느새 마스크를 벗고 물어봤다. 김 원장은 “무섭지만 살려달라며 결국 이 건물로 찾아왔다고 합디다”라며 다시 ‘웃픈’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도 “환우들이 속상하지 않게, 그저 보통 사람으로 봐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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