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따블’내더라도 사고싶다, 절박함 파고드는 암표

2025. 1. 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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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암표의 경제학
좋아하는 배우가 주연을 맡는 뮤지컬 공연. 인터넷에서 입장권 예매가 시작되는 바로 그날, 그 시각에 정확하게 맞춰 웹페이지를 열고 빠르게 마우스를 클릭 클릭. 공연날짜와 회차. S석. 2매. 이제 눈 앞에 떠 있는 공연장 좌석표에서 제일 좋아 보이는 자리를 골라 클릭만 하면 되는데, 화면에 나타나는 메시지.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이선좌).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영화관이나 공연장 앞에 가면 암표상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었다. 21세기에 들어선 뒤에도 야구장처럼 큰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는 경기장 주변에서 암표상들이 종종 발견되곤 하는데, 요즘은 인터넷을 통한 암표 거래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유명 가수의 공연표, 명절 기차표 등의 상품들은 인터넷에서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몇 분 만에, 심할 때는 몇 초만에 매진되는 경우가 많은데, 실수요자 자체가 무척 많기도 하지만, 전문적인 암표상들이 매크로라고 불리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남들보다 먼저 대량으로 표를 구매한 다음, 온라인 중고시장에서 웃돈을 받고 파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다. 그러다 보니 일반 구매자들은 예매를 하려다가 ‘이선좌’만 여러 번 보고 결국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너무 많은 구매요청이 동시에 몰리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암표 판매는 분명히 불법이다. 경범죄 처벌법 제3조에 명시되어 있다. 다만 현행법이 경기장이나 기차역 등 물리적인 공간을 열거하고 있어서,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암표 판매 행위의 처벌 근거는 다소 부족하다. 그리고 사실 개인이 정말로 공연을 보려고 표를 샀다가 자기가 가지 못할 사정이 되어서 중고장터에 내다 파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온라인 암표상을 딱 집어 골라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렇게 적발과 처벌이 어렵기는 하지만, 분명히 불법인데, 이 암표 판매 행위는 왜 오랫동안 근절되지 못하고 있을까.

매크로 활용 암표 거래, 사회문제 대두
록밴드 콜드플레이는 올해 6회 내한공연을 펼치는데 가장 비싼 입장권이 108만원에 달한다. [사진 라이브네이션]
경제학자들은 이럴 때 시장에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우선 가격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공연표가 몇 초만에 동난다는 것은 정해진 공급량에 비해 수요량이 너무 많다는, 초과수요가 크다는 신호다. 바꿔 말하면 가격이 시장을 균형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에 비해 너무 낮다는 얘기다. 따라서 암표상이 끼어들어 싼값에 표를 사서 더 비싸게 팔아 차익을 남길 여지가 충분히 생긴 것이다. 많은 경우에 암표 문제는 가격을 높이거나 공급량을 늘려서 초과수요를 없애면 해결된다. 실제로 영화관에서는 수요가 많은 영화를 더 오래 상영하거나 더 큰 상영관으로 옮기고, 가수들은 준비했던 입장권이 매진되면 투어 기간을 연장하거나 앵콜 공연을 기획해서 공급량을 늘린다. 2025년 4월 내한하는 록밴드 콜드플레이는 6회에 걸쳐 공연을 하는데 가장 비싼 입장권 가격이 무려 108만원이다.

그런데 가격을 일률적으로 높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같은 상품에 대해 사람들이 지불할 용의가 있는 가격에 차이가 큰 경우에는, 시장가격이 충분히 높고 초과수요가 없어도 여전히 암표상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생긴다. 예를 들어 어떤 공연을 제일 보고 싶은 사람이 10만원까지 낼 용의가 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8만원, 또 다른 사람은 3만원만 내려고 한다고 하자. 공연표를 파는 쪽에서 관객수를 최대로 늘리기 위해 한 장에 3만원을 받기로 했다면, 10만원까지 낼 용의가 있었던 사람은 7만원만큼 이득을 본 셈이다. 이렇게 최대로 낼 용의가 있는 금액과 실제 거래가격의 격차를 경제학에서는 소비자 잉여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소비자 잉여가 존재하는 영역에서는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에서 협상, 즉 흥정이 가능하다. “따불!”, “따따불!”이 생겨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더 절박하게 택시를 잡고 싶은 사람이 본인의 소비자 잉여 일부를 포기하면서 서비스 구매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이러한 흥정 과정에 구조적으로 개입하는 제3자를 우리는 암표상이라고 부른다. 소비자 잉여는 큰데 생산자가 상품을 단일가격으로 판매한다면, 암표상들이 모여들어 이 간극을 메운다. 표를 사놓고 기다렸다가 “따따불”을 주고라도 꼭 표를 구하고 싶은 사람을 찾아내 되팔면 쉽게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지난해 첫 연극에 도전한 조승우를 주연으로 내세운 ‘햄릿’은 한 달분 입장권 전석이 10분 만에 매진됐다. [사진 예술의전당]
생산자는 억울하다. 자기는 수요를 충족시키는 균형가격에 물건을 내놨을 뿐인데, 눈앞에 뻔히 보이는 추가 이익을 암표상들이 빼앗아 간다. 가만, 꼭 가격을 하나로만 정해야 하나? 돈을 더 내겠다는 사람에게 생산자가 직접 돈을 더 받으면 안되나? 여기서 ‘가격차별’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온다.

관건이 되는 것은 소비자가 각자 낼 용의가 있는 가격이 얼마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만약 모든 사람에 대해서 지불용의 가격을 알 수만 있다면, 판매가격을 개인별로 정확히 지불용의 가격만큼 설정해서 소비자 잉여를 생산자가 전부 가져갈 수 있다. 이런 가격설정 방식을 1급 가격차별이라고 한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이상적이지만, 이것을 실행에 옮기려면 정보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실질적으로 상품 한 단위를 팔 때마다 경매를 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피카소 작품 하나를 앞에 걸어놓고 경매를 해서,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사람이 낙찰을 받는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자. 콘서트장에 있는 수천 수만 개의 좌석표를 과연 이 방식으로 팔 수 있을까.

그래서 실생활에서는 이보다 정보비용이 적게 드는 가격차별 방식이 많이 이용된다. 대량으로 구매할 때 단가를 더 싸게 해 주는 경우처럼, 구매량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매기는 것을 2급 가격차별이라고 부르는데, 판매자가 제시한 옵션들 중에서 소비자들이 스스로 알맞은 것을 선택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공연장에서 R석, S석, A석 등을 구분하여 다른 값을 받는 것도 2급 가격차별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지만, R석에서의 관람과 A석에서의 관람이 과연 ‘같은 상품’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음으로 3급 가격차별은 학생 할인이나 고령자 할인, 또는 식당에서의 해피아워처럼 고객의 연령이나 구매시간대 등을 이용해서 소비자 그룹을 구분하고, 그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매기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가격차별을 통해 생산자들은 소비자 잉여의 상당 부분을 자기 몫으로 가져올 수 있다.

암표, 가격 높이거나 공급 늘리면 해결
20세기까지는 미시경제학에서 가격차별을 이렇게, 즉 1급 가격차별은 실행에 옮기기가 불가능하고 2급, 3급만 현실에서 사용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이베이를 필두로 온라인 중고품 경매사이트들이 생겨나면서 경매에 따른 정보비용이 극적으로 낮아졌고, 이제는 정말 별의별 물건들이 온라인에서 하나하나 흥정을 통해 팔리고 있다. 기업도 마음만 먹으면 상품을 경매방식으로 조금씩,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부터 차례로 팔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1급 가격차별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졌다!

그런데도 입장권이나 기차표는 여전히 정해진 값에 선착순으로 팔린다. 생산자가 가져갈 수 있는 커다란 소비자 잉여가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인데, 온라인 암표상이 이 틈을 파고들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생산자가 직접 가격차별을 주도해서 시장에 남아있는 소비자 잉여가 대폭 줄어든다면 암표는 자연히 설 자리가 없어진다. 법으로 금지하고 불시에 단속하고 온라인 중고시장에서 이용자끼리 서로 감시하는 것을 통해 암표를 근절하려 하기 보다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흥정을 벌이게 만들어서 암표상이 할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훨씬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불법인 “따따불!”을 합법적으로 양성화시킨 카카오택시 ‘블루’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태환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와 스탠포드대에서 공부하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한국경제의 다양한 측면을 연구했다. 주변의 사회문화 현상을 경제학으로 해석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SERICEO에서 5년 간 ‘세상만사 경제학’ 강의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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