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스킬'로 파리 패션쇼…한복집 할머니들이 내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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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박물관에 ‘오트 쿠튀르’ 의상 11벌 기증…김지해 디자이너
지난 11월 11일 서울공예박물관에서는 ‘기증 감사의 날’ 행사가 열렸다. 올해 총 1만9469점의 공예자료를 기증한 기증자 26명 중 대규모 컬렉션 기증자 9명에게 서울시장 명의 표창장을 수여하고 ‘기증자의 벽’에 명패를 헌정하기 위해서다. 이날 금속·나무·도자공예 등 수많은 기증품 중 단연 눈에 띈 것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패션 디자이너 김지해씨의 오트 쿠튀르 의상 11벌이었다.

이번에 기증한 11벌의 옷은 바로 이 오트 쿠튀르 무대에 선보였던 의상들이다. 모시, 노방 등의 한국 전통 소재를 사용하고 ‘깨끼’ ‘세땀뜨기’ ‘충무누빔’ 등 우리만의 바느질 기법을 적용해 만든 옷들이다. 기와지붕의 선, 봉황의 날갯짓, 단청의 조화로운 색 조합도 옷에 넣었다. “처음 본 디테일에 유럽 사람들은 천상의 옷이라고 찬사를 보내고, 한국 사람들은 ‘분명 서양식 드레스인데 한복이 연상된다’고 했죠. 저는 그 말이 너무 좋고 감사해요. 제가 의도한 것을 정확히 꿰뚫어 본 찬사니까요.”
![사선으로 기와지붕의 ‘선 자연’을 표현했다. 부드러운 노방 천도 깨끼바느질(투명 옷감을 시접이 보이지 않게 최대한 가늘게 박는 기법)을 활용하면 풍성한 볼륨을 만들 수 있다. [사진 김지해]](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1/09/joongangsunday/20250109083316310lpsb.jpg)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 이세이 미야케 등이 다녔던 문화복장학교에 들어갔고 2년 만에 조기졸업했다. 늘 “지해 옷은 살아 있다”고 칭찬해준 부원장이 “프로가 되라”며 회사까지 소개해줬다. 대형마트에서 유통되는 옷을 만들던 회사는 프랑스에 지사가 있었고, 덕분에 파리에 머물게 된 김 디자이너는 더 큰 물을 만나기 위해 퇴사 후 프리랜서로 일했다. 포트폴리오를 본 프랑스의 유명 디자이너 꼼 데 가르송도 함께 일하자고 먼저 제안했지만 동양의 이름 없는 작은 나라에서 온 여자에게 정식으로 입사를 제안하는 곳은 없었다.
![사선으로 기와지붕의 ‘선 자연’을 표현했다. 부드러운 노방 천도 깨끼바느질(투명 옷감을 시접이 보이지 않게 최대한 가늘게 박는 기법)을 활용하면 풍성한 볼륨을 만들 수 있다. [사진 김지해]](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1/09/joongangsunday/20250109083316779nhnf.jpg)
그는 6개월 간 한국에 머물면서 ‘나만의 옷’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았다. 화가이기도 한 매니저 펠릭스 부코브자의 조언 때문이다. 화가이기도 한 그는 ‘지해’를 시작하기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인데 김 디자이너가 어떤 옷을 만들까 고민할 때면 늘 “특히 프랑스는 너의 독특한 생각을 보고 싶어해. 너의 손을 통해 한국을 그려보라” 조언했다.
![울 소재에 은박 봉황을 찍어 만든 재킷과 바지. [사진 김지해]](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1/09/joongangsunday/20250109083317255zhuq.jpg)
평생 저고리만 만든 할머니, 자수만 놓은 할머니, 금박만 찍는 할머니가 모두 선생님이었다. “그때서야 떠오르더라고요. 우리 어머니는 1년 내내 집안 일로 종종걸음 치셨지만 절에 가실 때만큼은 한 달 전부터 옷 준비를 정성스럽게 하셨죠. 벽장 속 한복을 꺼내 빨아서 풀을 먹이고 다듬이로 잘 두드려서 밟고 볕이 좋은 날 널어 말리기를 반복하셨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가 집을 나설 때가 기억났어요. 내가 만드는 옷에도 이런 엄마의 마음을 담아야겠구나 생각했죠.”
처음 만든 옷 10벌을 들고 펠릭스 지인의 소개로 유명 패션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2017년 별세)를 찾아갔다. 자신의 쇼 옷을 만드느라 정신 없던 그가 김씨의 옷을 보고 옆에 있던 피팅 모델에게 입히더니 “재킷이 정말 만들기 어려운 옷이다. 그래서 누가 봐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디자이너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 생 로랑의 재킷, 디올의 재킷, 알라이아의 재킷이 있는데 너는 너의 재킷을 벌써 만들었구나” 칭찬했다.
![0.3㎝ 간격으로 세밀하게 놓는 ‘충무누빔’으로 선의 미학을 살린 코트. [사진 김지해]](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1/09/joongangsunday/20250109083317701wrrm.jpg)
2002년 봄·여름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선 ‘한일월드컵’을 기념하는 의미로 축구공 문양의 파격적인 드레스를 선보여 전 세계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2003년에는 미스유럽 선발대회에서 상위 입상자 5명의 의상을 만들었다. 한국인 디자이너가 세계 미인대회 의상 디자인을 담당한 것은 처음이다.
김 디자이너는 이제 오트 쿠튀르 걸렉션 참가에 더 이상 미련이 없다고 했다. “나이 60을 넘고부터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어요.” 이번 서울공예박물관 기증도 그 연장선에 있다. “본격적으로 우리 장인들의 솜씨를 유럽에 알리고 싶어요. 한복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고 또 많은 부분을 빌려온 만큼 그 우수한 기술과 좋은 소재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래요. 그러려면 국내외에 이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박물관 기증을 결심했어요. 향후 상설전시나 기획전을 통해 우리 할머니들의 솜씨도 충분히 명품이 될 수 있음을, 한복을 드레스로도 풀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요. 한복뿐 아니라 한국 장인들이 만든 전통 공예품도 파리에 소개하고 싶고. 한국과 프랑스 장인들의 협업으로 새로운 창작품을 탄생시켜 세계 주요 도시에서 초청전시도 열고 싶고. 앞으로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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